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goodseoul.or.kr -my story에서 퍼온글
여기 은근히 볼게 많네요...
다른 사람 연애이야기는 언제든 들어도 재밌는듯..^^
어느 눈부신 만남
‘1992년 6월 3일 오후 두시 KBS 신관 커피숍’ 그해의 내 수첩에는 김민석이란 사람과 약속이 있다는 메모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을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해 초 여의도에는 총선을 앞두고 이곳저곳에 벽보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었는데, 후보자 중 하나였던 그의 얼굴선을 보면서 참 여리게 생긴 사람이라고 느꼈던 기억도 있고, 막판까지 상대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던 개표 상황을 아침 생방송 준비를 하면서 새벽 내내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5년 여름, 우리 학교 총 학생회장이던 그가 학교를 빠져 나가다가 검거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마음 아파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유난히 생생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와 불쑥 약속을 청했다.
“지구당 위원장은 어떤 일을 하는 자린가요?”
‘민주당 영등포 을(乙) 지구당 위원장 김민석’이란 명함을 받자마자 내가 던진 첫 질문이었다.
“저도 제가 임명을 받기 전까지는 무슨 일을 하는 자린지 잘 몰랐습니다.”
그는 조분조분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했다. 이렇게까지 자세한 얘기를 해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상한 대답이었다.
그는 자기가 출마한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여의도에 사는 젊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문화 강좌를 개최하는데, 내가 가능하다면 〈세계의 유행 음악〉 방송 내용과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청해 왔다. 그의 스태프 중 한 사람이 당시 내가 진행하고 있던 KBS-2 FM의〈세계의 유행 음악〉 애청자였고,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됐던 모양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유럽과 남미의 대중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감히 얘기한다면, 나는 그때 각 나라의 음악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자부심으로, 또 우리에게 만연되어 있는 미국 문화 편식증에 대응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고 온갖 애정을 쏟아가면서 방송에 임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어와 스페인어 강습까지 받아가면서 각 나라의 자료를 모아 정보를 수집하고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세계의 유행 음악〉프로그램 동호회를 조직하
는 과외의 일까지 자처할 정도였으니,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5년여의 시간은 정말 열심히 일에 파묻혀 있던 기간이었다.
글쎄요. 제3세계 음악은 너무 주제가 좁아서 주부들이 과연 흥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나는 주부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서 MBC의 모 프로듀서 한 분을 추천했다.
“잘 알아보시고 그래도 제가 꼭 필요하시다면 다시 연락을 주세요.”
10분 남짓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나는 곧바로 아나운서실로 올라가 다음 날 있을 방송을 준비했다. 이러니 우리의 첫 대면은 극적인 만남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하지만 왠지 이 사람과의 인연이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혹시 내가 자기네 지역구인 여의도에 살고, 직장도 여의도에 있으니까 선거 때마다 뭘 부탁하러 오는 거 아냐?’
남편이 들으면 미안할 소리지만, 나는 지역의 정치인과 지역구민의 관계를 맨 먼저 떠올렸다.
“글쎄, 그 날 나는 왠지 눈이 부셔서 당신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했다구. 정말이야.”
남편은 날 처음 본 순간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때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 거 아니에요? 요모조모 묻어봤더라면 어디 그런 생각이 들었겠어요?”
나 때문이었는지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밝은 햇살 때문이었는지 첫 대면에 눈이 부셨다는 남자! 그가 이제는 남편으로 내 곁에 있다.
1992년 6월 3일, 그 날의 만남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흐뭇해지곤 한다. 무덤덤한 나의 첫 느낌에 대해 남편은 적잖이 섭섭해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뒤로 두어 달이 지났을까,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먼저 그에게로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이가 연인 관계로 발전될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전화를 걸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아 수화기만 들었다 놓았다 했다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길가에 서 있던 그를 보고 차에서 내려 씩씩하게 다가갔으니 첫 인상에 대한 빚은 그런 대로 갚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