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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운동] '네티즌 파워'에 두 손 든 대기업


BY Newsy 2002-05-29

'네티즌 파워'에 두 손든 대기업
LG전자, 물의 일으킨 CDRW제품 전격 '리콜'
[소비자운동] '네티즌 파워'에 두 손 든 대기업
▲ '비공개 성능변경'에 대한 LG전자측의 공식 해명을 정면 반박한 'CDR인포' 기사 ⓒ CDRinfo 제공

광저장장치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LG전자가 네티즌의 힘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LG전자는 5월27일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 최근 '비공개 버퍼용량 다운'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CDRW(컴팩트디스크 리라이터블) 제품을 전량 교환해주기로 결정했다.

업그레이드는 '요란', 다운그레이드는 '쉬쉬'

사건은 지난 5월초 LG전자가 비공개로 자사 40배속 CDRW(모델명 GCE8400B)와 32배속 제품(모델명 GCE-8320B)의 버퍼메모리용량을 8MB(메가바이트)에서 2MB로 낮추면서 촉발됐다. 당시 LG전자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공표하지 않았고 이미 제품 포장과 제품 설명서에선 버퍼메모리 표기를 아예 없앤 상태였다.

5월 중순경 이 문제가 일부 언론과 PC부품 벤치마크(성능테스트) 전문사이트 K벤치(www.kbench.com), 광저장장치 전문포털 CDR인포메이션(www.cdrinfo.co.kr) 등에서 불거지자 LG전자는 20일경 자사 사이트(www.lge.co.kr)를 통해 공식 해명했다.

8MB 버퍼메모리의 시장수급상황이 좋지 않아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2MB 버퍼메모리로 교체했지만 버퍼메모리 변경이 제품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 고객에게 특별히 고지할 의무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

또한 버퍼메모리 교체에 따른 비용감소분(5~6천원 수준)은 5월초 제품 가격을 17만원대에서 14만원대로 20% 정도 내리면서 이미 반영했다고 밝혔다.

"대용량 버퍼용량 자랑할땐 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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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문제가 된 버퍼메모리는 CD 레코딩 과정에서 데이터를 일시 저장하는 핵심부품 가운데 하나다. ⓒ CDRinfo 제공

하지만 K벤치 이관헌 이사는 "버퍼메모리 용량은 CDRW 구입시 레코딩 속도, 안정성, A/S 못지 않은 중요한 구매포인트"라고 지적하고 "제품 성능이 변경될 경우 모델명을 바꾸거나 공지를 통해 사전에 알려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것은 LG전자의 기업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LG전자 홍보실 관계자는 "2~4배속 제품이 나오던 초기 단계에선 버퍼메모리 용량을 경쟁적으로 올렸지만 향상된 기술이 적용되면서 버퍼 용량이 제품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LG측의 해명은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CDR인포 배용기씨가 LG전자의 답변을 정면 반박하는 특집기사를 자사 사이트와 K벤치 등 유명 벤치마크 사이트에 올린 것. 배씨는 2MB 채택 제품과 8MB 채택 제품을 비교하는 벤치마크 테스트를 통해 CD 레코딩시 성능 차이가 분명 발생하고 있고 특히 멀티테스킹(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동시 가동하는 경우) 환경과 저사양 PC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뚜렸함을 입증해 보였다.

또한 지난 4월에 출시된 40배속 제품의 경우 8MB 사양으로 각종 PC전문지와 벤처마크 사이트에 소개돼 호평을 받은 뒤 갑자기 제품 사양을 낮춘 점도 의혹을 샀다.

LG '공식사과 및 제품 교환'으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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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가 된 CDRW 제품 상자에는 버퍼메모리 표기가 빠져있다. ⓒ CDR인포 제공

초기에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여기던 LG전자 역시 사용자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공식답변 1주일만에 '공식사과 및 제품 교환'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지금까지 판매된 2MB 사양 제품은 모두 4만여대. 이들 제품의 교환을 위해 LG전자는 곧 8MB 사양 제품 재생산에 들어가 6월5일부터 전량 교환해 줄 방침이다. 또한 소비자 혼선을 없애기 위해 이후 생산제품은 모델명을 바꾸고 제품 상자에 2MB 버퍼메모리 표기를 하도록 했다.

LG전자측은 이번 조치가 '제품 결함에 따른 회수(리콜)'가 아닌 '고객만족차원의 조치'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 8MB 사양 제품 수만 대를 별도로 생산해야 하는 만큼 사실상 '리콜'이라고 볼 수 있다.

CDR, CDRW 등 광저장장치 시장에서 LG전자의 국내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그 뒤를 점유율 20%의 삼성전자와 외산업체들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광저장장치 매출 대부분이 OEM(주문자표시판매)이나 수출로 이뤄지고 있고 국내 리테일(소매)시장 비중은 2%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도 초기 LG전자가 안이한 대응을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K벤치 이관헌 이사는 "이번 사건이 LG전자의 시장점유율에 큰 영향은 끼치지 않겠지만 이 분야에서 LG가 다져온 기업이미지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LG전자측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품 생산라인 프로세스에 소비자 입장을 좀더 적극 반영키로 했다. 실제 이번 CDRW용 번들 프로그램을 교체를 준비하고 있는 LG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소비자 입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 힘' 과시한 CDR인포 배용기씨

▲ 'CDR인포'를 운영하는 배용기씨 ⓒ CDR인포 제공
[소비자운동] '네티즌 파워'에 두 손 든 대기업
▲ 'CDR인포'를 운영하는 배용기씨 ⓒ CDR인포 제공
이번에 LG전자측의 '리콜'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한 컴퓨터 벤치마킹 전문가(Reviewer)의 역할이 컸다. 광저장장치 전문포털인 'CDR인포(www.cdrinfo.co.kr)' 운영자인 배용기(23)씨는 5월17일 LG전자 버퍼 다운 논란에 관한 첫 특집 기사를 내보낸 데 이어 24일 LG전자측 공식 답변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특집기사를 또다시 내보냈다. 배씨의 기사는 K벤치 등 유명 벤치마크사이트에도 실려 큰 파장을 일으켰다.

13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CDR인포'는 놀랍게도 전남 담양도립대 정보처리과 휴학생 배용기씨가 혼자 운영하는 개인사이트다. 광저장솔루션 마니아였던 배씨는 2년 전 휴학한 뒤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후 PC제품 벤치마킹업체인 테크노알, 브레인박스 등에서 일하다 현재 서울의 한 병역특례업체에 근무하는 배씨는 밤을 새 가며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CDR, CDRW, DVDR 등 광저장장치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제품 리뷰를 제공하는 CDR인포메이션는 커뮤니티를 통해 광저장장치 마니아들 사이에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벤치마크 사이트 운영자가 이처럼 LG전자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소비자에 대한 이해 없이 회사 입장만 강조하는 기업체를 꼬집기 위해서다.

"LG전자에서 초보자 입장에서 버퍼 용량이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최악의 PC 사양에서 성능상의 차이는 분명 있는데도 마치 100% 동일한 성능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어요."

"삼성 편들기는 오해"

하지만 배씨가 LG 문제를 본격 제기하자 그 뒷배경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경쟁자인 삼성전자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니냐는 것. 사이트에 유독 LG전자 제품 리뷰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배용기씨는 "LG전자쪽에서 벤치마크용 제품을 빌려주지 않아 리뷰를 못 쓴 것 뿐"이라면서 "보통 PC전문지에선 신제품이 나오면 벤치마크 테스트를 위해 제품 대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같은 온라인 사이트는 찬밥 신세인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