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소망의 섬, 그 기슭에 다가갈 수 있다면…. '슬픈 베아트리체'를 열창하던 조용필 씨는 얼마나 절절했는지. 그대 슬픈 베아트리체,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꽃상여에 그댈 보내고 살아야 할 의미마저 없으니…. 나는 또 그 노래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조용필 씨가부르면 비장하고 깊고 슬픈 그 노래는 내가 부르면 청승맞고 참담했다.
가수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조용필 씨의 아내가 그렇게 꽃상여를 탔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 나이가 들수록 이별이 서툰 것은그 사람과 함께 만든 세월의 옹이가 그만큼 깊어지기 때문인가.
이것만은 안 된다고, 이 사람만은 안 된다고 절박하게 붙들어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가는 물처럼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는 존재들을 통해외로워지는 인생 앞에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 깊은 슬픔도 나를 떠나고 우리를 떠나면 속물적인 뉴스가 되는 건지. 사람들은 조용필 씨의 아내가 남긴 유산을 두고 툭툭 농담을 던진다. "복도 많아, 유산이 꽤 될 텐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했다. 농담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계란유골이기 때문이었다. 웃고 나서 홀가분해지지 않으면 유머가 아니다.
물론 조용필 씨는 유산도 많았고 복도 많았다.
그 복은 폭포수 같은 돈벼락을 맞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남긴 슬픈 돈을 그저 눈먼 돈으로 보고 챙기지 않고 아내의 손길로느껴 인연이 있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애틋한 마음에 있었다.
400만달러를 조용필 씨 앞으로 남긴 안진현 씨는 "평소 꿈꾸던 음악교육 사업을 위해 써 달라"고 했단다. 그러나 조용필 씨는 세금을 빼고 나머지 200만달러 전액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수술비로 사용할 계획이란다. 아내가 심장병으로 불시에 떠난 게 아직도 믿어지지않는다고, 아내를 기려 형편이 어려운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유산을 쓰겠다는 거였다.
음악하는 남편을 위해 음악교육에 쓰라고 유산을 남긴 아내와, 아내의 유언은 내 힘으로 이루겠다고,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억하며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유산을 쓰겠다는 남편, 이렇게 아름다운 어긋남도 있었다.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부부였다.
우리에게도 돈을 벌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돈 버느라, 돈 지키느라여념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돈만이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는튼튼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고. 성장의 신화에 매혹되어 있던 그 때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돈 지키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에 돈 없이 만날 수 있는 마음들을 놓치고 휑해진 마음을 '나'에게조차 들키기 싫어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더 독해지지는 않았는지. 정신없이 바쁘고 바쁘다는 것이 유일한삶의 내용인 진짜 가난한 인생은 아니었는지. 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모든 것이 '돈'의 힘만은 아니었는지. 돈 많은 부모 믿고소비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 덕택에 자기 힘으로 성실하게 사는 법을 우습게 알게 되지는 않았는지.아내가 남긴 돈을 돈으로 보지 않고 아내의 손길로 느끼는 남자가 보여준다. 인생의 자유는 돈의 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자유는 많은 돈으로 마음대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고. 인생의 자유는 필요한 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는 것은 동ㆍ서양의 현자들이 가르쳐준 공통의 지혜였다.
어지럽고 기막힌 곳도 여전히 많지만 순수하고 따뜻한 곳도 하나, 둘늘고 있는 곳이 우리 사회다.
남의 아이를 내 아이로 알뜰하게 키우는 국내 입양이 늘고 있고, 기부문화가 생겨나는 분위기가 그렇다. 1% 나눔운동을 하는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이사장이 그런 얘기를 한다. 돈을 잘 벌던 변호사 시절, 보이는 것은 더 넓은 아파트고 더 좋은 차였다고. 그래서 어느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했다고. 좋은 아파트에 기사 달린 차를 타고 다닐 때보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홀가분하고 행복하다고. 나는 그의 얘기를 듣는 내내 부끄러웠다.그래서 그의 얘기가 더 박혀왔다.
그는 진짜 '성공'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은 '기부'라고 말한다. 그 기부의 정신은 나눔이다.
쌓아두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썩고 만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사랑도 흘러야 한다. 물이 썩지 않는 건 흐르기 때문이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교수 ja1405@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