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글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가 장정일이 "장정일-화두, 혹은 코드"라는 자신의 책 속에서 주장한 내용을 그의 동의 없이 그대로 퍼온 것입니다. 미스코리아대회에 대해 그저 여성에 대한 파쇼적 억압이라는 이유로 비판해오기만 했던 사람들에 비해 장정일은 상당히 개성적이고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인상이 깊습니다. -
김희선과 최지우는 참 예쁘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한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두 사람이 분위기 좋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싼 식당에서 포도주를 한 잔씩 기울이며 가끔씩 인생을 이야기 하였으면 하고 바란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네티즌들이 이런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여자 연예인 가운데 가장 공부를 못했을 것 같은 사람은 누구? 이런 할 일 없는 사람들 때문에 연예인들은 참 피곤하다. 결과는 김희선이 1등, 최지우가 2등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며칠전에는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다. 여자 연예인 가운데 가장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네티즌, 이 사람들 스토커가 아닌지 모르겠다. 결과는 김희선이 1등, 최지우가 2등.
아내의 평소 지론에 의하면 인생이란 즐기는 것이다. 책이나 공부는 어떤 권리를 얻기 위한 패스포드일지는 몰라도 결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해변가의 모래밭에서 햇볕을 쬐거나 물장구치기, 산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거나 절 구경을 하는 것, 강아지나 고양이와 뒹굴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맛있는 음식이나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것, 비오는 날 아무것도 안하고 게으르게 창 밖을 바라보는 것, 공원의 벤치에 누워 얼굴을 햇빛에 물든 나뭇잎의 변화무쌍한 푸름을 즐기는 것,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하는 것, 분홍 신을 구해 신고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갈 정도로 춤을 추는 것,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세 끼 식사를 걸러가며 사랑하는 사람과 긴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온종일 입맞추는 것 등등.
음악은 좀 다른 경우에 속하지만 책이나 영화에서 훔치고자하는 즐거움은 앞서의 즐거움을 대신하는 빈약한 대체물일 따름이다. 열거한 즐거움들을 이웃과 함께 나누거나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확고한 원칙과 각오만 되어있다면 철저히 개인적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오직 개인적인 만족과 즐거움만을 위해 주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는 일이, 민족과 국가의 이름을 빌어 개인적인 사욕을 키우는 사람들 보다 더 신뢰가 간다. 보기만 해도 창자가 울렁거리는 이회창이나, 여성 운동을 팔아 한나라당 전국구 의원이 된 이연숙 같은 사람보다 아무도 찍어 바르지 않는 개인주의자가 훨 낫다.
예쁜 사람이 머리 나쁜 것은 신이 그만큼 공평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 쪽팔릴 일도 아니고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안티미스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엄청 잔인하게 느껴진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 없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서 가장 뛰어난 장점과 특기로 성공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내가 그런 것처럼 구구단도 못 외우고 영어도 할 줄 모르지만 기막히게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가 있다면 그녀에게도 1 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고, 타고난 두뇌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듯이 타고난 미모로도 자긍심과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예쁘고 머리 나쁜 여자는 식모나 점원을 해야만 당신들의 직성이 풀리나? 사실을 말해보면, 자신을 과시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은 것은 비단 미녀들만의 허영만 아니다. 성상품화니 여성 비하니 하는 것은 당사자가 느껴야 절실한 것이지 주위 사람들이 대신 해줄 수 없다.
학교 성적을 알 수는 없으나, 하려고만 했다면 김희선이나 최지우도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승부를 내야할 분야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우등상 같은 건 다른 동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양보했을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네티즌들은 여자 연예인 가운데 가장 공부를 못했을 사람이거나 가장 책을 읽지 않을 사람과 같은 시시콜콜한 문제로 여담을 하기 보다 신의 불공정과 같은 좀 더 해골 아픈 문제로 골을 쥐어짰을 것이다.
두 미녀분들, 책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아는 편인데 며칠 전의 그 기사를 보았더라도 절대 책 읽지 마세요. 인생은 알죠? 앞에 쓴 그대로랍니다. 인생의 즐거운 일 가운데 분명 하나이기 때문에, 두 분이서 포도주 마실 때, 나도 그 사이에 끼어 있고 싶어요.
관련 글: 영화 'Shrek'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