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쪽으로 너무 무게를 두고 방송하는건 아닌지요?
저는 타살에 무게를두고싶은데요. 아니 아마도 많은이들이 타살쪽에 무게를 두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타살로 생각하는이유에 대해서 경찰청홈페이지에 올린글을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유골로 돌아온 개구리소년... 우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아울러 모든국민들이 공감할수있는 수사가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타살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몇자 적고자 합니다.
- 타살로 생각하는 이유 -
난 대구시 서구에 위치한 서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중학교는 당시 50사단(개구리소년의 유해가 발견된곳)과 그리멀지않은 죽전중학교를 졸업했다.
물론 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때와는 약간의 세월차는 있다. - 난 30대 초반으로써 84년 중학교에 입학했다 -
하지만, 나도 중학교때까지 와룡산 사격장으로 탄피와 더불어 유탄을 줏으러 다닌경험이 있다.
당시 근처의(서구평리동일대까지) 초,중학생들중 탄피와 유탄을 줏으러 다녀본 경험이 있는이들은 다 알것이다.
물론 군부대 관계자들은 부인하겠지만... 예비군 사격훈련장까지도 들어갈수가 있었다. 거기서 탄피를 줏어오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에 장담한다.
당시 꽤 먼거리에 총쏘는곳이 있고, 총알이 박히는쪽에는 모래주머니와 더불어 흙으로벽이둘러쳐져 있었다. (참고로 나는 생계곤란으로 방위병훈련소집면제되었다. 태어나서 아직까지 실제총은 한번도 만져보지못한, 그야말로 당시의 기억대로이다.)
모아서 팔기도하고, 목걸이나 기타 장식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자랑삼아 필통에 넣어다니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때에는 이곡동(당시50사단근처)에 친구네 집이 있어서 자주 놀러가서 산새들과 토끼등을 잡겠다고 와룡산에 많이 올랐었다.
지금 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된곳. 민가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았던곳으로 기억한다. 그곳에서내려다보면 민가의 불빛이 보였고, 오솔길도 아래쪽으로 나 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나도 그 근처까지, 아니 더 위쪽으로도 자주 놀러가봤고, 해가지면 내려오곤했었다.
내 기억과 경험으로 비춰봤을때 소년들이 당시 날이 추워서 저체온증에 시달릴정도로 추웠다면 민가의 불빛을보고 내려왔을것이다.
그리고 근처에 살지않는 나도 초등학교때 친구들과 와룡산에 갔을때 해가 지면 민가의 불빛을보고 내려오곤했었는데, 하물며 인근에 살면서 와룡산에 자주 오르락거렸던 소년들이 내려오지못하고 사고를 당했다는건 상식적으로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난 그 소년들이 다른곳에서 피살되어서 옮겨졌다기보다는 그곳에서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물론 내 경험에 비추어봐서 추론해 본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도 어릴때 와룡산에 자주 오르곤했다.
그러나 늘 재미나는 산행(놀이)만은 아니었다. 가끔은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와룡산은 그리 높지않은 야산형태이면서 깊숙히 들어가면 어느정도 숲이 형성되기때문에 불량한 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어릴적 당시에 술에취한 고등학생이나 20대초반정도의 형들이 싸우는것도 자주 목격을 했었고, 심지어는 은밀한 행각도 많이 보아왔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끔씩은 그들의 노리개감이 되곤했었다.
술에취한채 담배를 물고 나타나서는 우리가 줏어놓은 탄피와 탄두를 모조리 뺏고, 때리기도 했으며 업드려뻗쳐등 심한 기합을 받은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떤때에는 복싱을 시킨다며 우리 일행을 싸움을 붙이기도 했고, 나무에 묶어놓고 괴롭힘을 당한적도 있었다.
난 그런이들에의한 살인이라 여겨진다. 물론 처음에는 죽일의도가 없었겠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죽게되었고, 서둘러 암매장을 하지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아니면 묶어놓고, 또는 무릅을 꿇힌채 하채부분을 흙으로 덮어놓고(실제로 어릴때 이렇게 당해서 거의 초죽음이된적이 있었다), 괴롭히다가 가해자들이 그냥내려가 버리는바람에 사망할수도 있다는생각이다.
절대 자연사란 있을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섯명이 전부 다쳐서 움직일수 없었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않다면 바로아래 희미하게 민가의 불빛이 보일것이고, 또한 근처에서 거주하던 아이들로서는 그렇게 모여서 자연사할(저체온증으로) 이유가 없다고 본다.
와룡산일대는 소위말하는 우범지대였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당시 와룡산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기억이 생생하고, 20년이지난 지금도 허벅지에는 그때 와룡산에서 그들이 장난삼아 괴롭히며 도루코칼(하얀색, 연필깍는칼)로 찌른흉터가(채1센티도 안되는길이지만) 남아있다.
아마도 어릴때 와룡산을 드나들어봤던 이들이라면, 현재의 경찰발표나 수사상황에대해 어이없어하고 답답해하며 한숨짓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디 조금 수고가 되더라도 정확한 사인규명과 더불어 수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유가족 여러분께는 다시한번 진심어린 애도의 마음을 보내는바 이다.
++++++++덧붙여...++++++++++++
오늘 방송에나온 그 경찰관계자분의 말씀중 근처의 흙이 잘 무너지는 부드러운흙이어서 그날 저체온사한 후에 밤새내린비로인해 흙이무너져 덮어버렸을것이라는 추정에대해 어이없어서 덧붙인다.
그당시 일기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말이 초저녁부터 비가내렸지, 그리많은양의 비가 아닌것으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비로 토사가덮어버렸다면 그 이후 11년동안 수많은 여름철장마가 지나갔을때는 어찌 그 흙들이 다시 씻겨내려가지 않았단말인가.
아니 실종되던 그 해에도 어김없이 장마가 있었고, 아무리 적은양의 장마라할지라도 그날 부슬부슬 하루내린비의 양보다는 몇배, 아니 몇십배나 많았을것이다.
말대로 그렇게 부드러운흙이었다면 죽을당시에 내린비보다는 6~7월에 내린비에 그 토사가 오히려 ?육屛뻔졀±?정상이 아닌가.
며칠전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을때에도 특별한아침에서는 자연사로 몰고가는 방송을 하더니....
물론 오늘방송에서는 약간 후퇴한면도 없지않았으나, 역시 자연사쪽에 무게를 두고 방송했다는건 부정할수 없을것이다.
오히려 방송에서는 자연사가 아니라는 주장쪽에 포커스를 맞춰서 경찰쪽의 말도안되는 논리에 부딛혀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단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모든일은 어느정도의 대립속에 발전하는것이므로 방송에서 타살쪽에 무게를두고 심층취재를 한다면 경찰로서도 더 치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