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내의 불륜이라는 멍에에 짓눌려 살아 온 당신의 남편,
그 바보같은 남편이 이제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어.
2년간의 지방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 나에게 당신은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
- 밤늦은 귀가와 외박...
- 이유 없는 짜증과 물건 집어 던지기...
- 그리고 남편을 경계하는 듯한 표정 등...
느낌은 분명히 왔지만 무엇부터 해야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그냥 눈 뜨고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어.
마음 같아서는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어.
언제부턴가 당신은 가족을 거추장스러워 했고 함부로 대했지.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 놀다가도 엄마 들어올 시간이 가까와지면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곤 했어.
나도,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어.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물어 뜯을 것처럼 날카로워진 당신에게 쉽사리 다가 갈 수 있는 사람은 집안에 아무도 없었어.
모두가 당신 눈치만 살피며 지내야 했어.
어쩌다 당신이 조용히 앉아 있어도 가족들의 불안함은 마찬가지였어.
어느 순간에 터질 지 몰랐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그늘진 우리 가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 전화를 몰래 녹음하기 시작했어.
여보,
녹음기를 설치하면서 속으로 제발 당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난 게 아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알아?
당신을 의심할 만한 통화가 하나도 녹음되어 있지 않기를 얼마나 바랬는 지 알아?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않아 당신이 변해버린 이유의 모든 것이 작은 녹음 테잎 하나에 모두 담겨져 있었어.
그 날 출근 길 운전 중, 카오디오에 녹음 테잎을 밀어 넣자마자, 당신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나는 거의 혼절할 뻔했어.
다리가 덜덜 떨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
길 옆에 가까스로 차를 세워놓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한 번 들어 봤어.
- 그게 아니었기를,
- 내가 잘못 들은 것이었기를,
두 손 모으고 그렇게 빌었건만 다시 들어봐도 그건 분명 당신 목소리였어.
그리고 당신과 연인처럼 뜨겁게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은 어이없게도...
.......................
.........
...
전화 도청...
그게 불법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나를 몰아간 건 당신이야.
왜 그랬어?
차라리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지 그랬어?
그리고 왜 상대가 하필이면...
이제 와 생각하니 상대방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었기만 했어도 나와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의 고통은 훨씬 덜 했을거야.
당신, 왜 그랬어?...제발 대답 좀 해 봐!
- 어이없어 하시기만 할 뿐, 아무 말씀 없는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심정은 어떡할거고...
- 조금 더 성장한 다음에 이 일을 떠올리게 될 아이들 앞에 어떻게 서 있을려구...
- 시집 식구들 얼굴, 앞으로 남은 긴 긴 세월을 어떻게 쳐다 볼려구...
여보,
나 너무 힘들어.
이 고통...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내가 알고, 형제들이 알고, 부모가 알고, 게다가 아이들까지 알고 있는 사람과 아내가 불륜 관계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남편 심정을 당신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어?
내 살점이 뜯겨 나갔어도 이보다는 덜 아팠을거야.
아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한밤중에 귀가하고 때로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는데 가만히 있는 남편이기를 바랬던 건 아니잖아.
-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진 않았어도 이유 없이 힘들게 한 적은 없었던 나,
- 우리 가정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나,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그만큼 고민과 방황의 시간도 길었어.
모든 걸 알고나서부터 또 몇 달을 그렇게 고통 속에서 보냈어.
누구에게 이 일을 가장 먼저 얘기 해야하나 하고.
그러나 그 얘길 들어도 될만한 사람은 내 주변에 없었어.
상대가 그가 아니기만 했어도 고통의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을 거야.
아내의 불륜 사실을 내 형제들에게까지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당신... ... ...
그 때 난 그냥 꽁꽁 묶인 채였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할 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어.
만약 내가 술을 좋아했다면 그때 난 아마도 술 때문에 죽었을지도 몰라.
여보,
내가 어떤 세월을 보내왔는 지 알어?
몰래 화장실에 들어 가 문을 걸어 잠근 채, 벽에 어깨를 기대고 혼자 눈물 흘린 날도 많았어.
화장실을 나서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리 추스렸어도 어쩌다 마추친 아이들은 내 얼굴을 다시 한 번씩 쳐다보곤했어.
거의 반년 동안,
우리나라 상담소의 거의 모든 곳을 찾아 다녔어.
약속이나 한듯 그들은 거의 같은 수준의 애매한 해법밖에는 제시하지 못했어.
용서하고 같이 사는 길밖에 없다는...
요즘처럼 무더웠던 어느 날,
이젠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남성의 전화라는 상담소에 갔었어.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어.
