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盧대통령에 여유를 주자
오늘이 며칠이던가? 5월27일, 노무현정권이 출범한지 92일째 되는 날이다. 아직 10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임기 말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드는 요즘이다.
대통령의 형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이 연일 신문지면을 뒤덮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시니컬한 반응이범람하고, 각 이익단체들은 정권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저마다 제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서 딴죽거는 소리,차이고 엎어지는 소리로 요란하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 후 대개 100일간을 ‘허니문(밀월기간)’이라 부른다. 이 기간에는 대통령이 새로운 국가운영의 방향을잡을 수 있도록 언론이나 국회가 비판을 자제하고 지지·격려해주는 관행이 확립돼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와정책방향을 선택한 만큼 이를 존중하고 일단 소신 있게 일할 수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허니문’의 의미를 미국과 같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우리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 대통령이 갖는 책임과 권한은 막중하다.
그만큼 나라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라는 점은 새삼 언급할필요조차 없다. 대통령이 흔들리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 흔들리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피해의 폭과 깊이도커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눈감고 있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의 일들에 대해 이렇게 사생결단식으로 달려들 시점이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로비의 표적이 될 만큼 ‘잘 나가는’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만약그에게 부정한 정치자금이 흘러 들어갔거나 주변에서 투기를 한의혹이 있다면 친인척 비리 예방 차원에서 차분히 규명해나가면된다.
어차피 대통령은 헌법상 보장된 임기동안 형사소추 대상에서 제외되니까.
대통령을 공격하는 측의 입장은 가지각색이겠으나 큰 줄기에는지난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이회창 전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공보특보였던 양휘부 방송위원이 노 대통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했다는 “청와대의 주인이 바뀐 것 같다”는 말은 정확한 속내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선결과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다.
내각책임제처럼 최고통치권자가 잘못한다고 해서 금방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좋든 싫든 앞으로 5년을 함께 가야한다. 그렇다면 우선은 일할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의 사람들’은 겨우 청와대만 장악했을 뿐이지 국회, 지방권력, 심지어는 정부각 기관까지, 어느 하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지금의 권력지형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처음부터 온통 주변의 일에 신경을 뺏긴다면 5년 내내 흔들리며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어떻게 ‘정리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시작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허니문’ 기간이다. 대통령에게 좀더 여유를 주자.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