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826

딸아! 딸아!


BY sanulim 2003-02-01

설날이 오면 웃어른께 세배를 하러 가는 풍습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 어렸을적 웃어른으로는 부모님과 외가댁의 외할머니 외숙모 삼춘들이 계셨다

설이나 제사가 오면 외가집에 모두 모여 한바탕 시끌 했지만 그때는 외숙모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문 앞에서 집안을 기웃이 엿보곤 했다

외가집!
지금은 외가집 하면 먼 시골이나 추억을 떠올리는 단어이지만
나에게 외가집은 가고싶고 들어가고 싶어도 어렵고 무서운 곳이었다

어느날 설이 돌아오자
나는 아침일찍 동생손을 잡고 몰래 집을 나와서 외가댁으로 향했다
왜 그렇게도 외가댁이 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외숙모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할머니 방문을 열고 할머니가 일어나시기도 전에 넙죽 절을 했고 기침을 쿨룩 하시면서도 할머니는 쌈짓돈을 풀어 복돈이라고 건네 주셨다
외숙모의 엄한 군소리를 들으며 외가댁을 나왔고 그 길로 언덕배기 우리집으로 내달려 왔던 기억이 아련하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외가집에 가서는 가만히 있어야 하고 일찍 가서도 안된다고 했지만 어렸을적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홀로 되신 외숙모와는 힘들고 어려운 사이 같았고 딸에게 어머니는 지나치게 외숙모 다짐을 하셨다
특히나 나에게는 딸은 재수없으니까 설날 첫날은 일찍 가서는 안된다는등 늘 염려와 다짐이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지나친 다짐과 염려는 팔자타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태생의 시가 안좋다느니 태생이후 아이가 잘 크지 못했다는등 영웅이 될 수 있음에도 딸이고 여자라서 힘들게 살 것이라는 불안한 미래가 늘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어머니는 미리 나의 험난한 길을 자청해서 힘든 여성의 길을 밟고 가시면서 한숨과 염려로 너는 잘되라는 어머니의 역사가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이야 자식이 많지 않아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자식에게 전력 질주하지만 예전엔 자식이 많아서 염려와 불안이 짙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어려운 외숙모와의 관계는 홀로사시는 여성과 남편이 있는 여성의 어려운 관계같아도 올케나 시누를 어렵게 느끼는 그 어머니에 그딸이란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산속 깊이 틀어박혀 문밖 출입도 않고 땡볕에 앉아 밭일만 하시던 어머니의 찢어진 런닝 땀내음이 그리워옴은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이 그리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