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와는 달리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옆에서 자고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결혼이 늦어서 아이가 어린 탓인지,
친구들 아이들은 벌써 대학을 간다, 군대를 간다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제 초등생이니 한편으로는 초조한 생각도 듭니다.
더우기 며칠 전에는 4학년 짜리 아들녀석이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다가
급기야는 돈까지 갖다준 사실이 밝혀져 집안에 한바탕 난리가
났더랬습니다. 그런 일은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내가 막상
당하고 나니 참으로 난감하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얼마전 왕따사실을 알고 아이들을 만나서 혼을 낸 뒤로 조용한가했더니
아들녀석의 돼지저금통이 이상해진 걸 아내가 발견하고 추궁을 하니까
한 결손가정의 아이가 돈을 달라고 해서 조금씩 갖다준 게 무려
30만원 가까이 되는 겁니다. 그 집에 전화를 해서 난리를 친 뒤로 일단은
문제가 마무리된 것같은데,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찜찜합니다.
4대독자라고 귀하게만 키웠는데 그 녀석이 그동안 그런 마음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맘도 아프고 울분도 터지더군요.
아내는 "지금이라도 문제가 밝혀졌으니 다행"이라며 "우리가 모르는 상태로
계속갔으면 어쩔뻔했느냐"고 말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지만, 며칠동안
속이 끓는 것은 어쩔수 없더군요.
점심때 식사를 하다가 주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마침 자기도 경험자라며
조언을 해주는겁니다. 자기 아들은 동전 20만원이 든 저금통을 통째로
친구한테 갖다 상납(?)했다는겁니다. 하도 화가 나서 그 아이집을 찾아
갔는데 그 아이 아빠가 "애들 일 갖고 뭘 그러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더라는겁니다. 그래서 "일단 경고하는데, 아이단속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왔는데, 그 다음에도 또 돈을 빼았더라는겁니다. 그 남자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 아이 아빠를 만났는데 역시 "아이들 일인데---"
운운하더라는 겁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그 아이아빠를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죽지않을 정도로 패주었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남자는 검도, 태권도,
합기도를 합쳐 10단이나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아빠와 아이가 싹싹 빌며 용서를 빌었고, 사태는 종결.
남자는 자기는 10단이나 됐지만 정작 아이는 연약하게 키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날부터 아이에게 검도를 비롯해서 각종 운동을 시켰으며 아이는
강하게 성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느낀 게 참 많습니다.
아이들이 겉으로는 아무 일없는 것같아도 속으로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슨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부모들은
늘 자녀에 대해서 관찰하고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남자들이 돈벌어다주는 걸로 남편의 일, 아빠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닌 것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쉬운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의무가 아빠들한테
지워져 있는 것이지요.
다음달부터 당장 아이와 함께 검도장엘 다니기로 했습니다.
착하고 나약한 껍질을 깨고 강하고 굳센 아이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그렇게 나약한 심성으로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가겠습니까? 저녁에 퇴근해오니 아들녀석이 권투글러브를 끼고 팔을 막
휘드르고 있더군요. 베란다에는 샌드백도 달려있고---. 아내의 말없는
배려이겠지요. 나는 속으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아들아. 부디 강한 아들이 되거라. 세상을 향해서 끊입없이 너의
글러브를 휘둘러라. 이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고 인생은 결코 녹녹치
않은 것이란다. 네 스스로 싸워서 이겨야한다. 그것이 인생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