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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 남편 재산, 아내 재산?


BY lhj73 2002-09-11

거꾸로 가는 세재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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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데도 소득재분배 기능을 맡아야 할 조세제도마저 이를 되레 부추기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탓에 불가피했다고는 하나 자산소득 부부합산제가 개인별 과세제로 전환됨에 따라 세무환경이 고액 자산가에게 훨씬 유리해졌다. 더욱이 세무당국이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점 4천만원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부부간 자산 분산을 통해 탈세할 수 있는 길도 터놓고 있다.

근로소득자들의 불만을 감안해 궁여지책으로 교육비, 의료비 등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높여잡긴 했으나, 병·의원, 사설학원 등의 소득을 투명하게 노출시킬 조세 인프라(세수확보 기반)를 갖추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세금을 물려야한다는 주장은 몇년째 헛돌고 있다.


■ 고액자산가에게 유리해진 조세환경=자산소득 부부합산제에 대한 위헌 결정과 이를 반영한 정부의 세법 개정으로 은행예금, 주식 등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부유층이 절세(사실상 탈세)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지금까지는 남편, 아내의 금융소득을 합쳐 4천만원 이상이면 종합과세 대상이 돼 무거운 세금을 물었으나 이제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세금을 물기 때문에 세액이 큰 폭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점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집중 제기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금융시장 불안을 이유로 들어 현행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의 하나로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과세표준을 소폭 조정하는 데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조세인프라(세수기반) 구축 노력 미흡=바뀌는 세제에서 고액 자산가가 크게 유리해진다는 비난을 의식해 정부는 근로소득자들에게 ‘떡고물’을 안겼다. 이달 들어 부랴부랴 마련한 세제개편안 보완책에 근로소득자에 대한 의료비, 교육비 등 특별공제 폭을 최고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려주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근로소득자들을 달래려는 의도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다.

특히 의료비의 경우 총급여액의 3%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줄 뿐이어서 효과는 미미하다.예를 들어 연봉 3600만원, 의료비 지출 200만원인 경우 3%(108만원)를 초과하는 92만원에 소득세율을 곱한 만큼의 혜택을 주는 정도에 그친다. 출산이나, 암 수술 등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의료비 공제 폭 확대에 따른 추가 혜택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교육비도 서민들에게 실제 큰 짐이 되는 사설학원의 수강료는 공제 대상에서 빠진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병·의원, 사설학원 등의 소득을 투명하게 노출시키는 조세인프라가 마련돼있지 않으며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1998년 8월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 도입에 따라 음식·숙박업의 과표현실화율은 크게 높아진 반면, 신용카드 사각지대인 변호사, 회계사, 의사, 한의사 등 주요 고소득 전문직종의 소득 파악률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의사 부부가 한해 소득을 800만원으로 신고하는 실례가 있다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 변칙적인 상속·증여 차단벽 부실=재경부는 지난 달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변칙적인 상속·증여에 재갈을 물리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경부 설명대로 비상장 주식을 상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 범위를 넓히고 사실상의 증여로 여겨(증여 의제) 과세하는 유형을 7가지 추가하는 방안을 담아, 노력한 흔적이 없진 않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격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변칙 상속·증여를 뒤따라 가기에 급급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비상장주식 상장차익에 대한 과세는 현대·삼성그룹이 이런 방법으로 총수의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준 뒤이다. 결국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에 따라 ‘사실상의 부의 이전’에 대해 광범위하게 세금을 매기는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하지 않고는 새로운 변칙 수단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 상장주식 양도차익 과세 외면=조세 인프라 구축, 재벌의 변칙 상속·증여 방지에 대해선 그나마 시늉이라도 냈지만 수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돼온 상장주식에 대한 양도차익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늘 해오던 바대로 시기상조론과 대만의 실패 사례만 되뇌고 있다. 주식시장이 급락할 것이라는 예단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기본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하며, 단기적인 부작용은 ‘경과 규정’을 통해 상당 부분 피해갈 수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대만의 경우 법인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리지 않다가 법인, 개인을 한꺼번에 과세대상에 포함시키고 곧바로 종합과세를 한 데 따라 부작용이 빚어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법인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물고 있어 추가로 대상에 포함될 과세 대상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 이대로 둘 것인가=지난달 발표된 세제개편안에 이어 이번달 7일 나온 보완책은 아직 입법예고 단계에 와있을 뿐이다. 국회에서 통과돼 정식 법규로 채택되기 전에 얼마든지 수정되고 가감될 수 있는 상태다. ‘정권말기여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까봐’ ‘주식시장이 깨질 것 같아서’ 등 핑계를 대기에 앞서 조세 형평성 확립이란 원칙을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한계레 신문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