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작은 아이가 아빠와 있는 시간에 모처럼 남대문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역에 왜이리 사람들이 많은지 15분 배차간격으로 오는 지하철이 제시간에 안 왔나 보다.
그럼 다음 후속 기차는 곧 뒤따라 오므로 이번 기차를 그냥 보낼 작정으로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대를 보냈으나 다음 기차는 더 늦게 와서 더 복잡했다.
꼭 앉아서 가지 않아도 되지만
기다린 게 억울해서 또 한대를 보내고 나니 곧이어 빈 기차가 왔다.
내 생애에 있어서 요즘처럼 한가해 본 적이 있었던가?
늘 시간 다툼에 익숙해져 있었고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던 빠듯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월간지 차장 시절에는 마감 때만 되면 사나흘은 날밤을 새고 다시 정상근무를 하곤 했었다.
뭐가 그리 숨이 넘어갈 듯 바쁘기만 했었던지~~
요즘은 느림의 미학에 대해 흠뻑 빠져서 산다.
마음의 조급함을 버리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라는 생각으로 아주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인간이 내일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보장된 건 아니지만 막연히 오래 살 것같을 착각 속에서
그런 여유가 나오는 것이리라.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식품이 판치는 요즈음 나는 시대를 역행해서 아이들 간식거리조차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가면서 재료도 천연의 재래식 먹거리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대형마트에 가서 과자 한봉지도 안 사가지고 나오는 가족은 우리밖에 없으리라. 세살, 아홉살 짜리
아이들도 거기에 대해 조르거나 하지를 않아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기껏해야 자일리톨 껌 한통이면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이다. 빵도 거의 안 먹이고 우유에 타먹는
켈로그 등도 정지한지 오래 되었다.
농약과 방부제에 범벅이 된 유해식품이 판을 치는 요즈음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라는 책이 나와서
읽어보았는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꽤 된다.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상당부분 실천을 하려고 노력해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신경써야 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먹는 것에 유의하고 살아야 온가족이 건강할 뿐만아니라, 심성까지도 유해진다니 각
별히 신경을 쓰는 수밖에~~
며칠전에 큰아이 숙제에 가훈을 적어가는 것이 있었는데 망설임없이 '잘 먹고 잘 살자'로 적어보냈다.
지금은 그게 지상목표이다.
남대문시장은 언제 가도 참 재미있는 곳이다.
누군가가 삶이 권태로울 때 재래시장을 가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야말로 생동감이 넘치고 볼거리도 넘쳐난다.
열시 반에 내려서 두시간 남짓을 쉬지않고 돌아다니면서 꼭 사고자 했던 것들을 오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다양하게 구입했다.
머리 숱이 적어 늘 머리에 신경이 쓰였으므로 가발이 달린 머리핀을 오천원에 사고 작은애 옷 한벌과
티셔츠 하나를 더 얹어 구천원에 사고 아주 깜찍하고 편해 보이는 샌들을 만원에 샀다.
큰애를 위해서는 반팔 티셔츠를 세장에 만원에 사고, 이번 생일에 동생이 선물한 하늘색 면바지에 맞추서
오천원더미에서 울니트 티셔츠를 샀다. 옷에 대해서 조금 아는데 아마 정품매장에서는 삼만원 이상
줘야할 괜찮은 옷을 눈이 보배라 오천원에 건졌으니~~ 이런 재미가 남대문 시장을 찾게 하는 주요인이리라.
큰애 투명한 밸트를 천원에 사고 마지막에는 구정뜨게실 할인하는 곳에서 예쁜 조카에게 레이스 옷을
만들어주려고 면사 네개를 팔천원에 샀다. 이것만 해도 육천원이 절감되었으니
오늘 쇼핑은 아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모든 물건의 합이 사만 팔천원....
왕복 지하철 요금까지 해서 오만원이 안 넘은 금액이다.
배가 고팠으므로 뭐하나 먹을까 하다가 그대로 지하철로 향했다.
운 좋게도 오이도행 기차가 텅텅 빈채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덕분에 앉아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이렇게 알뜰하게 살아서 그 돈 다 뭐할 거냐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은 돈으로 여섯배쯤 비싼 우리밀 밀가루 사서 부침개도 해 먹이고 과자도 만들어 먹이려고 하는 게다.
우리 집은 그 덕분에 엥겔계수가 아주 높아서 극빈자에 해당될 지경이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다.
다음에는 취지가 같은 친구와 함께 쇼핑한다면 더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