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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로 변한 메론


BY 나의복숭 2002-11-26

경기도와 서울과의 경계선에서
꼬리를 물고 있는 차들속에 나역시 신호를
기다린다고 서 있었다.
도봉산까지 태워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갓길로 슬그머니와서 끼어드는 차들도 있다보니
내 차례의 신호를 받을려면 한참이나 
더 있어야 했는데....
어디서나 차가 많이 밀려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사꾼이 여기선들 예외랴.

어떤 총각이 미제 메론을 깍아서 들고
내 쪽으로 왔다.
환기시킨다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았는데
그 열려있는 빈틈으로 메론을 내민다.
'안사는데요'
근데 안사도 좋으니 맛만 보란다.
메론.
아들이 무척 좋아하는 과일이다.
하긴 이넘이 안좋아하는 과일이 있나만...
앞차는 움직일 생각도 않는데 자꾸 먹어보라길레
혹시 메론 좋아하는 아들이 먹는다면
하나 사줄 생각으로 
"너 저 메론 먹을래?'
"아니요"
안먹는다니 괜히 주는거 날름 입에 넣었다간
코 꿰일거같아 안먹는다고 손을 저었다.

근데 메론파는 총각이 아들 자리로 쫓아가선
'하나만 팔아 주세요. 4000원 이예요"
그리곤 고개를 꾸뻑 숙인다.
아들넘 당황하는 기색으로 날 쳐다본다.
짜식...거절하면 될껄 왜 날 쳐다봐?
그 총각이 쳐다보는 면상에서 사지말란 소리도
못하겠고 그냥 아들넘 옆구리를 쿡 찔렀는데...
아들넘 4000원이란말에 그냥 지갑을 꺼낸다.
만원짜리 한장을 꺼집어내선 건내주고 거슴름돈을
기다리는데 이 총각 왈
'3개 만원 해드릴께요. 첫 개십니다. 부탁합니다'
다시 고개를 꾸뻑하곤 꺼먼 비닐에든 
메론을 막무가내로 밀어넣는다.
'아니예요. 하나만 주세요'
내가 아들보다 먼저 잽싸게 비닐을 밀어내니
아들넘 됐다면서 가잖다.
애 머리통만한 메론 잘못사면 무우맛인줄 알길레
1개만 살려고 다시 총각을 부르니
앞차가 신호를 받아서 슬슬 빠진다.
도리가 있나.
돈 받아쥔 총각은 휭하니 다른 자리로 가버리니...

'1개만 사면 될껀데 왜 3개나 사니?
니는 돈이 남아도나?"
괜히 짜증이 났다.
쥣뿔도 없는 넘이 있는척 하면서
돈 꺼집어내는것도 별로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돈 만원을 우습게 보는거같아 더 속이 상했단
소리가 맞지 싶다.
"내 나이 또랜데...안됐잖아요?'
'안됐긴 뭐가 안됐어? 너그 엄마가 더 불쌍하고 
안됐구만..."
지 엄마는 돈을 수월하게 버는줄 생각하는가보다.
돈버는 모퉁이가 죽을 모퉁이라고
힘들지않고 버는 돈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에이 어머닌 즐겁게 돈 버시잖아요?"
아이구
앓느니 죽지...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돈을 취미삼아 즐겁게 버는줄 아는넘한테
뭔 소리를 하랴.

제사때나 비싼돈주고 사먹는 메론을
3개나 샀으니 얼른 얼른 먹어야지.
아들넘과 메론을 먹는다고 깎았다.
지난번 제사때는 너무 물러서 욕을 딥따하고
먹었는데 오늘은 일단 단단해서 깍을동안
욕은 안했다.
노점에서 샀는데도 백화점서 산거보담 땟깔이 더 낫다는
소리까지 하면서...

쟁반에 짤라서 아들 한개 콕 집어 주고
나도 한개 집어서 한입 베어먹는순간
애구 이게 뭔 맛이람?
보기에는 엄청 맛있어 보였는데
역시나 별로다.
진짜로 무우 하나를 씹어먹는게 나을정도.
'이봐라. 임마. 순 엉터리 메론이다.
이런걸 3개나 샀으니..."
다른건 어떤가싶어 깍아보니 혹시나가 역시나다.
참말로...세상에 믿을넘 없네.
맛보라고 깍아서 들고 다닌거하고 파는거하고는
완전 틀리는건가보다.
입이 10개라도 할말이 없는지
아들넘 슬며시 방에 들어간다.
'너 이거 다 처치해. 니가 샀으니...'
말도 끝나기전에 닫치는 문을 보면서
메론 팔든 총각 욕도 하고 세상욕도 하고
어리석한 아들 욕도 하는데
닫친문 삐쭉 열고 고개 내미는 아들넘 왈
'어머니 욕하는것만해도 만원어치는 되겠어요
그리고는 또 얼른 닫아버린다.
저넘을.. 콱~

저녁을 먹는데 아들넘
'어머니 메론 버렸어요?'
버리긴...우째 먹어도 먹어야지.
내 사전에 버리는건 없다.
'왜?"
'그거요 고추장에 찍어서 먹읍시다"
ㅎㅎㅎ
세상에 메론을 고추장에 찍어서 반찬으로 먹자니...
그래도 처치하기 곤란한거니 일단 깍아서
밥하고 같이 먹었다.
맛이 어땠냐고요?
일단 한번 먹어보시라요. 하하.

오이처럼 아삭 아삭해서
그냥 먹기는 맛없었지만
고추장에 찍어서 먹으니 것도 색다른맛였다.
웃기는 우리 모자.
오늘도 코메디언같이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