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조금 멋을 내려는 아이들은
영어로 된 팝송을 배워 부르려고 노력했었다. 서툰 영어라서
발음도 안 좋고, 가사의 의미도 잘 몰랐지만 그래도 한글로
적어서라도 열심히 익혀서 부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우리 전통가요인 뽕짝을 많이 불렀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선방송인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곧잘 따라 불러서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면 그 당시의 감정과
추억이 떠오른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티브이에는 우리나라 전통가요인
트롯을 부르는 프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10대들이
티브이프로의 주역이 되면서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의 프로밖에 없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가요무대'와 송해 선생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전국 노래자랑'
정도가 아닌가 한다.
가요무대는 장수프로그램 중에 하나이다. 중후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깔끔한 멘트가 매력이 있고,
해방전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요사를 장식했던 가수들이 총
등장하기 때문에 언제 들어도 정겹다. 내가 김동건 아나운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한 길만을 걷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분을 보면 한 길만을 쭉 걸어온 전문가에서 풍기는 흐트러
지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아나운서는 그가 맡은 프로그램의 간판과도 같이 중요
하다.
가요무대는 오래된 프로이기 때문에 출연하는 가수도 많았었다.
6,70대 원로 가수에서부터 막 데뷔한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숭이
까지 있었는데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둘 보이지 않는 얼굴
이 있어 아쉽다. 항상 텁텁한 목소리로 "두만강~~~"하고 나오는
김정구 선생도 타계했고, 잘 생긴 외모에 헌출한 키로 젊었을
때 미남 소리를 들었을 현인 선생의 '서울야곡'도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알뜰한 당신'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황금심씨와
가는 봄이 아쉬워 '봄날은 간다'고 매달렸던 백설희씨도 안 보여
허전하다.
우리의 전통가요를 '뽕짝' 또는 '트롯'이라고 불러서 단순한 것
같지만 몇 가지 면에서 분석해 보면 아주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우리 가요의 리듬을 살펴보면 만들어진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달라져 왔다. 해방 전후로 폴카나 지루박, 부르스, 탱고 리듬이
유행했고, 60년대에 비틀즈가 세상을 뒤흔들때는 트위스트와
차차차, 70년대에는 고고와 디스코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물론 음울한 재즈와 소울 음악도 유행했다. 80년대부터 서서히
등장한 사설조의 랩 송과 힙합리듬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가수들의 목소리도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다. 해방 전후의 가수
들의 음성은 한마디로 꾀꼬리 같은 미성이었다. 남인수, 고복수,
진방남, 황금심, 이난영, 신카나리아 씨 등이 대표적인 가수이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텁텁한 쉰목소리는 허스키라고 해서 매력을 풍겼다. 남자가수로는
최희준으로 시작해서 배호가 활짝 꽃을 피웠다. 1970년대 중반에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혜성같이 등장한 조용필의 목소리는 남성
인지 여성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고 해서 '중성'이라고 불렸었다.
여자는 한명숙, 현미로 출발해서 문주란이 대표적인 저음 허스키
목소리의 가수였다. 요즘은 이소라라는 가수가 아주 매력적인
허스키 목소리를 가졌고, 야심한 밤에 사회까지 봐서 열성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래를 좋아해도 항상 야들 야들한 미성만 들으면
재미가 있을까. 또 특정 리듬의 노래가 유행한다고 해서 그 노래
만 나오면 재미가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교직사회에도 가요와 같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원단체 역시 여러 개가 있다. 예전 같으면 단 하나의 목소리만
들리고, 그 목소리에 반드시 따라야만 했다. 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불법’이라는 체제논리와 명분으로 특정 교원단체를
만들지 못하게 했었다. 당시에 교수출신 교육부장관, 국무총리가
몸을 던져서 막았던 것을 기억한다. 특히나 힘으로 정권을 잡아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정부라서, 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단체는 철저하게 탄압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혼란으로 비쳐지거나
어느 한 단체가 교육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작금의 교단의 상황을 보면서 그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가수들이 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가요계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듯이
교단의 다양한 목소리는 우리 교육발전을 위해 기여를 해야지 서로
패권다툼을 하는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도 역시 교단에
몸담고 있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제일 먼저 학생과 학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교사도
역시 교육의 한 주체이지만 학생이나 학교를 떠나서는 존재의미를
잃는다. 교육계의 모든 이론이나 교원단체의 모든 주장들은 최우선
으로 학생이나 학교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어느 특정단체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의견이 달리하는 교사나 다른 교원단체에 소속된 교사들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어떤 현상에 대해서 단 하나만의 의견이 있을
수는 없다. 또 교사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각기
소속단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상대방을 백안시
하고 타도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편협된 옹졸함이다.
