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38도선을 경계로 북은 소련군이 남은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38도 이북에 주둔한 소련군대의 포고문 첫날 [선언]은 다음과 같다
{조선 인민들이여!...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 역사의 첫 폐지가 될 뿐이다. 화려한 과수원은 사람의 노력과 고려의 결과이다.
이와같이 조선의 행복도 조선인민이 영웅적으로 투쟁하여 꾸준히 노력하여야 달성한다......조선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소련군대는 조선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만한 모든 조건들을 지어 주었다. 조선인민 자체가 반드시 자기의 행복을 창조하는 자로 되여야 할 것이다}
남북조선을 가지고 미국과 소련은 서로 해방자적 입장을 취하거나 점령자적 입장을 견지했다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리고 여기서 4개국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북조선인민과 남조선 민족해방세력들은 신탁지지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즉각적 독립을 주장했고 즉각적 독립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는 심정적 동요층은 신탁통치 반대를 하였고 결국 좌우로 나뉘어져 치열한 노선싸움과 분열을 하게 된다
결국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었고 그후 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리고 남북조선의 완전한 독립국을 위해 남북조선에 주둔한 소련군대와 미군의 즉각철수를 주장하였으나 미국은 신탁통치 반대 궐기와 테러가 난무하고 있다고 판단 자주국의 위상을 홀로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여 조선독립에 관한 것을 유엔에 상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유엔 임시 위원회를 파견하여 선거를 실시하려 하였으나
자주국의 위상을 유엔에 맡길수 없다 하여 북조선은 맹렬히 반대 투쟁하였으며 남한도 대부분 지역에서 선거 반대와 투표 참가를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의 유엔에 대한 반발이 거세어지자 유엔은 투표가 가능한 지역에서 투표를 실시하도록 하였고 남한에서 미국의 강점하에 5.10 총선거를 실시 7월에 제헌의회를 구성한다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참여한 정당 단체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한국민주당][대한노총][대동청년단][민족청년당]이었고 망국단선에 반대하고 보이코트한 단체및 정당은 [남조선 노동당][인민공화당][근로인민당][민주독립당][민주한국당][남조선청우당][선진당][사회민주당][민족자주연맹][한국독립당][노동조합 전국평의회][농민조합 총연맹][민주애국청년동맹][남조선 민주여성동맹][민주기독교 유교 불교도 총연맹]등이었다
북조선에서는 1948년 8월 소련군대가 일부 철수 하였고 9월에 북조선 인민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1948년 12월에 주둔했던 소련군대가 완전히 철수 하였다
남한에서는 1948년 7월에 제헌국회가 성립되자 1948년 8월24일 [한미군사협정]이 체결 되었다
이 협정에 의하여 남조선 주둔미군 사령관은 이승만 정부수립후 [국방권]과 [해안경비대]와 경찰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보유하며 남조선에 있는 제반시설을 관할하며 국군의 편성및장비에 관한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1948년 9월18일 [재정및 재산 이양에 관한 한미협정]이 국회에서 비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