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조선일보 임경선님의 자유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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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유행한다고는 한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휴가가 아닌, 자의건 타의건 조금 장기적으로 ‘나인 투 식스’의 생활을 떠나있어야 하는 경우가 삼십대 여자의 삶에는 더러있다.
처음엔 무작정 좋다. 원하던 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으니까. 그러던 여유로움도 차츰 지겨움 초조함 불안감 소외감 이윽고 자학증세로 발전한다. 실직한 남자들마냥 정장 입고 공원벤치 가서 앉아있진 않겠지만, 졸업 후 직장생활 일색이었던 여자들에게는 마찬가지로 새로운 별천지 삶이기 때문이다.
대낮에 백화점 지하식품매장에서부터 문화충격을 받는다.
직장 다니는 여자들보다 더 말끔히 화장하고 카트를 끄는 이 수많은 여자들은 뭐지? 문화센터에서 나오는 저 행복한 표정들은 뭘까? 결코 지기 싫어하던 성격은 어디 갔는지 와글거리는 특가코너엔 범접하지도 못한다.
많은 부하직원을 거느리던 리더십 발휘는 이젠 세탁소 아저씨나 신문배달 청소년과의 실랑이로 바뀌었다.
말로만 듣던 모델하우스 분양사무소에도 기웃거릴라치면 그간 쥐꼬리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기만 알았지, 뭔가 중대한 음모를 나만 모르고 있던 것 같다.
외계인처럼 느끼며 집에 돌아오는 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나만 빼고 서로들 다 아는 모양이다. 그래, 훌훌 털어내고 간만에 솜씨 좀 발휘해보려 했지만 띠리링~, “나 오늘 많이 늦을 거야. 먼저 먹어.” 게다가 ‘논다’로 보이니 양가부모의 눈치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이유 모를 짜증으로 혼자 위축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치사해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직장 다닐 때는 가사의 경제적 가치 운운했건만 막상 지금은 단지의 또래 아줌마들을 보며 ‘난 너희들과 달라’ 라는 옹졸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러면서 동시에 꿀린다는 느낌에 괜히 직장 다니는 지인들을 피한다면 정말 참으로 딱한 일이다.
나는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그것이 직장의 유무라는 이분법으로만 설명된다면, 그것은 커리어우먼의 옹졸한 허울의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명함과 소속이 아니라 개인이 그 동안 쌓아온 역사일 터인데, 또한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일 터인데.
한편, 이 자학성 짙은 과도기중에 걸려오는 헤드헌터의 전화는 최고의 신경안정제. 가성 섞인 통화를 마치고 면접용 정장을 부랴부랴 세탁소에 맡기기 전에 진정한 휴식의 의미도 생각해 봄직 하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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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30대 중반에 경험했던 내용이길래.
그러나,이 외계인은 지구아줌마들 일이 얼마나 전문적인지 아직 감 잡지 못한 것 같구려.
본인도 전문직 일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가 되었을 때 아줌마정도의 일이라면 누워서 잠자기(?) 정도로 여겼다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아줌마 일이란거. 정말 이 세상의 일중에 가장 맥빠지게 힘든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아줌마들. 화이팅 한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