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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요런거 받아봤어? 봤어?


BY 나의복숭 2002-10-06

아파트앞의 작은 공터에 1일 야시장이 생겼다.
오랫만에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리고
시끌시끌 시골장날같은 분위기라
스러퍼신고 구경하러 나갔다.

바늘도 사고
고뭇줄도 사고..몇백원짜리 물건을 사는데도
무지 흥청망청 쓰는 기분이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야시장의 노란자위는 역시 먹거리다.
뭐가 있는지 이리 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나의복숭님'
크다랗게 내 아이디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장소에서 나의복숭이란 아이디를 부르니
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구만.ㅎㅎㅎ

누굴까?
고개를 돌려서 소리나는쪽을 살펴봤드니
부부인듯한 두팀이 철지난 비취파라솔 아래서
나를 손짓해부르고 있었다.
일단은 이런데서 날 아는척해주는게 어디랴.하하.
얼른 다가갔드니 울동네의 은행 직원인데
옛날부터 잘 아는 나의 팬이다.
내가 뭐 돈이 있어서 예금하러갈 처지도 아니라
단골은 택도 없는 소리지만
어쩌다가 걍 잔볼일로 은행에 들리면
남먼저 나와서 커피를 대접해주기도 하고
사은품같은걸 챙겨주기도 하는 고마운 분이다.
친구 부부랑 같이 왔다고 인사를 시켜주는데
그들은 내홈에도 자주 왔다면서
두손을 꼭 잡으면서 너무나 반가워해준다.
이럴땐 별볼일 없는 나도 꼭 유명 인사가
된거같은 기분이다.
착각이사 자유니까..ㅎㅎㅎ

근데 말끝마다 나의복숭님이란 호칭을 붙이니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힐끗힐끗 나를 쳐다본다.
내 생긴거하고 안어울린다 이거겠지.
우리 아파트에선 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집에 별로 안있고 거의 밖에 나와서 있다싶이하니
아파트의 속성상 사생활 보장이란 명목에 걸맞게
내가 뭘 하는 여잔지 아무도 모르고..
또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작은평수다보니
나처럼 나이먹은 사람은 거의 없고
전부 젊은 사람들이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사 전부 안정이 되어서
넓직한 아파트에 살지 내처럼 이런 비좁은 아파트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그러다보니 자연 어울릴 기회가 없었고
어울리지 않다보니 그들이 내가 나의복숭인지
넘의복숭인지 우찌 알랴.

나를 위해 멧돼지 바베큐를 시켜주고
백세주를 시켜서 부어주는 부부들.
고맙기도 해라.
원래 술은 못마시지만 이것도 나이라고
조금씩 입에 대다보니 요새는 한잔 정도는
겁없이 넘긴다.
그냥 분위기용이긴하지만 그래도 엄청 기분좋다.

나는 그들을 잘 모르는데 그들은
울 남편도 알고 맨날 내가 욕해대는 울 아들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긴 내가 남편과 아들을 좀 씹었나. 하하.
아들이 효자란 소릴 하길레
'아이구 효자 다 죽고나면 그넘이 효자되겠지 뭐'
그랬드니 부인들이 배를 쥐고 웃으면서
너무 너무 재밋고 좋단다.
참나...진짜 재밋고 좋은사람이 그소릴 들었슴
울고 갈거같다.
그만큼 그들이 때가 안묻고 순수한 탓이리라.

이런 저런 얘길하며 웃다보니
두어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할일이 있어서 간다고 일어섰드니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 얼굴에 확 들어난다.
에구 기분 좋아라.
내가 타인에게 이렇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다니
이것도 역시 내 福이지 뭐.
집에 가서 먹어라고 멧돼지 고기를
1인분을 더 시켜서 싸주길레 고맙게 받았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총...엄청 반짝거렸다.
얼큰해진 기분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내 스스로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마구 웃었다.
맞다
난 행복해.
잘난 사람들이 들으면 배잡고 웃겠지만
잘났다고 나처럼 이런 행복을 맛보진 못할꺼야.
따끈한 멧돼지 고기가 든 비닐 봉지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 빙글 돌리면서
'니들 요런거 받아봤어? 봤어?'
누구에겐지 모르게 허공에다 독백처럼 뇌까렸다.

집 현관문을 여니
널찍한 거실이 나오면 좀 좋으랴.
초라하고 좁은 거실이 눈앞에 나타는데
그래...이게 내가 사는 현실이구만....
아까 웃을때와는 달리
눈이 조금씩 젖어옴은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