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마흔 다섯이나 먹어버렸다.
이제 두 달 후면 마흔 여섯.
벼랑을 걷는 기분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학원강사.
유능하고 신 지식을 빨리 흡수해 곧바로 실제상황에 투입할 수 있는
젊은 강사를 오너도 학생들도 원한다.
수업을 하다가(참고로 저는 전문학원의 논술강사임) 좋은 선생님과
싫은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좋은 선생님으로 예쁜 선생님, 무섭지 않은 선생님, 잘 가르쳐 주는 선생님을,
싫은 선생님으로는 못생긴 선생님(여기에는 나이 든 선생님도 포함됨), 무서운 선생님,
등을 꼽았다.
그런 아이들 의견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자격지심도 다분히 포함됐을 듯)
"못생겼지만 실력이 있는 선생님과 잘 생기고 실력은 보통인 선생님이 있다고 하자, 그럼
어떤 선생님이 더 좋지?"
하는 내 말에 답이 없다는 듯, 잘 생기고 실력이 있는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왠지 잘 생긴 아이에게 끌린다고 했다.
이렇게 아이들 눈치를 보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전업주부의 벼랑으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아직 돈을 벌어야 한다. 아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말했다.
"돈을 벌면 건강과 활력을 찾는다"고.
공감한다. 집에서 한없이 늘어지다가도 일단 오후에 출근을 하면
그리고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생기가 돌고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더 크게 느낀다.
문제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늙은 강사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나 학부모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불리워져야 하지만
자신 보다 더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우리 원장은
용납하지 않는다.
이 경계, 이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싫은 선생님으로 남아서도 안되고, 원장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는 더욱 안되는 사태.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가 나, 개인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 자체가 바로 이런 딜레마 형국의 연속선상이 아닐까?
대학 때 교양시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한 학생의 말에
"불공평한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 불공평함에 익숙해져라"
했던 선생님 말이 생각나는 가을 아침이다.
쓸쓸하다, 내 나이만큼이나 차고 쓸쓸한 가을 아침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많은 주부들 역시 이 아침, 나와 같은 쓸쓸함을 견디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컴 앞에 앉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