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88

휴일.. 나 오늘 이렇게 살았어


BY 인어아저씨 2003-01-19

15:00 p.m
눈을 떳다
일을 하나 더 시작한 후로 오랜만에 잠다운 잠을 잤다
하루에 두번씩 잠을 잔다
아침에 2시간 오후에 3시간..
오늘 아침에는 감자탕에 소주한병을 마셨다
TV를 켰다
특별히 재미있는 건 없었지만 볼륨을 높혔다
방안을 짓누르는 적막감이 싫었다
휴대폰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밧데리가 충전되어 있는걸 확인하고 폴더를 닫았다
그리고 TV 볼륨을 더 크게 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하루종일 이곳에 글을 쓰면서 보낼 생각이다

15:45 p.m
신발장 위에 신문이 수북히 쌓여 있다
대부분 한번도 펴보지 않은채로 쌓여 있다
오늘 아침 배달된 신문중 스포츠 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메이저리거 김병현이 연봉 대박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개그맨 심현섭이 개그콘서트를 떠난다고 한다
재미 있을건 하나도 없었다
난 아무래도 신문을 재밌게 읽을줄 모르는가 보다
신문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 행복해 했다
기사 내용에 따라 흥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하하호호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사내용을 읽어준다
시시한 기사거리도 그녀가 읽으면 특별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된다
신문을 접고 샤워를 했다
이제 잠깐 밖에 나갔다 와야겠다
배도 고프고.. 바람도 좀 쐬야겠다

17:30 p.m
담배 한갑을 사고 무얼 먹을까 생각하다가
손짜장 집에 들어갔다
내부는 깨끗했지만 손님은 단 한명도 없었고
주방장과 서빙하는 남자가 TV를 보고 있었다
손짜장을 시켜놓고 TV를 보았다
동물 퀴즈 프로그램인데 아메리칸들소 이야기가 나왔다
한때 1억마리가 넘던 들소떼가
지금은 4천여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주방은 밖에서도 훤히 보이도록 오픈되어 있었는데
주방장은 직접 손으로 면을 뽑기 시작했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내부 구조가 그래서인지
주방장이 면을 테이블에 내려 칠때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홀 전체에 울렸다
내리치는 면발에 맞으면 정말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소스는 별로였지만 면발은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다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
오늘따라 신작 비디오가 많이 남아있다
이제 볼사람은 거의 다 보았나보다. 이제 내가 볼 차례가 되었다
욕심을 내서 3편을 빌렸다
'중독' '가문의 영광' '연애소설'
'집으로'와 '소림축구'도 있었지만 그건 다음을 위해 남겨놓았다
연체료까지 5500원을 지불했다
짜장면값 3500원을 낸걸 생각하니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패밀리마트에 잠깐 들러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거기에서 일하는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있는데
고소영에 임은경을 약간 섞은 듯한 인상이었는데
콧등에 있는 작은 점이 꽤나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커피 한잔 마셔야겠다..


20:25 p.m
방청소 했다
빨래도 하고 설겆이도 했다
며칠전에 먹었던 라면 국물이 냄비바닥에 말라 붙었있었다
김치찌게도 하고 소고기국 미역국 감자국 ..
스파게티 카레도 했던 냄비였는데 요즘은 늘상 라면국물만이 남아있다
라면 스프에 들어있던 조미료때문에 냄비가 많이 괴로워할거 같다

하얀색 스웨터를 같이 빨았더니
빨래에 온통 보푸라기가 묻어버렸다
검정색 가죽점퍼에 받쳐 입으면 아주 예쁜 스웨터다
보푸라기를 떼어내면서 자꾸 누가 생각났다
빨래 절반정도는 옷이 뒤집혀져 있었다
그것들을 일일이 바로 뒤집지 않고 그대로 널었다
뒤집혀진 옷들을 보고 또 자꾸 누가 생각났다

설탕이 떨어져서 올리고당으로 대신해서 커피를 마셨다
젠장.. 이번엔 올리고당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가문의 영광'부터 시작해야겠다


