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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집


BY 스타리 2002-12-06

경춘가도..서울을 벗어나 춘천가는길.. 남양주 시청을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면.. 가도 양옆으로 아파트 건설이 한창인데.. 자그마한 돌담에..제법 위엄을 갖춘 고 건축물을 하나 보게 된다.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언젠가 남편직장상사가 유적지 답사를 무척이나 좋아해서..그 분을 따라 한번 가본적이 있다고 하는 그런곳이었다. 길옆에는 자그마한 팻말이 하나 서있다. '궁집' 아래쪽엔 영문으로 '공주의 집'이라고 되어있다.(자판 고치기 싫다^^;;) 한번 가볼까도 했지만..한창 고개넘고..차들이 휙휙 지나는 길이라..집안에 보이는 울창한 나무들과.. 사극에나 나올법한 대문을 보면서 지나치길..몇번.. 그저..옛날에 공주가 살았으려니 하고 지나치긴 했었다. 그런데..며칠전 우연히 남양주답사 안내서를 보고서는 간단히 나와있는 그 집에 대한 내력을 보고나서는.. 그 앞을 지날때마다 웬지 안쓰런 생각과 숙연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나라 지명중에 '궁'자가 들어가 있는 곳은 십중팔구..대궐 즉 왕가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제부도 가까이 궁평리라는 곳은 예전에 궁궐소유의 땅이 있어 그곳에서 나온 쌀은 아직도 임금이 드시던 쌀이라 맛이있다거나.. 궁내동이니..하는 지명들..다 그런것이라 한다.. 역시 궁집 또한 그런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겠지만.. 그냥 공주의집이라 해도 매우 낭만적으로 들릴테고 오히려 알아보기 더 쉬운데도 그런식으로 한자표기를 해서 먼소린지 모르게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암튼..이 궁집은 조선시대 영조대왕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시집온 집이라 한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그래서?? 유난히 막내딸을 사랑했던 영조는 손수 집지을 나무와 건축가들을 보내서 집을 지어줬다는데..그래서 궁집은 당시 대궐의 건축양식과 사대부들의 가옥구조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그런데 좀더 알아낸 사실은..시집온 공주의 나이.. 12살에 시집을 와서..1남 2녀를 낳고..19살에 죽었다는.. 세상..19살에 죽었다니.. 12살의 나이면..울 딸로 치면..하이고..그 작은것이 가마에 흔들리며..망우리고개를넘어..그 먼길을 '시집'오다니.. 거기다..19살에 죽었다니.. 무언가 많은 이야가 숨어있겠지만..그 사실을 안순간.. 그 집앞을 지날때마다..웬지 마음이 편치 않은것을.. 한편 생각해보면..그러한 소재로 우리나라에도 뭔가 전설이 생겨나고 동화가 생겨나고..소설이 나옴직도 한데..아직 그런 내용의 소설이나 글을 본적이 없는것 같다. 아마..이 글을 읽는 글 잘쓰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애잔하고 우리다운 소설 한자락이 써질만도 할 것 같았다. 오늘도..그 궁집앞을 지날때..애잔한 마음과 측은한 마음을 피할 수가 없을것같다. 높은 담장속 수백년전 공주의 아름다웠을 옷고름을 상상하며.. 크리스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