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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강물처럼.....


BY 나의복숭 2003-03-18

느직한 저녁을 먹고
아침에 미쳐 읽지못한 신문을 들척이고 있었다.
옆에선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아들넘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따르릉~"
벨 소리가 났다.
아들과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잘 울리지 않든 집 전화벨 소리가 울리니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
아들도 같이 느꼈나보다.
밤늦게 오는 전화나 새벽일찍 오는 전화를
얼른 받기가 겁이남은 나이드신 부모가 있는집은
같은맘으로 이해하리라

"여보세요"
전화기옆에 가까이있든 내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엊저녁 꿈자리 괜찮았지?
애써 별볼일 없는 전화이기를 바라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그기 이도희씨 댁입니까?"
아주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일단은 친정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아님에
안도의 숨을 쉬면서
"네 맞는데요. 누구신지요?"
이시간에 집 전화번호로 내 이름을 확인하는게
조금은 의아스러워 긴장감을 갖고 물었다
"저 여기 신곡터미날인데요 빨리 오세요.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는데요"
간이 덜컥 내려앉았다.
갑자기 할아버지라니...혹시 이 청년이 뭐를 잘못안거
아닐까?
세상이 워낙 험해서 액면 그대로 청년을 믿질 못하고
할아버지를 바꾸어 보라고 했다.
"여기 아부지다. 너그집 어디 있노?"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입고 아들과 동시에
후닥닥 뛰어나갔다
집 가까운 터미널이 오늘따라 왜 이리 먼지....
차를 갖고 나가는 나와는 달리
아들은 아파트 뒷문으로가서 지름길로 가는게
빠르다고 달려나갔는데 벌써 저만치 가고
보이지 않았다.
속이 상했고 걱정되고 화가 났다.
온다 간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오시다니...
정신만 멀쩡하다면야 누가 뭐라겠나만
왔다갔다 하는 정신으로 혹 멀리 나갈까봐
노상 엄마의 감시를 받고있는데
잘못 불상사가 나면 어쩌시려고...

저만치 아버지가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 집에서의 옷차림 그대로다.
허름한 옷에 중절모자를 쓰고
목에는 동메달 비슷한걸 걸고서...
피붙이아닌 다른 사람이 봤다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할게 틀림없는 차림세다.
일단 전화를 해준 청년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볼일보러 가는데 공중전화앞에 계시든
할아버지가 볼일보고 돌아오는데도 그 자리에
그냥 계시드란다.
밤이라 날씨도 춥고하여 파출소에라도 모셔드릴려고했드니
그제서야 꼬깃하게 접은 내 이름이 적힌
전화번호를 주시드란다.
그게 딸이 사는 주소라면서....
청년에게 고맙다 소릴 몇번이나 하고 아버지를
차에 태웠다.
속이 아려왔고 가슴이 서늘해지며 눈물이 났다.
아니다
더 솔직하게 얘길하면 무지 무지 화가났다.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에 화가 난게 아니고
내 자신의 무능이 눈에보이며 깊은 늪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절망감을 느꼈기에....
언젠가 노인회장직을 그만뒀을때 공로상과 함께
받은 메달을 어울리지않게 목에건 모습이라니....
당당하게 보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더 초라하고 더 눈물나게 보이는데....

아파트앞에서 내려 아들이 아버지를 등에 업었다.
어린애같이 말없이 업히는 아버지를 보니
또 왜 그리 애틋하고 처연해지는지.....
등빨 좋은 내 아들에게 업혀있는 아버지는
형편없이 말라서 가슴을 시리게했다.
아들은 저렇게 등빨좋도록 먹이고 사랑을 주면서
내 아버지한테는 너무 무심했든 나.
아픔과 후회. 가슴절절한 회한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아버지가 날 키우실 때 나한테 얼마나 사랑을
주셨는데 돈 없다고 하면서도 내 아들넘은
있는거 없는거 다 해먹일려고 했으면서....
오늘따라 얼굴에 기름기가 반질한 아들넘이
원망스러웠다.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안벗을려고 몸을 비트는 아버지의 옷을
괜히 내 스스로 성질이나서 확 벗겼다.
속옷만 입혀서 탕속에 모셔놓고
아들에게 조각같은 때수건을 건네주면서 씻겨드려라했다..
안씻는다는 아버지를 힘좋은 아들넘은
잘도 씻겼다.
"아야...이넘아 살살밀어라. 할애비 죽겠다."
아들에게 어리광 부리는듯한 아버지의 음성이
더욱 마음 아팠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그냥 미이라처럼 보이는 아버지.
죄스럽고 가슴 뭉클하고...아아 어쩔줄 모르겠다.