우선 얼마를 내라고 하기에 오만원을 내고 어렵게 얘길 꺼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어.
용서하고 같이 사는 길밖엔 없다는.
- 선생님 같으면 용서할 수 있겠어요?
- 대체 제 얘길 귀담아 듣긴 들으신건가요?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냥 나오고 말았어.
그리고 그 이후론 아무 곳도 찾지 않았어.
나 혼자만의 고독하고 피곤한 작업이 또 다시 시작되었어.
비밀 유지를 위하여 나를 처음 보는 사람과만의 상담이 필요했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불러 세워 묻고 싶은 심정이었어.
어느 날 운전하던 중 폰팅 광고를 보게 되었고 다음 날부터 나는 시간만 나면 그리로 전화를 해 낯선 여자들에게 습관처럼 하소연하며 시간을 보냈어.
대부분 기대 이하 수준의 여자들이었고, 목적은 다른 데 있는 여자들이었지만 간혹 얘기가 통하는 수준의 여자들도 있긴 했어.
그러던 어느 날, 고마운 사람 하나와 통화를 하게 되었어.
목소리로 보아 40대 중반으로 보였던 그녀는 진지하고 성의 있게 나의 아픔을 이해하며 들어주었어.
모두 듣고나더니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
며칠 후 그녀는 전화를 해주었어.
휴대폰이 울렸고, 그 때 옆에는 당신이 앉아 있었어.
당신이 바로 옆에서 듣는 있는데 당신 얘기를 할 수는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회사 여직원이 업무상 전화한 걸로 말을 만들어 그냥 넘어가려했는데 그 순간을 당신은 놓치지 않았지.
핸들 잡은 내 손을 잡아 당기며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을때, 하마터면 고가 옆 언덕으로 추락할 뻔했어.
그 한 통의 전화가 나중에 당신으로부터 내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하는 빌미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잘못에 대하여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편으로부터 무언가 잡아내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위기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당신에게 그 전화는 마치 구세주와도 같았나봐.
그 날로 그 전화 사건은 무참히 조작되고 말았어.
내가 여직원과 딴 살림을 차렸다는 어이없는 소설로.
여보,
당신이 저지른 일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과 현실을 착각하지 말기 바래.
그와의 관계가 언제부터였는 지는 물론, 깊이까지 난 다 알고 있어.
아이들마저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 지를 알고 있어.
당신은 살기어린 표정으로 밤마다 가족들을 못살게 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나를 회사 여직원과 딴살림 차린 패륜아로 몰아갔어.
그 뿐이 아니었지.
10년 동안 부부관계 한 번 못해봤다는 어이없는 거짓말을 당신은 친정식구한테는 물론 시집 어른들한테까지 수없이 되풀이 해왔어.
어떻게 그리도 터무니없이 조작할 수가 있는거야?
당신이 저지른 일을 반년이나 넘도록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삭혀가며 조심스럽게 처리하려 했던 나에게 그럴 수 있는거야?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커 오는 동안 여자 문제로 당신 속 썩힌 일 한 번 없는 나에게 이래도 되는거야?
뚱딴지같이 10년 동안 부부관계 한 번 못해봤다는 거짓말을 여기저기 퍼뜨린 사실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 지 당신은 모를거야.
그 날,
당신이 지난 날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 그 날,
당신은 비로소 느끼게 될거야.
- 불륜보다 더 위험한 건 거짓말이라는 걸...
그리고,
- 내 남편은 내가 저지른 불륜보다 내가 수없이 만들어 낸 거짓말을 더 못견뎌 했다는 걸...
...................
.........
...
당신 친정 식구들을 흥분케 했던 것도 다름 아닌 그 거짓말들이었지.
그들은 당신의 죄질 나쁜 불륜의 전모를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의기양양하게 내 앞에 나타나 온갖 행패를 부렸어.
갑자기 쳐들어 와 행패 부리는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 당신 상상 좀 해보기 바래.
당신 친정 식구들...
누구 하나 시댁에 어서 빨리 용서를 빌어야한다며 눈물로 당신을 설득하는 사람 없었어.
여보,
당신이 저지른 불륜의 죄값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궁리해낸 게 겨우 그거야?
강제로 그걸 인정하라고 밤마다 당신이 소란을 피웠을 때 내 심정이 어땠겠나를 생각해봤어?
딸의 거짓말을 믿고 사위에게 쫓아와 폭력을 휘두른 당신의 어머니...
그 분이 나에게 휘두른 그 때의 폭력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어.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그냥 얼떨결에 당했지만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어.
