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검 검사장님께 드립니다.
저는 현재 대구대학교 03학번 특수교육대상자로 도시 과학부에 입학한 이
종광의 엄마입니다.
20여 년의 세월을 모든 정성과 노력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저리는 설움도 삼
켜가며 이세상의 그 누구의 자식보다 아끼며 키워온 나의 소중한 아들입니
다.
대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은 소망으로 결코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없는 신체
적 장애도 불구하고도 대학교에 입학 한 것을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아시는
지요!
두렵고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부담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누려본다는 대
학생활에 무던히도 맞추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며 정말 종광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반 XX를 기숙사 룸
메이트 결정하여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행복해 하고 즐거워했는지 모
릅니다.
11월초부터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채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통화 할
시간조차 내기 어려웠던 아이가 저녁마다 시무룩한 목소리로 “학교가 무
섭다”, 집에 가고 싶다, 다른 대학에 가고 싶다 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엄마가 가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리곤
하여 아무래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 11월 13일 종광이에겐 알리
지 않고 대구로 가고 있는 도중에 종광이가 언덕에서 떨어져 119를 불렀다
는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하양 성심 병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사고의 연유를 물었지만 주위친구들과 조교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려 하지
않아 병실로 옮겨 안정시키고 달래면서 물으니 스스로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칼로 손등을 그으며 시도했으나 무서워서 밖에 나가
뛰어 내렸다고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슨 이유냐고
계속 물으니 그날에는 친구들의 심한 장난과 학교 리프트 사용 중에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수업 시간에 차례 지각하는 등의 불편함과, 세탁실에 요금
을 주며 의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언어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탈수 통에서 건조도 하지 않은 뭉친 상태로 옷을 찾아가게 하였고 5호관 기
숙사 조교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는 일상적인 불편함만 이야기하였다.
병원에서 2주 진단을 받아 학교측에 제시하여 집에서 가료한 후 11월 24일
복귀하였다
같이 생활하는(룸메이트는 한 명이나 그의 친구2명과 종광이 방에서) 저녁
에 고기도 사 먹이고 노래방도 보내주며 종광이의 마음을 풀어주라는 부탁
을 하였습니다.
25일 안양 집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귀가하였으나 다음날 오전 8시 30분
경 종광이로 부터 설사와 두통, 어지러움과 손과 발에 경련이 일어난다는 전
화를 받은 후 다시 기숙사로 와보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 엄마와 같
이 자고 싶다는 의사로 진량에 위치한 사파이어모텔에 같이 투숙하여 아무
래도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켜서
엄마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제 서야 털어놓아 그 이유를 들어보았습
니다.
1. 10월 24일경부터 룸메이트인 반 XX. 서 XX, 신XX( 4, 2층 기숙사
거주학생) 등이 같이 있는 종광이 방에서 홍대가 일본에서 구입해 온 여자
성기모양(종광이가 알고 있기는)기구(별첨)를 종광이의 항문에 주입하여 모
타의 진동을 변화 시켜가며 2- 3일에 한번씩 1, 2, 3분 간격으로 30여분에
걸쳐서 강제로 행했습니다.
3. 자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 성기를 꺼내 놓고 세우라고 했으며 그렇게 하
지 못하면 군대식인 엎드려 뻗쳐 등 종광이의 능력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채벌을 가 하는 등 비인간적인 짓을 장난으로 일삼았고
4. 한밤에 자고 있는 종광이를 억지로 깨워서 같이 놀자고 자지 못하게 하였
다.(앞의 성기사용)
5. 가끔 위의 행동으로 자존심이 상하여 친구들이 하는 게임에 “져라”,
“져라” 하고 말했다는 이유로 며칠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무시 당하였
습니다.
6. 2학기초부터 시작하여 전날 물을 부어 놓았던 짜장 라면을 다음날 점심이
라며 종광이에게 배가 불러 먹지 못한다는 의사도 묵살하며 억지로 먹어라
강요하여 하는 수 없이 반 그릇을 먹었습니다
7. 장애인 진단서(지체장애 1급) 제출로 그나마 인심 써서 전기요를 쓸 수
있는 허락을 받고 깔고 자고 있는 종광이를 깨워 전기요를 빼앗아 자기들
끼리 깔고 자는 등의 비인간 적인 행위를 죄책감이나 반성의 단어가 무색
할 정도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또 하였습니다.
