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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있다면???


BY jk5518l 2003-07-13

난 지금 우리 가족 얘기를 하려한다.
우리 가족은 일남오녀. 지금 난 부모님과 함께 산다.
난 어려서 이유를 몰랐지만 우리 가족사진에는 항상 큰언니가 보이질
않았다. 옛날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 우리집은 방이 세칸 이었다. 안방과 가운데 방, 마지막 방은 큰언니 방이 었다. 큰언니 방은 아주 특별했다. 항상 언니가 문을 잠그고 다녀서 우리가 함부러 들어가지는 못했고 어쩌다 언니 허락 받고 들어가면 그 방은 우리집의 다른 방과는 딴 세계 였다. 1970년대 그 시절 독수리표 큰 전축하며 많은 레코드 판들. 정말 신기 했다.
큰언니는 외아들인 오빠 보다도 아주 대접이 좋았다.
내 기억속의 언니는 중학교 퇴학처리되면 아빠가 돈 써서 다른 학교로 전학 시키는 과정을 여러번 반복해 중학교는 간신히 졸업을 마쳤고 본격적인 가출은 고1때 부터 인것 같다. 아뭏든 언닌 결국 고등학교를 퇴학 당했고 지금도 그 나쁜(?)버릇들은 여전 할거다.
그로 인해 아빠는 전국을 언니 찾아 다녀야 했고, 언젠...언니가 부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중에 여자 토막 사건이 났다는 뉴스을 보시고 그게 언닌 줄만 알고....정말 죽은
줄만 알았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사진의 엄마,아빠는 항상 수심이 가득하다.
또 언니가 가출하는 동안 아빠의 정신이 정상이 아닌 때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딸이 들어 올 시간이 지났는데....허허~~~" 그렇게
웃으시다 주저 앉아 우시다를 반복해 엄마는 너무 무서웠다고.
지금의 큰언니는 너무 당당하다. 물론 언니는 S동에서 알아주는
부자며 50을 보는 나이에 아직까지도 부모를 원망하며 산다.
엄마,아빠가 자기 흉을 보고 다닌다고, 맨날 돈만 달랜다고.
우리 언닌 그렇게 살면서도 한달이면 돈 만원도 안준다. 그런 언니
가 남들 한테는 너무 잘해서 큰언니 동네 친구들은 언니를 배다른
자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집은 파가 갈라졌다. 큰어니와 내 밑에 동생은 같은
편, 나와 오빠,둘째언니와 막내는 부모편. 돈이 좋아서 인지
아님 어려서 커온 과정이 비슷해서 인지는 몰라도 내 밑에 동생은
무조건 큰언니 편이다.
우리 큰형부. 예전엔 언니랑 매일을 싸우며 지냈고, 언니 흉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지금은 왜인지 몰라도 둘 사이가 너무 좋아졌다.
우리 아빤 몇달만 있슴 칠순이다. 젊어서 시부모를 20년 가깝
게 모시고 빈 털털이로 서울에와(그 방 세칸 집은 친척 집이었다)
친척 목욕탕에서 일을 하셨다. 아빠가 그 목욕탕에서 한일은
정해지지 않은 여러가지의 잡일 이었다. 남탕 청소며, 보일러 청소
관리 등등. 그때 당시(아마1980년대) 십만원 정도의 돈을 받고
시작해서 십년 넘게 그일을 하셨다.
난 어쩌다 학교 다닐때 돈을 타러 갈려면 너무 싫었다. 목욕탕
으로...아빠를 보려면 지하실로 내려가야 했다.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 가면 아빤 항상 빨간 목욕탕 수건(마스크도 아닌)을 입에
물고 상반신 전부를 큰 보일러에 들어 미신채 그 보일러를 청소하고
계셨다. 손이며 얼굴이며 다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어 가지
고.....
물론 아빠의 세끼 식사도 엄마가 날랐다(아빤 새벽 네시에 나가서 밤
아홉시에 들어 오셨다) 우리 집은 정말 높은 언덕 꼭대기였다.
난 어쩌다 눈이 오는 날이면 무릎에 항상 상처가 생겼다.