내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이다. 선비라는 사람들이 자기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편을 몰살시켜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들이 온갖 명분을 내세워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렸지만 결국은
정권다툼이고 권력을 위한 이전투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상대편을 아예 없애버려야 안심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편 사람들을 죽이거나,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귀양을
보내버렸다. 이 얼마나 치졸하고 비열한 싸움들인가.
예를 들어, 모든 교사가 어느 한 단체에 가입해서 지금의 교직
사회가 어느 한 교원단체로 통일된다면 모든 교육문제가 해결 될
것 같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거기에서도 또 이견이
나오고 의견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의견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화합하는 것이다.
셋째, 모든 교사들 간, 교원단체들 간에 대화와 타협을 권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많은 현상들이 있고 그 현상을
보는 눈이나 의견은 다 다르다. 정말 천차만별이고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자기의 의견만이 유일선이고 다른 의견은 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로 상대방의 의견에 귀기울여보고, 자신의 의견에 잘못된 점
이나 독선은 없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아량과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의 흑백
논리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봐도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의견으로
세상사가 발전해 온 것이 아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많은
사상이나 사조가 생겨났다 또 사라졌다. 최근에 사라진 공산주의도
전제 봉건주의나 자본주의의 폐단에 반발해서 생겨난 사상이지만
이제 자체모순으로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해방 전후로 우리
나라에도 가장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들어 공산주의에
심취했지만 그들도 결국은 실패한 선구자가 된 것이다.
나는 중국 국민들이 참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봉건주의에 반대
해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 공산주의로는 국민들이 잘
살 수 없음을 깨닫자 재빨리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서 나라를 개방
한 것이다. 중국 공산주의 아버지라는 모택동이 문화혁명으로 수정
주의를 경계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강화하려고 할 때 등소평이 내
세운‘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너무나 유명하다. 즉 ‘검정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냐, 수정주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잘 살수 있는 사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기치아래
현실에 맞지 않은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대담한 개혁과 개방을
해서 현재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생각이고 행동인가. 그에 반해서 북한
은 사라진 사상의 껍질을 끌어안고, 국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세계를
향해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것은 결국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고 우기면 결국은 계속
평행선만을 달리게 되고 서로 반목, 불화만 하게 된다. 그래서
서로의 주장에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서,
공존할 수 있는 공통점을 구해야 한다.
넷째, 기득권자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항상 기득권자가 있어왔다. 그들이 이미 얻은 권력
으로 조직이나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권력에
안주하면서 향유나 하려고 하기 때문에 조직이 퇴보하는 것이다.
즉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옛날식 사고에 집착하고 있으니 조직의
발전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하면 과감하게 바꾸기 바란다. 괴여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다. 또 항상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즉 기득권자의
생각이 항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도
아님을 알기 바란다.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술자리를 함께 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가끔 모임을 가지면 꼭 2차,3차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3차는 대개 노래방이 된다. 노래방에 가면 연령에 따라
부르는 노래 역시 다양하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30대는 요즘 유행하는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또
노래에 따라서 리듬도 여러 가지다. 이렇게 각기 다른 노래들이
조화를 이루어 즐겁다. 어느 한 노래만 들려온다면 얼마나 지루한
3차가 될까.
지금 학교 교정에는 여러 색깔의 쩔쭉꽃이 활짝 피고 있다. 빨강,
주홍, 힌 색의 꽃이 저마다 아름답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나는 오늘의 교직사회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여, 다양함 속에
평화롭게 화합하는 조화의 꽃을 활짝 피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