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위즈(dreamwiz.com)의 커뮤니티 '드림칼럼'중
칼럼명 <생활의 발견>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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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기자시절 필자는, 해인사로 행자승에 대한 취재를 하러 간
적이 두번 있었습니다.
행자승은 정식 승려가 되기 전 수행과정에 있는 예비스님을
가리키는데, 손님들 밥상도 차려주고 이부자리도 깔아주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합니다.
이십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속세를 떠나 이 한적한 산사에서
무슨 이유로 저런 고행의 길을 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같은 또래의 남자로서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마치 수녀들을 보며 다른 젊은 여자들이 "왜 수녀가
됐을까?"하는 생각을 갖는 것처럼 말이지요.
더우기 행자승의 생활이라는 것이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상당수의 행자승들이 도중에 산을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머리를 깍고 산으로 들어올 때야 누구나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겠지만 막상 어려운 수행과정을 겪다보니
도저히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구도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좀 뭣한 얘기지만 성욕해소 문제라고 합니다.
한창 성욕이 왕성할 때 철저한 금욕생활을 해야하는
그들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들겁니다.
한 행자승은 낮은 목소리로 "한 6개월 정도 지나면 얼굴이 누렇게
뜨는데, 그 고비만 넘기면 괜찮습니다"하고 귀띔해주었습니다.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뜬다는 겁니다.
그들이 참기 힘든 게 어디 성욕뿐일까요?
속세에서 그들이 누렸던 문명생활의 모든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고문일 겁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내려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또다른 행자승의 고백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은 머리를 깍았고, 그 순간 사바세계와는 인연을 끊은 겁니다.
부처님의 품에 귀의해서 그들은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고
속세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구도자의 열락(悅樂)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사바세계에서
얼마나 더러운 욕망의 포로였으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한테
피해를 주었는지, 아랫도리의 쾌락을 좇아 청춘을 낭비했으며
악마의 유혹에 빠져 방황했었는지 통렬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몇장의 지폐나 이름다운 여인의 속살이 중요한 게 아니며
알량한 명예나 권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걸
그들은 비로소 깨우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속에서 오히려 사바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한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달관한듯한 표정과 민첩하고 가벼운 몸놀림이
속세의 명예와 富를 좇는 평기자의 눈에는 젊은 부처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해인사의 숲에는 너무나 깊은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노래하는 새와 흐르는 물소리, 우거진 숲과 그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 모든 것이 그윽한 평화 속에 살아있었고,
그래서 생명이 느껴졌습니다. 도시의 소음과 악다구니는
그곳에선 먼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산의 넓고 깊은 가슴은
필자를 어머니의 가슴처럼 푸근하게 감싸 안아주었고, 저는
오랫만에 끝없이 정화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속세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오염돼있었는지를,
처세의 얄팍한 테크닉을 배우고 있었는지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도외시하고 헛된 것에 매달렸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러니까 사람들이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는구나!
필자는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문득 법정스님의 한 수필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시장기같은 외로움의 포로가 돼라"
배고플 때의 그 지독한 시장기같은 고독을 느껴보라.
그 산속에서 필자는 참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보았습니다.
그 외로움은 필자를, 필자 자신과 만나도록 해주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내 자아와의 만남.
그것은 필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충일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불쌍한 중생"
저녁공양을 마치고 저는 주지스님과 차를 한잔 마시는 영광을
누렸는데, 한참 필자를 쳐다보던 주지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필자가 의아해하니까 주지스님이
"그 풍진 속세에서 무엇하러 그렇게 시달리며 사시오.
차라리 머리깍고 우리 절로 들어오시오"
하시는 겁니다. 나보고 스님이 되라는 말씀?
필자는 주지스님의 진의를 곧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지스님이 이어서 "사바세계에 살더라도 절에서 수도하는
마음으로 살면 그게 바로 스님인 것이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눈에는, 특종을 터뜨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며
때로는 선의의 트릭도 불사해야하는 젊은 기자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을까요? 어떤 경지에 올라있을 고매한 구도자의 눈으로는
필자가 참 고생하는 중생으로 보였겠지요.
그날 잠자리에 누워 필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밥먹고 싸고 좋은집에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善인가?
그런 것을 쟁취하기 위해 쏟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저질러지는
여러가지 변칙과 술수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속세를 떠나 부처임의 품안에서 해탈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저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날 산사(山寺)의 밤은 불면으로 깊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