22:53 p.m
'가문의 영광' 실망..
한번 웃어볼려고 고른 영화인데 억지 웃음도 잘 안나왔다
어떻게 500백만 이상이 관람했는지 모르겠음..
딱 두장면에 나오는 강아지 '쉬츠'만 인상에 남았다
개구장이 같은 얼굴.. 어릴때 죽은 '깜이' 하고 많이 닮았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인간복제에 대해 방영하고 있다
아기가 아닌 성인을 복제할수 있을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육체 뿐만 아니라 그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생각과 감정까지
모두 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게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처한 어쩔수 없는 상황때문에 그 여자에게 갈 수가 없다
남자는 자신을 복제한다. 복제된 자신을 자기자리에 놓고 자신은 사랑하는 여자에게로 간다
그런데 복제인간도 그녀를 사랑한다. 자기가 복제된거란 것조차 잊고
그녀에게 간 남자가 사실은 복제된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복제된 인간은 또다시 자신을 복제하고 이중복제된 인간을 자기 자리에 놓고 그녀에게 간다. 그리고 원조 남자를 죽인다.
이중으로 복제된 남자도 그녀를 사랑했고 자신을 복제한자가 원조 남자를
죽였다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복제된 것인지 누가 복제한 것인지 서로 헷갈리게 된다
그저 또다른 나 자신이 자기를 죽이고 또다른 나를 복제할 거라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렇게 복제와 살인은 거듭되었고 복제 과정속에서 그녀를 사랑했던 감정을 상실하게 되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현실속의 그녀와 일치가 되질 않는다
상실감과 실의와 자책감에 빠져.. 복제된 자신이 아닌 진짜 자신을 죽인다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복제되었다면 난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건 불가능할 것이다
약속장소에서 사람들 틈에 있는 그녀를 쉽게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난 알수 있다.. 누가 진짜인지.. 그리고 사랑할 것이다


괜히 재미없는 영화 보다가 엉뚱한 상상만 했군..
밥을 좀 먹고 와야겠다. 손짜장 먹고 아무것도 안먹었군..


00:30 a.m
김밥나라에 가서 제육덮밥을 먹었다
조미료 때문인지 혀가 약간 얼얼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24시간 영업이라 자주간다
좀 멀긴 하지만 걸어서 갔다왔다
밤 산책을 한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인지 밤공기가 시원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까 널어 놓았던 빨래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다
울샴푸 때문인지 특유한 냄새가 그리 나쁘지 않다
올리고당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연애소설' 봐야겠다


02:35 a.m
"어쩌면 좋죠? 전 사랑에 빠졌어요."
"별일 아니군.."
"아니예요. 난 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 연애소설 중 삽입영화 '일 포스티노'중에서 >

재미있다. 추천..
마지막에 편지 읽을땐 눈물이 나왔어
차태현도 '엽기적인 그녀'에서 만큼 괜찮았어

'처음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하루에 백번 생각나던 것이 그다음엔 99번.. 그다음엔 98번
그다음엔 97번.. 나중엔 머리가 까맨는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는 했었는지.. 그런거였어요..'

하루에 한번만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한번이 24시간이니까..

나도 사진을 꺼내 보았다
화장하는 모습.. 요리하는 모습..
막 샤워한 얼굴..
작은 점이 얼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헷갈렸었는데
사진을 보니까 기억났다
나도 왼쪽 귀에 점이 있다는걸 기억할까..

'중독'도 재미있으면 좋겠다


05:20 a.m
나쁘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빙의 된걸로 스토리가 전개되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형으로 속인 이병헌이나 거짓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 이미연이나
다 이해할 수 있을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정말 다른 사람에게 들어간다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사람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거니까..
나는 영혼을 사랑한다..



이제 자야겠어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먹고 비디오본게 전부네..
오랜만에 잘 쉬었어
낼부턴 또 바빠지겠지

'당신 목소리가 기억나질 않아요.. 기억하려하면 할수록
더 기억나질 않아요.. 당신이 날 한번만 불러주면 좋겠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어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래도 못알아들을 일은 없으니까..
아주 오랜 후에.. 10년도 더 지난 후에..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오는거야
그래도 금방 알수 있지.. 듣는 순간 말이야.. 안그래..?

이제 정말 자야겠다

05:45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