한숨 주무시고 난 아버지에게
따끈한 죽을 드렸드니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오신거같다.
"여긴 너그집이재?"
"아버지. 어쩌자고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연락하면 니들이 못오게 하잖나?
내 혼자서도 찾아올수 있거든. 청와대 있는데잖나?"
의정부와 청와대가 얼마나 먼데....
잘했다고 손뼉 쳐달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의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니 더 서럽고 슬프다.
"제가 좀 있다 내려 간다고 했잖아요?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이렇게 오시면 어째요?"
"내 온거 니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마라.
마구 때리거든..."
울고싶다.
38키로의 새같이 가벼운 엄마가 때린다고 말씀하시니...
니 엄마가 밥도 안준다했다가 소 잡아라 했다고 하다가....
잡을 소가 집에 있기나 하는가?
이리 저리 다니는걸 좋아하시는 아버지라 시골에서
대구까지와서 무작정 의정부행 버스에 몸을 실었을땐
아마 정신이 말짱하셨겠지.
그러다가 내렸을땐 또 약간 정신이 갔을거고....
어쩌다가 내 아버지가 이렇게 되셨을까?
안타까움에 몸이 떨려온다.

"어머니. 형들한테 전화할까요?"
맏아들인 오빠내외가 돌아가셔서
그 아들인 아버지의 친손자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지만 손자와 손부들이 너무나 잘한다.
그 형들에게 전화를 할까 아들이 묻는다.
친손자이니만큼 당연히 연락해야 하지만
내 입에선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아냐. 연락 하지마"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친손자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초라한 치부를 보여주고싶지
않는 내 마음은 자존심일까? 뭘까?
나중 알게될지언정
조카들이 내 아버지의 서글프고 어두운 모습을
재확인하는 순간을 한번이라도 덜 보여주고 싶었다.

텀수룩하고 보기싫게 자란 아버지의 수염을
아들은 정성껏 면도를 해드리곤선
하루 수업을 빼먹고 시골로 모셔다 드린다고 했다.
"미안타. 어쩌겠니?"
"무슨 소리 하세요? 외할아버지가 남인가요?"
아들의 든든한 대답이 들려오는데...
그래 남이 아니지....니 엄마를 낳아준 분이야...
지금 내가 너에게 쏟는 사랑보다 훨씬 더 짙은 사랑을
이 엄마에게 쏟아주셨지.....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때가지
못난 딸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참기힘든 서러운 슬픔을 그 누가 알랴.
"몸 조심해라"
내가 할말을 오히려 아버지가 하시며
말없이 손을 잡든 그 모습.
잔주름이 잡핀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며 알듯 말듯
묘한 웃음을 머금어시든 그 표정.
마지막이 아닐까싶어 내 눈속에 아버지를 넣을려고
한참을 그렇게 쳐다봤는데....

대구의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정말 왜 그러시지는지 몰라.
말도 없이 올라가면 어쩌라고..."
볼멘 여동생의 투정이다.
"시끄러.....아무말도 하지마."
아버지의 맘을 너나 난들 어찌알랴...
그냥 곱게 지켜봐드리자.
인생의 황혼기는 원래 그런거라 생각하고....


덧: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에 늘 리플 달아주신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음에있는 카페에 오시면 따뜻하게 인사드릴께요.(홈폐쇄)
즐거운 하루 되세요 http://cafe.daum.net/peach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