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71

편지..


BY 2주만에.. 2003-03-09

안녕.
잘지내니?
나야...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함께 있어도 보고싶어서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금방 또 끌어안고 입맞춰주던 사람.. 바로 나야..
난 잘 지내냐구..?
궁금하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고는 있는건지.. 궁금하긴 한거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건지.. 정말 모르겠어
'다음에'라고 했지.. 언제라는 말도 없이 그냥 다음에..
난 모든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줄 알았어
그리고 매일같이 그 "다음에"는 바로 오늘일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냈어
뭔가 불편했던 마음이 있었다면 기분이 나아질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그래서 편지도 하지않고 꾹 참았어
솔직히 말해서... 너무 힘든 날들이었어
어느곳을 보든지 당신이 있었고
어느곳을 보든지 당신이 없어
이렇게 힘들고 슬퍼하다가 죽을것 같았어
가슴속에도 눈물이 나오는건지 폐에 물이차서 익사할것 같기도 하고
술을 많이 먹으니까 위장병으로 죽든가
담배 많이 피우니까 폐병으로 죽든가
뇌종양으로 죽든가.. 매일같이 괴로워한다면
머리속 세포안의 DNA가 정상활동을 할리 없으니까

좋은생각은 하나도 들지않고 자꾸만 최악의 것들만 떠오른다
그렇지 않을거라고 애써 자위하는 것도 너무 힘에 겨워
나 자신이 나쁜 생각들에 무너지면 .. 정말 마지막이 될거라는 두려움에
당신과 얘기하게 되면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사실이라면..
난 어떻하지..


절망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죽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어느날은.. 그래도 죽는건 두려워서
실패하지 않고 고통없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헤매기도 했어
그런 내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게시판에 보니까 이런 질문이 있더라
"당신은 왜 사십니까?"
여러 사람이 답변을 달아놨어
죽지못해 산다는 말부터, 사랑하기 위해 산다는 말까지..
나도 썼다.
죽기전에 보고싶은 사람이 있어서... 라고
모든것이 절망으로 끝나버린다면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 외에 날 붙들고 있는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
먼저 아이가 생각났어
하지만 내가 없어도 충분히 보살피고 사랑해줄 사람이 있었어
같이 얘기하다보면 아이 속에는 이미 독립된 인격체가 들어 있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건 아버지였어
아버지보다는 오래 사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살아생전에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보다 언제쯤 돌아가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드는걸 보면
아버지보다 오래 살겠다는 것도 결국,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이기심밖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가장 날 붙들고 있는건 .. 바로 당신이야
내가 이세상에 없다면 ... 당신이 마음 아플테니까.. 괴로워서 견디지 못할거 같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아프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 그거였어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이지만 말이야
당신이 이제 날 사랑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고,
너무 행복해서 이제 나같은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내가 없어도 당신의 슬픔은 오래가지 않겠구나..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겠구나.. 하고 생각됐어


얼마전에 '하치이야기'책을 봤어
하치 라는 강아지 이야기야
17개월을 하치를 사랑해주던 어느 노 교수가 사고로 세상을 뜨자
10년 동안 한결같이 시부야 역으로 교수를 마중나가는 하치의 이야기야

"많이 말랐구나. 너를 보면 우리까지 슬퍼진단다. 하치. 왜 기다리는거니?"
"당신도 참, 하치는 기다리고 싶은 거예요. 헛일이라 하더라도 그러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다. 하치의 기다림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치가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일 뿐이다.

사랑과 집착에 무슨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봤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났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죽었든지 살았든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못잊어 한다고 그걸 집착이라고 하진 않을거야
그렇담 하치는 행복한 삶이었을거야
살아가는 이유가 있었고, 만날순 없지만 기다리는 님이 있었고,
그 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테니까
떠난 사람이 남겨진 사람을 마음속에서까지 밀어내버린다면
남겨진자의 그리움과 사랑은 쓸데없는 집착으로 느껴질거야
자신의 사랑이 상대방에게는 집착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남겨진 자의 가장 큰 고통일거야...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만약에 하나님이 하치의 마음에 감동해서
언제든지 네 주인을 꼭 한번만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죽을때까지 만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기다림은 하치가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언젠가는 돌아올지 모른다는..
하지만 단한번의 허락으로 만난 후에는 더이상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게 될테니까


힘들때마다 생각했어
언젠가 보고싶은 사람을 만날수 있겠지..
그리고 그 사람도 날 보고싶어 한다는..
그 믿음이 깨져버릴까봐 난 두려운거야...

당신도 알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난 사실 죽고싶지 않아..
오래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