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창자는 안녕하십니까?
딴지 월드컵 취재반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탄식과 더불어 연초부터 줄곧 나를 괴롭히던 아랫배의 통증이 재차 엄습했다. 의사 선생님은 진찰소견을 얘기하며 맘을 편히 가지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과민성 대장증상을 조기에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권고했다. 12월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짜증과 우환거리만을 배가하는 악재가 연달아 발생하니 모진 주인 만나 고생하는 소회기관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최근 한나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컫는 듯 하다. 지방의원 선거와 재보궐 선거를 싹쓸이한 한나라당의 오만과 독주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더니 급기야 한나라당이 언론과의 전면전을 개시했다. 선전포고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조폭언론에 먼저 했는데 실제 총질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비교적 공정한 보도태도를 견지했던 것으로 전문가들로부터 평가받는 엉뚱한 매체들을 타깃으로 삼아 무차별적으로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MBC 국정감사 강행을 시발로 튀기 시작한 한나라당발 럭비공이 다음에는 누구에게 향할지 자못 귀추가 주목된다.
"피의자도 아닌 이정연씨 얼굴을 자료화면이나 어깨걸이는 물론 본문에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범법자 취급하는가 하면, 4주 연속해서 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앵커와 기자 모두 반복해서 사용해 이회창 후보 흠집내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표현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의 보도지침... 부활인가..?
한나라당의 소위 공정방송특위라는 내부조직에서 주요 공중파 방송사에 보낸 공문의 골자다. 공문을 접수한 방송사를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과 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에 발송된 문건을 ‘신보도지침’이라 성토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모질게 하시는가. 삼강오륜중의 으뜸이 아비와 자식의 관계이거늘 어찌 사람의 손으로 하늘이 내려주신 부자의 인연을 끊으려 하시는가. 그러다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장남 이정연씨가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許)하라' 절규하며 신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체중인 약골 청년들을 대거 규합하여 병역비의단(病疫非議團)이라도 결성해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자 남해의 외딴 섬에서 무예를 닦아 조정을 뒤엎을 역모라도 꾸미면 어떻게 대처하실 요량인가.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발상이 참으로 발칙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다. 농담이라도 앞으로 그런 허무맹랑한 참언은 제발 발설하지 마시라.
보도지침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5공 정권이 신문사와 방송사의 보도내용을 검열?통제하기 위해 작성했던 악명 높은 문서다. 기사의 논조와 보도방향에 대한 간섭은 물론, 구체적인 활자체와 사진의 크기, 카메라 각도까지 일일이 지시함으로써 부정과 부패, 독재와 인권탄압으로 얼룩진 5공의 추악한 실상을 은폐하러 획책한 극악한 언론지배정책의 산물이었다. 86년 9월,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씨 등이 '말'지를 통해 실체를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보도지침은 전두환 체제의 부도덕한 여론조작 실태와 파렴치한 언론공작 전모를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의 한나라당은 전두환 체제를 뒷받침했던 민정당의 유산과 법통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실질적인 당권을 쥐고 있는 사실상의 제왕적 총재인 이회창씨를 제외하고 고위 당직자 회의에 참석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둘러보면 5공 민정당 시절의 그때 그 얼굴들이다. 참 가늘고 오래 정치하는 분들이시다. 한나라당 실세의원들 머리 염색 약간 더 진하게 하고 전두환이나 노태우 가운데 놓고 탁자에 빙 둘러앉으면 완전 한국판 엽기썰렁 '백투더퓨쳐'일 게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당의 인적 구성이나 마인드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니 내놓은 정책도 민정당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민정당 집권시절 작성된 보도지침의 한나라당 버전인 '신보도치침'은 한나라당이 앞으로 걸어갈 길과 추구하는 노선을 극명하게 일러주는 대단히 귀중한 선행지표로 간주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래도 누가 뭐라 한들 이회창씨만큼은 대쪽법관이라는 일부의 주장처럼 민정당 사람들과는 뭐가 달라도 조금은 다를 것으로 예상하고 일말의 기대감을 내심 간직해 왔다. 그렇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이회창 후보는 이번의 '신보도지침' 파문을 일부 중하위 당직자들의 알아서 기는 과잉충성적 행태가 빚어낸 일회성 해프닝으로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정권탈환에 성공할 경우 끔직한 정치보복 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풀어줄 책임이 이회창씨에게는 있다.
한나라당 논법대로라면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이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풍자했듯 이회창 후보의 대선운동위원장 노릇을 톡톡히 해준 DJ와 세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참인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럼 향후에는 김홍업과 김홍걸을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인 K씨의 자제들인 김모씨와 또 다른 김모씨'로 싸잡아 통칭해야 한단 말인가. 이중잣대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이러다가는 고무줄 잣대 제조하느라 여념이 없는 한나라당 때문에 초등학교 여학생들 고무줄 놀이도 못할게 시중의 고무줄이 품귀 현상을 빚겠다. 한나라당 인사들이 그토록 가슴 절절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80년대 전성기를 상기시켜드리는 의미에서 80년대 마지막 해 연말에 유행했던 탤런트 고두심의 명대사를 한나라당 분들께 들려드리는 바이다. "잘났어, 정말!"
월간중앙 6월호에서 중앙일보 이연홍 정치전문기자는 시중의 글 깨나 쓴다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던 이회창씨의 '창자발언'을 재차 언급하며 이에 대한 이회창 후보의 정확한 해명과 명쾌하고 진솔한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아무리 격의 없는 술자리일망정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이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를 올렸다고 기자들 면전에서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폭언을 퍼부은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심각한 사태다. 한나라당 편을 든다는 의혹에 휩싸인 소수의 거대신문회사들이 비정상적으로 여론시장을 독과점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대권후보 반열에서 퇴출당했다 해도 항변하기 힘들 정도로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무시무시하고 무지막지한 언급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이 부분에 대해 농담이라고 웃어넘길 셈인가. 한나라당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특유의 '아니면 말고'식 전술로 얼렁뚱땅 눙치고 뭉갤 작정인가.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해 이회창씨가 집권할 그 날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해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내년부터 혹 식자들 사이에 이런 안부인사가 새로운 아침문안 패턴으로 자리잡을 지 모를 일이다.
"댁의 창자는 밤새 안녕하십니까?"
딴지 정치부 공희준 (goebbels@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