그 길을 엄마는 눈이 올때도 비가 올때도 하루도 빠짐 없이 아빠의
국과 밥을 날으셨다. 노란 바구니에다....어쩌다 우리를 시키는
날이면(정말 어쩌다) 어찌나 그 다 떨어진 노란 바구니가 창피 하던
지....속으론 국을 흘리면 어쩌나 하면서도 그 바구니를 뒤로 감추어
가곤 했다. 그렇게 밥을 애써 목욕탕까지 가져가면 카운터 옆엔
자주 중국집 자장면 빈 그릇들이 눈에 띄곤 했다. 지금 생각 하면
....후후....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엄마두...아빠두....(지금도
아빤 자장면이 최곤줄 아신다)
그렇게 십년 넘게 세월이 흘러 내가 취직을 해서 목욕탕 지하실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빠게 건내면 보일러 청소 하시다 말고 그 자리
에서 세개는 드셨다. 불쌍한 아빠.
우린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고생으로 커왔다. 님들도 아시다시피
그 시절 가정 교육이란 단어가 우리한텐 어색하다. 다 알아서 크는
거지...큰언니와 동생은 딸 욕하고 다닌 엄마가 그게 엄마 냐는 등,
해준 것도 없으면 바라지도 말라는 등...갑자기 또 다시 슬퍼 진다.
나중에 내 자식이 이러면 어떨까????
설마 부모가 죽일 짓을 했다 해도 칠순인 엄마와 아빠한테 이럴순
없다. 큰형부와 동생, 남편 한테 울면서 호소 했다. "제발요,
정신좀 차리세요!! 형부 부모면 이렇게 보고만 있을 건가요!!"
지금도 일년이 지났지만 언니와 동생은 아직도 ing다.
정말로 부모가 교육을 잘 못시겨 큰언니와 동생이 엇빗 나갔다면 그
걸 본 나와 둘째언니 그리고 막내가 더 크게 잘못 나갔어야 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 부모님은 큰언니와 같이 살던 동네 S동에서 이사를 하셨다. 큰언니와 동생이 매일 같이 집에 전화해 엄마,아빠 죽어도
오지 않는다는 등, 집에 불 지르러 온다는 등....
그래서 우린 서로 않보고 산지 일년이 넘었다. 그 일로 해서
엄마,아빠는 몇십년 사신곳을 떠나 지금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외롭게 사신다. 얼마전 S동에 아빠는 모임이 있어 가셨다가
술도 조금 드셨고 큰언니도 보고 싶고 해서 언니 집에 가셨는데 우리
언니가 아빠를 동네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파출소 경찰이 신고자는 와야한다고 했는데도 언니는 오질 않아 바로 경찰서로 넘어가
유치장에 몇시간 계시다 아는 사람 도움으로 풀려 나셨다.
그 때 그 사건으로 몇칠전 삼십만원 짜리 벌금이 아빠 앞으로 날라
왔다. 훗..그런 큰언니가 옆에 성경책 끼고 지금은 교회를 다닌
다고 하니....다들 눈과 귀에 악마가 씌운것 같다. 나도 언니와
동생에 대한 배신감이 이렇게나 큰데 우리 엄마,아빠는 오죽 하실까???
난 그들, 큰언니와 형부, 동생과 그 남편이 더 늦기전에 우리 부모님
께 사죄드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지금이라도 뉘우쳐 사죄 한다면야(아니 사죄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라면 내가 이렇게 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용서 할수 없다. 그들을...아빠와 엄마의 인생을 농락한...
지금도 농락하고 있는...그들을...절대...용서 할수 없다.
정말 있을 때 잘하란 말을 깨달을 땐 그때는 너무 늦는 다는 것을..
지금 나에겐 단 하나 위로가 되어 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보고 있다는 것을.....


지금 까지 올린 글은 빙산의 일각 입니다. 밝지도 않은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