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오태규 (politicsnews) ▒
일본검찰, 왜 신뢰도 1위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평 검사들의 대화는 이곳 일본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토론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리 뚜껑이 열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토론의 감상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검사들은 자성의 모습이 전혀 없었으며, 인성교육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과 평 검사의 대화라는 틀을 통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도 실감했다.
이 토론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평가가 나오고 있어 내 나름의 일반적인 평가를 보태는 것은 한강에 물 한방을 더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일본 검찰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조금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대통령과 검사의 토론 막바지에 한 검사가 일본 검찰을 거론하는 대목이 있다. 이 검사는 "개혁을 받아들이겠다. 일본 검찰은 국민 신뢰도가 1위이다"고 말문을 연 뒤 일본 검찰이 신망 받는 사람이 선출되도록 검찰에 인사권이 보장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금실 법무장관은 "검찰이 너무 비대해지고 검찰권이 남용돼서 인사권이 다시 법무부로 환원된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머리 속에 떠오른 한 권의 책
이 대목의 토론을 들으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 한 권의 책이 있어 급히 책장을 뒤져봤다. 역시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은 채 박혀 있었다. 4년 전 일본에 연수하러 왔을 때 산 이와나미서점의 신서 시리즈로 나온 <특수검찰>이란 책이다.
일본 <교도통신>의 검찰 담당 기자였던 필자가 일본 검찰이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떻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었는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어서 당시에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본 기억이 있었다.
토론 이후 분노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3분의 1정도 읽던 중에 한가지 조그만 개인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날 저녁에 도쿄에 다른 일로 온 언론계의 한 선배와 저녁을 하면서 전날의 토론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내가 이 책을 꺼내 보여주니, 그 선배가 책을 빼앗다시피 달라고 했다. 나는 지금 한창 읽는 중이라면서 마다했으나, 너는 책방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 달라고 하도 강권해 주고 말았다. 책방에 다시 가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쉽지만 인심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서 동네 서점 두 군데를 가봤는데, 앞 뒤 번호의 책만 있고 그 책만 없었다. 그래서 좀 큰 서점에 가면 있겠지 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점이라는 신주쿠의 키노쿠니야 서점을 갔다. 그런데도 동네 책방과 상황이 같았다. 직원한테 제목과 저자 등을 알려주고 찾아달라고 했더니, 이 책은 지금 없다고 했다. 주문을 해도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간다에 있는 이와나미서점 직영 책방에 가면 있겠지 하는 생각에 바로 간다로 가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여직원이 이 책은 이미 절판돼 출판사에서 찍지 않으니까, 고서점 등에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할 수없이 책을 가져간 선배한테 돌려달라는 전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번 헌책방을 들려보자고 들어갔다. 그 책방에는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몇 권 없었는데, 요행히 그 책이 거기에 섞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평소 살려다가 주저했던 책 몇 권을 함께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책을 매우 귀중한 마음으로 읽었다.
일본 검찰 왜 신뢰받나
주제와 관계없는 말이 길어졌지만, 덕분에 꼼꼼하게 책을 읽으면서 일본 검찰이 신뢰받는 이유가 인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악(巨惡)을 상대로 한 부단한 투쟁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찰, 경찰 등 일본의 수사기관은 2차 대전 패전 후 큰 변모를 겪는다.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점령군사령부(GHQ)다.
점령군사령부의 1차 목표는 일본을 전쟁으로 인도한 중앙집권국가기구의 분산, 해체였다.
이에 따라 1947년 내무성을 폐지하고, 경찰은 인구 5천명 이상의 도시마다 설치하는 자치경찰과 그 이하의 정촌을 관할하는 국가지방경찰로 분할했다. 그 대신 반발을 막기 위해 경찰의 염원인 1차 수사권을 부여했다. 전전에는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는 식이었다.
한편 검찰은 지방분권화는 면했으나, 경찰관이라는 수족을 잃었다. 그야말로 검찰은 `수사의 주재자'라는 위치를 일고 `법정의 문' 안에 갇혀 경찰과 재판소 사이의 단순한 중계기관이 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신형사소송법에는 검찰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독자수사의 여지가 있었다.
