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시기에 좌우란 개념이 생겨났다
의회내에서 급진적 혁신을 주장하는 세력이 왼쪽에 앉고 왕정잔재를 고집하고 보수적인 세력이 오른쪽에 앉아서 비롯된것이 좌 우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역사적으로 좌는 혁명적 이념과 이상을 추구하는 세력이며 우는 보스적이고 현실적이며 기존질서를 유지하고 온존시키고자 하는 세력으로 비쳐졌다
따라서 좌는 혁명적 이념인 노동계급 사상이었고 프랑스의 시민혁명시 노동자에 의한 피의 일요일 시위에서 노동자 이념의 시작된다
이것에 반해 노동자 시위를 진압하고 공화정을 폐지하고 억압하는 우의 반동적 기운과 부르조아 질서를 유지하려는 기존세력의 우익적 행태로 일요일 시위는 피를 흘린채 공화정의 이상으로 남는다
이것이 콤의 기원이었고 그 이후 공산당 선언의 무계급 사회를 지향하는 계급투쟁의 이상이었다
우리나라의 공산주의의 기원은 프랑스의 좌익적 사상 노동자 계급의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후 (1917) 민족해방 차원으로 수입된 사상이었고 그 당시 세계 콤 소몰 지원 아래서 우리식으로 만들어가는 계급 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사상이론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해방 운동은 노동자 사상이냐 부르조아 이론이냐가 아니라 식민지 피압박 민중의 민족해방이라는 과제속에서 출발한 민족해방 방안으로 계급적 중심적 지도사상이 담겨 있음을 의미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당시 중국이 완전한 식민지가 아니었고 신해혁명이후(왕정이 아니었음)반봉건과(군벌)반제국주의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왕정에 의해 주권을 넘겨주고 일제의 완전 식민지여서 반제를 도모하고자 중국과 연대가 가능하였다
공산당이란 것은 당파적이다
계급적 사상으로 무장한 계급투쟁의 부대이다
볼세비키 부대도 계급의 전위였고 중국 공산당도 치열한 좌우익 편향을 비판 견제하며 중국 혁명을 완성해 갔다
조선노동당과 남한 노동당도 그 시원은 조그만 반제 동맹에서 출발하거나 공산주의 청년회 같은 작은 서클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해체 규합하면서 반제운동과 계급투쟁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좌우 논쟁을 프랑스의 왕정타도나 러시아 혁명의 볼세비키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다
조선이 해방 되었음에도 한쪽은 반제의 미과제가 남겨져 있고
한쪽은 사회주의를 사회를 건설한 사회라면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이란 반제와 사회주의 지향의 연대와 통일일 것이다
그러나 반제의 과제는 식민지 와 미군정의 완전한 청산일 것이고 그리고 발전된 자본주의의 편향된 부의 축적을 분배하는 것이다
베트남이 통일을 위해 남북 전쟁을 벌일때
기나긴 전투에서도 결국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북의 승리로 끝났다
베트남의 역사는 프랑스의 식민지하에서 진행된 민족해방 노선이었고 남북 통일에 미국이 개입하고 외국군대가 개입하여 장기간의 전투를 치르고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겪은 6.25는 3년만에 종결되었고 그것은 외국군과의 싸움임에도 희생을 최소화 하려는 인민의 노력이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된 베트남의 전쟁은 통일로 이어졌고 우리는 아직도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세계는 자본의 자유이동을 허용하는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다 자국에 맞는 경제 체제를 일구고 있다
공산주의는 시장경제는 물론이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려서가 아니라 무계급 사회란 이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제국주의의 역풍이 불어오고 경제 봉쇄정책이 취해진다
상품이란 세계이고 항상 이동을 한다
그럼에도 아직 전세계 노동자는 단결되지 않았고 각각의 상황에 처한 상품의 역사도 다르다
파업의 역사는 일의 역사고 그 일의 역사는 노동계급의 핵심이었다
처음만난 노동계급은 자기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농부는 농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노동자는 각부문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처음부터 혁명이나 사회주의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노동자 혁명사상은 진보적 세계관의 중심 축이었지만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병참기지화와 제국주의의 식민지 산업전략에 의해서 노동자 계급이 발생하고 압박과 착취가 가해지면서 혁명적으로 가져왔다
해방후 건설된 남한 노동당과 인민당 신민당등의 좌익적 성향과 민족적 성향을 가지고 건국준비위원회로 모여 들었지만 미군정의 실시로 좌절되고 6.25이후의 진보당의 핵심인물이 구속 사형되면서 혁명적 좌익은 거의 일어서지 못했다 그 성격은 반대 급부에 의한 인민의 탄압이었고 인민의 수난이었고 좌절이었기에 침묵과 방관의 역사였는지 모른다
4.19이후에 피기 시작한 통일 논의와 혁명세력도 인혁당과 통혁당이란 혁명적 전위세력으로서 당파적이었다 할지라도 수구의 인민 탄압의 역사이래 인민적이 아니었다
좌는 계급적이 아니다
좌는 노동계급의 수난의 역사고 노동의 역사다
혁명과 상처의 역사고 좌절과 희망의 역사다
우는 혁명의 역사라기 보다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 역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좌우는 당파적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에 철저하면 좌편향이고 연대와 단결을 하면 우편향이었다
노동계급이 연대와 단결의 주체임에도 시민 혁명의 역사만 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