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날조시킨 호남 인사 편중론
역대 편집국장 35명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어
조선일보를 말한다. 말지의 정지환 기자님
특집●조선일보를 말한다
조선일보 주요인맥 출신지 조사분석
역대 편집국장 35명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어
조선일보는 김대중 정부의 호남편중인사를 말할 자격이 없다.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호남출신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었다. 인사정책 보도의 기준으로 출신지만을 따지는 보수언론의 선정적 접근방식은 이제 끝나야 한다.
정지환 기자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조선 4월호에 「호남인맥 대해부」라는 장문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광주일고 등 호남지역 4개 고등학교 출신 인맥을 분석한 이 기사는 당시 신문광고에서 가장 크게 소개됐다. 그런데 이 기사의 광고문안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시선을 끌었다. 목포상고 출신 호남인맥에 법정 스님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조선일보가 칠정오욕에 빠져 있는 사바세계의 편가르기에 속세를 떠나 무소유를 주창하는 스님마저 끌어들인 연유는 무엇일까.
법정 스님도 호남인맥으로 분류한 조선일보
이 기사를 전후로 조선일보, 월간조선, 주간조선은 ‘호남편중인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주요 기사의 제목만 살펴보자.
「3ㆍ3조각 각료분석─호남ㆍ충청 출신이 55%」(조선일보 3월 4일자), 「호남인맥, 권력의 채찍을 낚아채다」(월간조선 4월호), 「‘영남인의 성역’이자 ‘호남인의 금역’이던 핵심보직도 대부분 장악」(월간조선 5월호), 「기관장 85명 중 32명이 호남 출신」(월간조선 6월호), 「김동신 대장 호남 출신 첫 육참총장 되나」(주간조선 3월 19일자), 「안기부ㆍ검찰, 호남인맥 핵심 부상」(주간조선 4월 2일자)…….
조선일보가 ‘호남편중인사’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는 자매지인 월간조선과 주간조선의 신문광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법정 스님까지 호남인맥으로 분류한 월간조선 4월호를 비롯해 월간조선과 주간조선의 광고에서 ‘호남편중인사’ 문제는 수시로 톱기사의 반열에 올랐다. 오죽하면 조선일보 4월 23일자에 실려 있는 월간조선 5월호 홍보기사 제목마저도 「‘호남인맥 요직 석권’ 등 보도」였을까.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설과 시론까지 동원했다. 「‘편중인사’ 신중해야」(조선일보 4월 21일자 사설)와 「김대중 정부의 ‘호남인맥 비호’에 대하여─역시 말로만 국민화합인가」(월간조선 5월호)라는 기사가 대표적 경우다.
지나친 집착은 오류를 낳기 마련이다. 보도과정에서 적지 않은 착오가 발생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5월 9일자에서 한나라당이 발표한 출신지역별 정부요직 분포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의 해명에 따르면 이는 실제 수치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호남출신 비율은 확대하고 영남출신 비율은 축소해서 발표한 것. 예컨대 10대 요직의 경우 호남은 10%를 확대하고 영남은 10%를 축소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4월 20일자에서 보도한 「25개 정부기관장 인선 분석」 기사도 시기와 범위에서 객관적 기준성을 잃었다. 우선 조선일보 스스로 이 기사에서 적시했듯이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산하단체장 자리는 총 5백52개다. 본지가 행정자치부에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그 가운데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산하단체장은 모두 48명. 그리고 이 48명 중에서 영남출신은 27.1%인 13명, 호남출신은 16.7%인 8명이라는 것이 행자부의 해명이다. (참고로 김영삼 정부의 경우에는 영남출신이 37.5%인 18명, 호남출신이 6.3%인 3명이었다.) 결국 정권교체후 영남은 10.4% 감소하고 호남은 10.4 % 증가한 셈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정부 인사의 지역간 불균형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25개의 결과만 보고 “호남출신이 13명으로 전체의 52%인 반면 영남 출신은 5명에 불과하며 부산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 6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언제 조선일보가 정부의 인사에 대해 ‘광주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식으로 보도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물론 조선일보만이 이런 행태를 보인 것은 아니다. 보수언론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논조로 일관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선봉에서 이런 여론을 주도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4ㆍ2 재보선과 6ㆍ4 지방선거에서 정치권이 이를 지역감정 조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데 있다.
조 순 한나라당 총재가 4ㆍ2 재보선 당시 “김대중 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여러분의 후배와 아들이 밀려나고 있다”며 지역감정을 자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 전문성ㆍ도덕성ㆍ개혁성에 입각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정권처럼 지연ㆍ학연ㆍ혈연 등 정실에 휩쓸려 인사를 한다면 언론은 비판의 필봉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을 비판하며 이런 원칙보다는 지역문제에만 집착했다. 더욱이 조선일보가 과거 정권의 지역차별 인사에 대해서도 이번처럼 ‘열정적으로’ 비판했다면 또 모르지만. 비판하되 제대로 된 비판이 아쉽다.
