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은 혁명군을 말하며 혁명전사로서 사상적 각오와 무장으로 혁명을 이끌고 싸움을 한다
인민은 노동과 생활을 함께 하면서도 혁명의 계기에 따라 전술을 택하는데 그 근거지는 주로 험준한 산악을 무대로 한다
산악과 가까운 마을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모든 문제를 자기 힘으로 자력갱생해야 한다
산악에서의 생활은 의식주는 물론 산악을 내집처럼 삼으며 싸움에 유리한 정세로 이끌어야 하고 콩 한조각이나 물 한모금 까지 나누어 먹고 아이에게 먼저 가져다 주는 어버이이고 공동체적이었다
빨치산은 인민자신의 역사지만 험준한 산악을 택한데에는 혁명적 세력이 불리할때 혹은 혁명세력을 보존할때 쓰는 방법이면서 지형적인 고려에 의한 것이다
공장에서 평야지대에서 산악으로 옮겨감은 탄압이 시작되거나 새로운 근거지 싸움으로 정규적 훈련을 위함이지만 그것은 인민과의 고립이 아니라 유대에 의한 것이었기에 인민에 대한 희생과 탄압이면서 산악(빨치산)과의 고립일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볼세비키혁명당에 의한 각공장의 소비에트 창설이었지만 혁명은 인민자신의 모두에 의한 진행이면서도 그 완성은 계급적 전위부대 혁명군에 의해 완성되고 수호되어진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혁명군이 내전을 치르면서 인민권력을(소비에트) 볼세비키(혁명적 노동자)에 의해 진행시켜 갔지만 빨치산식 투쟁이 아니었고 자국에서 일어난 왕정 타도와 공산당 집권을 향한 사회주의 러시아의 레닌식 혁명이었다
중국도 열강의 침탈을 받지만 완전한 식민지가 아니었고 주권이 분할 되어 있었기에 군벌세력과 열강을 반대하는 반제 반봉건 농민군을 중심으로(홍위병)농촌을 혁명의 근거지로 점차적으로 도시를 포위 진입하는 혁명을 진행시켜 갔으며 산악을 근거로 진행된 파르티잔식 투쟁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혁명적 투쟁이나 혁명적 전개가 다르다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두고 직접통치를 행하였고 강압적 통치에 의해 식민지 민중을 억압 수탈한다
공장과 농촌에서 혁명적 전개는 일제에 의해 탄압되고 구속되었기에 그 혁명적 세력은 미약해 보였고 뜻있는 젊은이는 만주나 간도로 이주 빨치산을 형성한다
장백산맥을 중심으로 이동녕이 이끄는 본토입성을 위한 무장 혁명군(임시정부)과 마을과 농촌을 중심으로 광범한 민족해방세력을 규합한 공산당은 일본의 탄압(일가족 몰살과 마을 방화)과 내부분열에 의해 혁명세력이 동요되면서 사상적 근거를 담보하고 혁명세력을 보존 정규적 훈련을 강화하고자 산악으로 투쟁 근거지를 옮겨간다
혁명세력이 열세일때는 주동적인 투쟁을 필요로 한다
빨치산의 투쟁은 혁명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많은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기에 주동적 투쟁과 신속한 대처가 필요했다
장백산맥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의 항일 빨치산 투쟁은 빨치산 투쟁의 서막이었고 세계최초의 빨치산의 효시였다
해방후의 지리산 한라산을 중심으로 펼친 남부군의 투쟁과
1960년대의 중남미의 쿠바나 니카라구아의 혁명도 1970년대의 베트남의 무장혁명도 빨치산식의 혁명이었다
빨치산은 지역적 조건과 정세에 맞는 전술이었지만 생활과 노동에 익숙해지면 혁명성 즉 투쟁성을 잃어간다
쿠바 혁명을 도왔고 주도했던 체 게바라도 혁명 완성후 사회주의적 실물정치에 의미를 상실하고 혁명적 이상과 전사로서 남았듯
빨치산의 투쟁은 이상이면서도 투쟁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인민의 생활과 행복을 책임지고자 하는 주동적인 힘 나의 투쟁이고 인민의 강한 사상적 전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