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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에


BY 파랑새 2002-09-09

어느 가을에


어느 가을에 / 유인숙

어느 가을 이른 아침,
쌀쌀한 바람은
까슬해진 내 피부를 자극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허해진 뱃속을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낙엽이 떨어지면 무엇을 생각하세요?"

아래 층에 사는 희망관의 아이가
심오한 표정으로 내던진 질문에
그저 말없이 웃음을 던졌지만

내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 아이는 어떤 장애를 앓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장애아 속에 묻혀 살더니
이제는 모든 것이 장애로 보인다

내 마음도 고독한 장애를 앓고
여름도 내내 장애를 앓았다

지리한 장마는
게릴라성 장애를 앓고
지구 곳곳을 할퀴며 발병했다

가을은 또 어떤 장애를 앓고
빛 바랜 이파리로 떨어질까
곱게 단풍이 들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건 아닐까

몽고병의 아이가 쉬 늙어지는 것처럼
어쩌면 이 가을은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리며 떨어질 것이다


어느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