역대 주필ㆍ정치부장ㆍ경제부장은 단 1명
말』은 조선일보 주요 인맥의 출신지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정부의 인사정책을 다루며 출신지역을 강조하는 조선일보는 도대체 어떤 인사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공기라면 그것이 설사 언론사일지라도 취재의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말』의 판단이다.
조사대상은 조선일보의 논조와 경영을 좌우할 만한 직책에 있는 사람으로 국한했다. 편집국장, 주필,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회부장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임원과 간부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명단을 입수하기 위해 조선일보의 협조를 구하려 했지만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조사결과에 대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조선일보 인사부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편 조사내용을 팩스로 보내고 빠진 것이나 잘못된 것의 정정을 부탁했지만 조선일보는 답변하지 않았다.)
말』은 우선 조선일보사가 90년 간행한 『조선일보 70년사』와 『한국신문방송연감』, 『전국언론인명록』 등을 참조해 주요 명단을 확보했다. 그리고 『신문백년인물사전』(한국신문편집인협회 88년 간행)과 『한국신문방송연감』을 대조해 가며 출신지를 조사하는 동시에 조선일보에 몸담았던 인사와 내부 인사들의 증언도 들었다.
말』이 조사한 것은 조선일보 주요 간부급 인사의 호남출신 비율.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편집국장 편집국장은 신문의 취재와 편집 등 모든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비중의 중요성 때문에 1920년 창간 당시의 초대 편집국장부터 현재까지 모두 조사했다. 본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역대 편집국장은 43대에 걸쳐 총 38명. 그 중 최강(1대)ㆍ선우일(2대)ㆍ문동표씨(17대) 등 3명은 출신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호남출신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두차례 이상 역임한 사람을 포함해 정확하게 확인된 35명의 편집국장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필 해방이후 주필은 13대에 걸쳐 모두 11명. 최근 세상을 떠난 ‘홍박’ 홍종인씨와 유봉영씨가 두번 역임했다. 이 가운데 호남출신은 이규태씨 단 1명뿐이다. 정치부장 해방이후 현재까지 역대 정치부장은 26대에 걸쳐 22명. 김용태씨가 세 번, 이규홍ㆍ최병렬씨가 두 번씩 역임했다. 호남출신은 강천석씨가 유일하다. 영남출신이 8대에 걸쳐 5명이 역임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부장 해방이후 경제부장(경제과학부장)은 13명. 호남출신으로는 현재 경제과학부장을 맏고 있는 송희영씨가 유일하다. 그는 방일영장학회 2기 출신이다. 조선일보의 호남출신 중 다수가 방일영장학회 출신이라는 것이 조선일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말이다. 조평사태(89년 발생한 조선일보─평민당간의 명예전쟁을 말함)를 촉발시킨 한 기자도 대표적인 방일영장학회 출신의 호남인맥이라는 것이 그의 증언. 그는 언론계 일부에서 이들을 가리켜 ‘방일영유겐트그룹’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유겐트의 의미는 ‘청년단’으로 ‘친위부대’를 뜻한다.) 조선일보내 호남인맥의 성격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사회부장 사회부장은 해방이후 현재까지 40대에 걸쳐 32명에 이른다. 홍종인ㆍ유건호ㆍ장병칠ㆍ목사균ㆍ장정호ㆍ신동호ㆍ최현우ㆍ이규태씨 등이 두 번씩 역임했다. 편집국장이나 정치부장 등과 비교해 사회부장에는 호남출신(조덕송ㆍ이규태ㆍ송기오ㆍ강천석)이 많은 편이다. 32명 중 4명이긴 하지만. 월간조선ㆍ주간조선 부장 역대 월간조선과 주간조선 부장(편집장)은 각각 4명과 11명에 이르지만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서희건 월간조선 편집장은 『신문백년인물사전』과 『한국신문방송연감』에 이름이 없어 주변 인사로부터 출신지를 알아냈다. 본인에게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자리에 없어 동료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답변해 주지 않았다.
임원(97년) 97년 5월에 발행된 『전국언론인명록』의 임원 명단을 기준으로 하면 20명의 임원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이다. 『말』은 인사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98년도 임원 명단과 출신지를 알아보려 했으나 응하지 않아 부득이 97년도를 기준으로 했다.
논설위원실(97년) 97년도 논설위원 명단에 오른 12명 중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편집국 주요 간부(97년) 97년도 편집국의 국장과 부장 등 14명의 주요 간부 중에서 호남출신은 2명이었다.
업무국 주요간부(97년) 97년도 업무국내 9명의 국장과 1명의 소장과 1명의 실장 중에서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업무국에서까지 호남출신은 주요 간부직에 등용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왜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했을까.
제 145 호 1998 년 7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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