당신도, 당신의 어머님도, 당신의 남동생도, 여동생도...모두가...
더욱 가증스러운 건, 당신의 불륜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에게 폭력이 가해졌다는 사실이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사람은 어려울 때의 행동으로 그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하지.
내 딸이,
내 누나가,
내 언니가,
불륜을 저질러 가정에서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게 고작 사위(매형, 형부)를 궁지에 빠뜨림으로써 잘못을 상쇄시켜보려는 속셈에 밖에 미치지 못할 사람들이리라곤 전혀 생각 못했어.
난 그들과의 인연을 이미 끊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경우에 처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일거야.
여보,
1년 까깝도록 각자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우리...
그건 당신이 제 정신으로 돌아와 잘못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야.
당신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당신과 내가 영영 한 이불을 덮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잠 못 이루며 긴 긴 밤을 하얗게 새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
여보,
세월이 흐른다고 지나 온 모든 일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건 아니야.
잊혀지는 일이 있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나쁜 일을 저지른 당신...
모두 잊어버린거야? 당신?
아이들과 시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 식칼을 휘두르며 나를 찌르려 했던 했던 그 일을...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고...
TV리모콘, 의자, 핸드폰, 밥상, 전화기, 카메라... ...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마구 집어 던지며 소리소리 지르던 엄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요즘도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걸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집어 던져 부서진 의자는 다리가 부러진 채 아직도 마당 한 구석에 저렇게 흉한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데...
이제 시간은 많지 않아.
언제까지 당신을 기다려줄 순 없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
그러면 내가 다시 생각해 볼께.
이혼하기로 서류까지 모두 준비하고 마음의 정리까지 마쳤던 내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예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거야.
헤어지자는 내 말에 그러자고 대답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거부했던 당신...
이혼 거부가 최선의 선택인 걸로 착각한 당신...
당신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 지 아직도 모르겠어?
늦긴 했지만 용서를 빌고 새 사람이 되는 거야.
용서 비는 모습 한 번 못 봤으면서도 당신을 아직 며느리로 생각하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을 눈 뜨고 뵐 수 없어.
여보,
용서 한 번 빌지 않는데도 아내의 불륜을 눈 감아 주는 남편은 이 땅 위에 없어.
용서 비는 일만큼은 도저히 못하겠다면 더 늦기 전에 나와 헤어져야 해.
여보,
나 아직 당신에게 해 줄 일이 많아.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그러하듯, 결혼생활의 어느 중턱에서 손에 턱을 괴고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삶에 지친 나머지 아내에게 쏟아야 했던 정을 마음만큼 베풀지 못하며 살아 온 날들이 나에게도 많았어.
밤 하늘의 별들처럼 수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어쩌면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요즘 당신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려 와.
쏟아야 했지만 쏟지 못해온 사랑... ... ...
그건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이야.
살만해지는 날이 오면 꼭 갚으려했는데... ... ...
왜 그 빚을 갚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거야.
바보같이...
갚고 싶어.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움 때문에 끝까지 이렇게 산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야.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하는 건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야.
남편의 명예에도 강제로 먹을 칠하여 똑같이 까맣게 된 상태에서 맘 편하게 살아가려는 당신
의 끝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당신의 남편...
불쌍하지도 않아?
쓰러지지 않고만 있을 뿐, 몸과 마음 모두 이미 까맣게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 ...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 기나긴 시련을 겪으면서도 엄마에게 그 일에 대하여 한 번 따지고 든 적 없는 바보처럼 순진한 아이들...
겉으론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속은 상처투성인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깊게 패였을 아이들의 상처가 훗날 당신에게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제라도 아이들을 끌어 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기 바래.
당신의 과거를 잊을 순 없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 노력해볼께.
여보,
나 지금 많이 힘들고, 지쳐있어.
몸이 많이 나빠졌어.
맺히고 맺힌 한을 담배로 삭여 왔어.
하루에 두 갑 넘게 피면서... ... ...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이 있듯, 어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나에게도 각자의 인생이 있어.
나와 아이들이 선택코자 하는 삶의 길에 당신이 박아 놓은 돌부리를 이젠 좀 치워 줘...제발.
그 돌부리를 볼 때마다 마음 속의 상처가 온 몸으로 번져 가는 게 느껴져.
눈앞에 매일 보이는데 그걸 외면한다고 안 보이는 건 아니잖아.
침묵하며 세월을 보낸다고 당신 명예에 칠해진 먹이 서서히 벗겨지는 건 아니잖아.
여보,
나, 끝까지 기다릴 순 없어.
그러나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