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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님 가을시 3편이예요.. 마퀴에 쓰세요...


BY 당신의친구 2003-09-02

가을 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속에서
-김윤진

가을 속에서  
알뜰하게도
내재된 부스러기조차 긁어내고

숙달된 혀로 핥아
한낱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나이를 지내갔다

손엔 아무것도 쥐어진 것 없고
허탈의 막바지에서 춤을 추며
바보 같은 비소를 간직했으리

무표정 무관심에 길들여져 가고
희열의 향기가 궁금하기까지
긴 나날이 가을을 붙들고
그 가을은 살자 했지

살고 싶은 시간은
밀 알의 소중함을 일깨우듯
긴 잠에서 "일어서라" 부르니
그래 오너라
남은 시간들은

시작이 무서우면 끝을 보고
끝이 무서우면 시작이 계속 되는 것이라
하루 이틀 사흘
한달 아니 몇 년이 지나면 어떠리

참 잊고 잊던 시간
내 아버지
                   
암 선고를 받고
병실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
죽어도 좋다 했지, 어버이를 위해선
병실을 지키던 그때   
   
지금 난 머리가 없는 것 같다
내일은 아버지를 뵈러가야지
숨쉬기도 싫었던 아픔을 잊었어라

수첩이 일기장이 어디 있던가
오늘이 벌써 붉게 다가온 가을
다시 또 한 계절이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용혜원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늦은 밤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일은 즐거움이다
어둠이 아무도 모르게 스며드는 것처럼
그리움이 엉겁결에 다가와서는 떠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잠들고 꽃들마저 잠들어 내일 필 이 시간에
빛나는 별처럼 너의 모습은 또렷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친구야!
우리 목숨하나 가지고 사는데
한 목숨 바램이 왜 그리도 많은 지 모르겠다

우리의 이상 우리의 꿈은 한갖 노래였었나
그리도 멋진 스승도 떠나가고
밤새도록 읽어내렸던 소설책도 먼지가 쌓일 무렵
우리는 이마에 골이 패고
우리의 가슴은 좁아지기만 하는가 보다

친구야!
내일은 이야기하던 우리들의 정열도 일기속에
파묻히고 우리들 곁에 수 많았던 벗들도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떠나가 버리고
너와 나 둘이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