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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 전해 주던 그 머슴애 어디 있을까(펌)...


BY cok8821 2003-02-24

내 고향은 겨울이 먼저 오고 봄은 늦게 오는 강원도 홍천입니다. 겨울이면 눈이 유난히 많이 와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뒤덮이곤 합니다.
눈 내린 아침이면 우리는 아침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동산에 모여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 위에 볏짚을 깝니다. 그 위로 형이 앞자리 운전수로서 동생들을 뒷자리 승객으로 정돈하여 앉히고는 멋지게 썰매를 탑니다. 우리는 비탈진 동산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곤 했지요. 그렇게 해 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얘들아 밥 먹어라.” 하고 엄마가 부르시면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엉덩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곤 했습니다.
쌓인 눈이 녹기도 전에 또다시 눈이 내리면 우리는 참새 사냥을 했습니다. 참새가 좋아하는 좁쌀을 뿌려 놓습니다. 삼태기를 가져다가 좁쌀 위에 나뭇가지로 받쳐 놓고 나뭇가지에는 길게 새끼줄을 매서 안방까지 끌고 갑니다. 창호지 사이에 조그맣게 달아 놓은 유리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참새가 와서 정신없이 먹이를 먹을 때 새끼줄을 살짝 당겨서 참새를 잡는답니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달력을 바라보며 어서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지요.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남쪽의 봄은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했으니까요. 드디어 얼음이 녹고 개울물이 노래를 부르며 흐르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밭으로 들로 양지쪽을 골라서 냉이며 씀바귀를 캐러 다녔지요.
그러다보면 성미 급한 살구꽃 진달래꽃이 나뭇잎보다 먼저 봄 마중을 나오지요. 아, 친구들과 손을 잡고 동산을 오릅니다. 예쁜 꽃만 골라서 입 안 가득히 물고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친구네 처마 밑에서 아주 큰 벌집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심심하던 터에 배짱 좋은 옥이가 입맛을 다시더니 “우리 저거 따 보자. 저 안에 꿀이 많을 거야.” 하고 말했습니다.
옥이의 입을 쳐다보던 우리는 갑자기 꿀이라는 말에 군침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요. 꼬마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높이였지만 우리는 꾀를 내어서 긴 빨래 장대를 넷이서 들고는 “하나, 두울, 세엣…….” 구령에 맞춰서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벌집은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그네를 타고 있었고 그 작은 집에 어떻게 그 많은 벌이 살았는지 이해가 안 갈 만큼 대 군단의 벌들이 “위잉…….” 하고는 열을 받아서 몰려 나오더군요. 정말 대책 없는 일이었어요. 우리는 정신없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음만 급했지 발이 말을 안 들어 나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난리를 쳤을까 갑자기 봉자가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났어요. 벌에 쏘인 거죠. 그런데 집 안에 계시다가 손녀의 우는 소리에 나오신 봉자 할아버지가 상황 파악을 하시고는 “모두 엎드려라. 일어나면 쏘인다. 벌들은 앞만 보고 달리지 아래는 볼 수가 없단 말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그러나 봉자는 어쩐단 말입니까? 엎드려서 바라보니 할아버지가 마른 쑥에다 불을 붙여서 연기 나는 쑥을 들고 봉자에게로 가시더군요. 그러자 봉자 옆을 비행하던 벌들이 후퇴를 하더군요. 봉자 할머니는 벌 쏘인 데서 독침을 빼내고 장을 바르신 뒤 김치 이파리 부분으로 덮고는 칭칭 감아주셨습니다. 그게 치료 끝입니다. 우리는 그날 눈물이 쑥 빠지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벌집은 그날 밤 봉자 아버지가 자루에 담아서 끌어내리셨죠. 다음날 봉자의 얼굴은 바가지만하게 퉁퉁 부었고 말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개구리의 합창이 들려오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하고 하모니카 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얼마나 멋있던지요.
“누가 이렇게 하모니카를 잘 부는 걸까?”
나는 소리에 취해서 소리나는 방향으로 걸었어요. 까까머리 머슴애더군요. 그런데 저와 마주치는 순간 하모니카 소리를 멈추더니 겉표지가 모두 떨어지고 없는 순정 소설책을,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며 고개를 숙인 채로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뛰어가더군요. 그 책 속에는 미처 물기가 마르지 않은 네잎클로버가 꽂혀 있었어요. 행운을 선물했던 그 머슴애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리울 때마다 꺼내서 혼자만 그려보는 내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면 늘 입가에 미소가 흐릅니다.-함께가는세상 3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