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늦은 시간에 한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하지만 남편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단다.
난 그때 없어서 몰랐는데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틀림없이 부적절한 관계였단다.
남들은 울나라가 8강에 들어 정신없이 기뻐하는 이 마당에....
나는 설마... 아닐꺼라 생각했지만.
씁쓸한 기분도 든다.
아직도 가게 밖에는 청년들이 대~한민국 이란 연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밤하늘엔 기쁨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건만...
우리 가게는 한적한 도로의 외곽에 위치해 있다.
주방을 합쳐도 6평이 채 안되는 작은 가게다.
주로 가까운 거리로 배달을 간다.
그래서 오늘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손님들을 받질 못한다.
배달도 굉장히 많이 밀려서 엄청 바빴다.
축구도 제대로 못봤지만 우리나라가 이겨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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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가게에 몰려왔다.
남자 두분, 여자 세분.
자리를 안내해 드려서 다들 자리를 잡아 앉으셨는데 여자 한분이 자리에 앉지 않고 그냥 서 계셨다.
동행한 분들이 계속 자리를 권하는데도 그냥 끝까지 서 계시는 거다.
물컵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성이 들렸다.
" 내가 왜 여기에 앉아요? 나는 당신들과 여기 같이 앉을수가 없네요."
서 계시던 아줌마가 그러시는 거다.
그 아줌마의 목소리에 굉장히 화가 많이 묻어나서 놀랐다.
분위기상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뭐해서 우물쭈물 그냥 주방에 있을수 밖에 없었다.
" 애기엄마, 몸도 안 좋은데 자리에 앉아서 얘기 합시다. 서있으니까 우리가 불안하구만...."
남자 한 분이 손짓을 하며 말씀하신다. 이분은 좀 나이가 있어 보이고...
그래도 끝까지 서서 입을 꽉 다무신다.
앉아있는 아줌마 한분이
" 아따, 그건 오해야, 나랑 만났다니까. 내가 몇번을 얘기해... 그날 저녁에 나한테 전화와서 나랑 만났어. 그날 둘이 맥주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그랬다니까 정말."
" 아줌마 말은 믿을수가 없어요."
서로 오가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서 있는 아줌마 남편이 운동강사(헬스,수영,테니스,볼링...등등) 인데 배우러 오는 아줌마 한분과 바람을 피웠다고 그래서 아마 일하는데 찾아가서 따지다가 증인 식으로 다 같이 얘기중 온거 같았다.
나이 많은분은 그 클럽 회장쯤 되는것 같고 한분은 남편이고 다른 아줌마 한분은 오해받는 당사자, 그리고 한분은 그 아줌마와 같이 있었다는 아줌마....
더 놀란건 서 있는 아줌마가 출산한지 일주일밖에 안됐다고...
얼굴이 많이 붓고 굉장히 아파보이던데..
목소리가 화가 많이 났지만 자신감이 없고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분노가 가득 차서 소리는 높고...
그 아줌마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남편은 죽어도 아니라 그러고...
모두들 아줌마가 터무니없이 의심한다고만 한다.
오해받는 그 당사자 아줌마는 어이없어 한숨을 짓다가 화도 내고...
아무튼 엄청 소리를 질러가며 싸웠다.
모월 모일 모시에 그날 아침에 뭐하고 뭐하고 뭐하고....
외관상 이유야 어쨌든 그 애기엄마가 혼자서 엄청 수세에 몰렸다.
그 남편이란 사람도 자리에 앉아 그들과 똑같이 아줌마를 쳐다보는것 같고.
그들이 하도 그러니까 나중에 그 엄마가 눈물이 글썽글썽.
그 아줌마 눈물에 다들 숙연해 지는듯 조용했다.
나는 쟁반을 들고 가만가만 가서 물컵을 내려 놓았다.
다들 진정하길 바라는 맘....
물을 드시더니 아줌마에게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다, 제발 의심하지 말아라, 그러면 남편이 직장생활 편히 못한다, 아무 사이 아니란걸 우리가 증명한다, 걱정말고 얼릉 집에가 몸조리 잘 해라 등등...
남편에게 어서 애기엄마 데리고 집에 들어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렇치 않아도 애기 엄마가 거의 쓰러질듯 매우 힘들어 보였다.
부축하는 남편의 팔을 계속 뿌리치며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 나가는 애기엄마의 뒷모습....
가슴이 정말 아팠다.
남은 그들은 서로 한숨만 쉬더니 애기엄마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저번 직장에서도 그랬다는 둥, 저래서 어찌 살겠냐는 둥, 남편이 너무 피곤하겠다는 둥, 의부증이 중증....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교복입은 단발머리 여학생이 불쑥 들어왔다.
" 우리 엄마 왜 그래요? "
이 아이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표정은 거의 울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갑자기 딸이 들어오니 다들 놀라다가
" 그걸 여기와서 왜 물어, 궁금하면 니네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
" 아줌마들이 그런거 아니에요? "
다들 어이없어 하며 아무말도 없이 혀만 찬다.
" 누구누구 아줌마가 어느 분 이에요? "
" 그걸 왜 묻니? "
" 얼굴 좀 보게요."
또 어이없어 하는 표정...
" 야, 이건 어른들 일이니까 궁금하면 니네 엄마나 아빠한테 가서 물어."
그 아이는 계속 그 아줌마가 누구냐고 고집스럽게 물었다.
당사자 아줌마는 " 그래, 나도 참 기가막혀서 니네 엄마한테 묻고싶어. 왜 멀쩡한 사람 누명을 씌우는 지. 우리한테 니가 그래봤자 아무소용 없다. 가서 니네 엄마한테나 물어."
그러자 그 여학생은 엄마가 서 계셨던 그 자리에 꼼짝도 안하고 그 아줌마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이드신 남자가 좋게좋게 타일러 애를 겨우 돌려 보내고나니 또 남편이 들어오고....
다들 남편을 위로하고 애기엄마 건강을 걱정하며 오해받은 당사자 아줌마한테는 기분을 풀어주려 애를 썼다.
그들은 한동안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고는 가게문을 나섰다.
테이블을 치우며 난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남편도 씁쓸한지 참 내... 라며 한숨을 쉰다.
그 아줌마와 딸이 서 있었던 자리를 보니 가슴이 아프고...
솔직히 이런 장사를 하는 내 자신조차 부끄러웠다.
누가 옳고 그른지 나는 모르겠다.
터무니 없이 오해받고 사사건건 간섭받고 심지어 직장까지 아내가 ?아오고...
의부증 걸린 아내때문에 괴로운 남편 심정도 이해가 가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출산으로 몸져 누워있어야 하는 아내가 그 힘든 몸을 이끌고 남편에게 가서 확인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그 어린 중학생 딸도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남의 일 같지 않게 왜 이리 가슴속에 들어와 박히는지...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건 그 절규에 찬 엄마의 목소리...
남편을 믿고자 하는 맘과 꼭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맘이 섞어진 듯한..
오늘 온 모든 분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나는 더이상 아무 거리낌 없이 불륜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가 않다.
그 엄마의 목소리와 딸의 모습이 지워지지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