모스크바에서 방송타워에 불이 나서
한동안 소동 아닌 소동을 빚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방송타워를 복구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는데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습관적으로
TV 리모컨을 집어드는 주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일순, 그들에게서 엄청난 즐거움과
사는 재미, 그리고 생의 의미마저도
일시에 앗아간 듯이 보였지요. 남편이나
아이들을 출근시킨 후 텔레비전을 보는 기쁨을
송두리째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동네 주부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곧 시들해졌어요.”
그 모스크바 아줌마들의 행태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다의 원천이 상당 부분 TV였다는 추론인데,
우리 식으로 말하여 연속극을 못 보는 게
대화를 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모스크바 아줌마들의 수다 실력이
영 형편없지 않았나 하는 어떤 의구심이었습니다.
사석에서 “여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막가파가 된다”는
말을 태연하게 말하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술좌석이라고 하지만
내일모레 마흔이 될 자기 아내를 곁에 두고 지껄인 말로서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런 심리의 저변에는 내집단(內集團), 즉 자기 아내나
어머니는 긍정적인 ‘여인’으로 보면서
자신을 떠난 외집단(外集團)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하하는
의식이 가로놓여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실이지 우리 아줌마들은
너무 많은 ‘누명’(혹은 ‘편견’)을
뒤집어쓰고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닌게아니라 아줌마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라치면
대뜸 퍼질대로 퍼진 몸매,
극도의 이기주의, 수다 등이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지,
살아야 나라가 사는지 하는 논쟁은
저들끼리 하게끔 내버려두고, 『논어』라는 고전에
나오는 수상쩍은 얘기를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군자는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긴 합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한다, 뭐 그러니 벗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수다는 정말 비생산적이고
여자는 정말 수다쟁이일까요? 그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수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는 점만 강조하고 싶습니다.
신(神)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던 고대인들은 어김없이
수다의 근원으로 ‘파마’(Fama)라는
소문의 여신을 만들어냈음을 상기합시다.
파마는 날개를 치면서 거리를 다니며
미확인 사실을 수천 개의 입으로 뿜어대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한번 상상해보셔요.
여성은 자기 주위에 수다를 털어놓을 상대가 없으면
살 맛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요즘
휴대폰이 엄청나게 인기있는 것도
편리함이라는 기능 이외에
여성들의 수다떨기도 한몫 가세했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여자는 남자를 위해 체질적으로
수다를 떨기에 유리한
신체 구조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성대는
남자보다 짧습니다. 상대적으로
공기의 흐름을 덜 필요로 하고
남자보다 3분의 1 빨리 숨을 쉴 수 있을 테지요.
즉 생리적으로 남자는 말을 많이 하면
여자보다 목이 빨리 쉬고 훨씬 아프다는 얘기입니다.
수다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수다를 연구해 『수다의 매력』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독일 작가 클라우스 텔러 도르만 같은 사람은
원래 남자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최초의 가십 칼럼니스트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듯합니다.
흔히 여자가 말하면 ‘수다’고
남자는 ‘정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주부들조차도 그래요. 아줌마는 과거 지향적이고
아저씨는 미래 지향적이라고 간주하며, 남자는
자신의 말들은 술좌석에서 나누는 음담패설까지도
공적인 영역에 두고
여자의 말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수다는 절대 “쓸데없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아줌마들은 누구나 조금쯤은 토크쇼 기술자라고 봅니다.
TV 보고, 수다 떨기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요? 가능하면
그것을 어떻게 좀 더 세련된 기술로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은 우리 아줌마들의 영원한 숙제인 듯합니다.
수다의 신이 여성적 존재였음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여자의, 아줌마의 수다 본능을
누가 감히, 왜 막는단 말입니까? 모스크바 아줌마들처럼
TV가 없으면 견디기 힘들 것이지만
수다를 떨 수 없다면 그보다 큰 고역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남편들은 여자들끼리 수다떠는 데
몇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잔소리이지만
여자들의 수다떨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는
일종의 소통장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체면과 근엄을 생명으로 하는
남자 문화에선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장 수다떨고 싶은 상대와 실컷 수다를 떨어봅시다.
숨이 가쁠 때까지, 목젖이 부어오르고 목이 쉬기 직전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