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에 / 유인숙 어느 가을 이른 아침, 쌀쌀한 바람은 까슬해진 내 피부를 자극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허해진 뱃속을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낙엽이 떨어지면 무엇을 생각하세요?" 아래 층에 사는 희망관의 아이가 심오한 표정으로 내던진 질문에 그저 말없이 웃음을 던졌지만 내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 아이는 어떤 장애를 앓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장애아 속에 묻혀 살더니 이제는 모든 것이 장애로 보인다 내 마음도 고독한 장애를 앓고 여름도 내내 장애를 앓았다 지리한 장마는 게릴라성 장애를 앓고 지구 곳곳을 할퀴며 발병했다 가을은 또 어떤 장애를 앓고 빛 바랜 이파리로 떨어질까 곱게 단풍이 들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건 아닐까 몽고병의 아이가 쉬 늙어지는 것처럼 어쩌면 이 가을은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리며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