이때 점령군사령부와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대거 관련된 정경유착 사건인 소화전공사건이 터진다. 이때 사령부 민정국은 당시의 전범 쪽과 가까운 경찰을 수사에서 손을 떼게 하고 검찰에게 수사를 맡긴다. 한마디로, 검찰이 수사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은 것이다. 이 때 수사 검사들은 모든 노력을 걸고 수사에 착수해 당시의 관리들을 줄줄히 잡아넣음으로써, 내각을 총사퇴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수사 당시 총리였던 아시다 히토시도 잡아넣는다. 일본 검찰의 상징인 도쿄지검 특수부가 설치된 것은 이 사건의 수사종결로부터 5개월 뒤인 1949년 5월이었다. 검찰의 고도하고 강력한 수사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 수사를 지휘한 데 이어 도쿄지검 특수부를 만들고 64년 검찰총장에 오른 사람이 일본의 `미스터 검찰'로 불리는 바바 요시쓰구이다. 바바는 전쟁 전에 경제 사건을 주로 다루는 경제검사였기 때문에 사령부가 공안검사를 숙청할 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 또 사령부 민정국에서 그를 도쿄지검 검사장으로 시키려고 할 때 일본의 관료에는 서열이 있다고 반론이 나왔다는 점, 그럼에도 민정국이 미국에는 유능한 사람이면 젊은 사람도 발탁한다고 인사를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점도 현재의 한국 상황과 비교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도쿄지검 특수부가 있다고 해서 그 이후 검찰이 아무 노력 없이 신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도쿄지검 특수부라고 해도 1976년 터진 록히드 사건에서 일본 정계 최대의 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잡아넣지 못했다면, 그 명성과 신뢰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나카는 당시 총리에서 사퇴를 한 상태이지만, 그가 낙점을 하지 않고는 총리가 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거물을 일본 검찰은 정치권의 온갖 압력을 물리치고 법정에 세웠다. 그동안 정권의 시녀로서,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끈 떨어진 거물을 쓰레기 청소하듯 처리해온 한국 검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일본 검찰은 이후에도 1988년 자민당 거물들이 관련된 리쿠르트사건, 1992년 다나카 이래의 정계 막후 거물인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를 구속한 사가와규빈사건, 현직 국회의원과 현 지사를 줄줄히 감옥으로 보낸 93, 94년 제네콘 수사, 금융계와 야쿠자의 검은 거래를 적발한 97년의 노무라증권 사건 등의 커다란 악을 청소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그러나 일본 검찰이 영광과 신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86년에는 공산당 간부를 불법도청하는 경찰을 적발하고도 경찰의 반발을 고려해 불법 경찰을 기소하지 않는 거래를 해 신뢰도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또 사가와규빈사건 때는 가네마루를 약식기소로 처리하려다가 국민과 언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90년에는 후쿠오카현의 지방에서 벌어진 정장의 지방세 착복 사건 수사를 놓고 특수부 안의 알력이 생겨, 사건을 중간에서 그만 두게 된 검사가 사표를 내는 일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때마다 검사들은 "이번에 우리가 제대로 수사를 못하면 그동안 쌓아온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20, 30년 전으로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의기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수사에 진력했다.
한국 검찰이 배워야 할 것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말이 써 있다.
"패전 후 GHQ의 민주화정책으로 경찰에 범죄수사의 주도권을 빼앗긴 검찰조직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국가적 범죄의 적발>에 구했다. 그 결과, 생긴 특수부는 서민의 지지를 받고, 명실상부하게 검찰의 중핵기관이 됐다."
일본 검찰이 신뢰를 얻게 된 이유는 인사가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수사권 상실에 대한 보상 욕구로 성역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한국 검찰은 압력을 얘기하기 전에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자세를 일본 검찰에서 배워야 한다.
또 한 검사도 인정했듯이 업무가 아내의 병도 돌 볼 겨를 없이, 임신한 검사가 얘 낳은 시간도 없이 과중한 업무를 덜기 위해 국가적 범죄가 아닌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에 수사권을 이양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검찰에 바라는 것은 잡범을 잡아넣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강을 흔들 수 있는 정치인, 경제인, 관료들의 부패와 범죄를 예방하고 잡아내는 것이다.
일본 검찰과 한국 검찰은 법무부와 검찰청의 관계를 비롯해 시스템이 비슷하다. 아니 거의 베낀 듯이 같다. 그러나, 내용은 매우 다르다.
일본 검찰은 한국처럼 대중의 일상적인 관심을 끄는 존재가 아니다. 눈에 안 띄면서 커다란 악을 제거하는 날카로운 칼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보이는 존재이다. 2년 이상 동안 특파원을 하면서 일본의 언론을 항상 주시하고 있지만, 일본의 검사 이름이 지면이나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일본의 검찰은 언론과의 접촉도 평 검사는 못하게 하고, 부장 이상만이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있다고 한다. 기자들로서는 많은 정보 소스가 많을수록 좋지만, 평 검사가 언론을 상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점에서는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내가 아는 한, 일본 국회의원 중에서 검사 출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반면, 한국은 검사 출신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현직 검찰총장이 옷을 벗자마자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경우까지 있다. 나는 이런 차이가 일본의 검찰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한국은 그렇지 않은 큰 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검찰의 수장이 국회의원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분위기 속에서 거악의 소굴인 그들에게 칼을 겨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신껏 열심히 하고, 일하다 압력이 들어오면 굴하지 않고 저항하고, 그래도 안되면 사표 쓰고 변호사 하겠다는 검사가 더도 말고 일 년에 몇 명씩만 쏟아져 나와도 한국 검찰은 몇 년 안에 민주 검찰, 중립 검찰, 신뢰 검찰로 우뚝 솟아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