8. 순살 튀김을 같이 나눠 먹고 남은 것에 무우 국물, 먹다 남은 콜라, 감자
튀김 등을 섞어서 먹으라며 핸드폰으로 촬영하기까지 하였으며, 다 먹지 못
하면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협박,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먹을 수
밖 에 없었습니다.
9. 종광이의 소모품들은 종광이의 양해도 전혀 없이 공동으로 사용(스킨, 로
션, 비누, 헤어젤, 양말, 노트북)하는 말할 것도 없이 선물로 받은 연필도 가
져갔고 학용품은 물론 자기 것을 쓰는 양 당연히 행하였습니다
10. 어느 날은 종광이의 바지를 반쯤 벗게 하여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기들
이 목욕하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등 성적 희롱을 여사로 하였습니다.
11. 마포로 기숙사 바닥을 닦게 하고, 간식을 사와라, 담배를 사와라, 하물
며 콘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콘돔 등을 가끔은 돈도 주지 않고
사오라고 하였고
12. 수시로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걸리적 거린 다
고 차고 나갈 때 비키라고 차고 잠자리에서 젓꼭지를 꼬집어 아프다고 소리
치면 칠수록 아픈 강도를 더하여 아무리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하였습니
다.
13. 새벽에 인터넷 유료 게임시간에 맞추어 깨워달라는 세 명이 각각 2시,
3시,4시 등 그 시간에 맞추어 깨어야 하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지샌 날이
허다했습니다. 혹 못 견디어 그 시간에 깨우지 못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부리
는 신경질이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4. 자기들은 씻지도 않고 자면서 매일 목욕을 강요(성적 노리개?)했고
세수하러 나가는 종광이에게 술 깨는 약을 사 오라고하여 기숙사에서 정문
바깓 슈퍼까지 반팔로 추운 것을 참아가며 사오기도 했습니다. (왕복 20분소
요)
15. 10월 24일 추석이 지난 후에는 강도를 더하여 11월 13일 자살을 기도
하기까지 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여 입안이 5센티 가량 하얗게 헐어
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다는 핑계로 얼버무리곤
하였습니다.
16. 자기들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종광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 할 엄두조
차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중략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하면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이런 대우를
받고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종광이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싫었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도 너무 싫었기 때문에 참다, 참다 11월 13일에
자살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3개월 동안이나 당한 이런 일들이 오죽 하였겠습니까!
우리 아들에게 일어났던, 당했던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이 시대에도 행해지고
있는 것을 상상인들 할 수 있을 런 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 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친구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어떻게 천사처럼 순수한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수 있습니까?
34. 자살 기도 치료로 2주가 지난 11월 24일, 기숙사에 복귀하면서 엄마인
나로서는 그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서운함을 느낀 종광이를 이해시키고 친구
들에게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도 할 겸하여 삼겹살과 음료수 소주를 사주
며 반인제가 또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하여 5만원을 반 인재에게 건내 주고
숙소인 사파이어모텔에 돌아왔다.
35. 그날 노래방이후 또 호프집에서 술을 먹으며 종광이가 듣고 있는데도
서 홍대가 반 인재에게 "종광이 젖꼭지 꼬집는 것 등은 종광이 엄마가 가고
난 다음인 화요일까지 참자."라고 이야기했다.
11월25일 오후 엄마와 헤어지면서 무언가 공포에 질려서 말을 하고 싶어했
지만 반 인재등이 계속 같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울움을 참기도 했습니다.
11월26일 오전 다시 위의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또 당할 생각을 하자 공포
에 떨려 갑자기 소변을 보는 중에 설사와 두통과 어지러우며 경련이 일어났
다고 하였습니다.
같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당했던 일이니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처음으로 객지에서 믿고 의지했던 같은 학과, 룸메이트와
같은 학과 친구인 그들에게 유린을 당 할 수 가 있나요?
지금 그들이 변명하는 바로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라고 하나 무의식
속에 까지 인간으로 대하지 안았다는 그 증거가 아닙니까?
사람이 이렇게 한낱 강아지의 놀이게 보다 못한 이런 일이, 이런 대우를 당
하고도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조차 관심도 노
력도 없는 대구대 안의 모든 관리자들의 안일함을, 타성 고발합니다.
11월 26일 밤 11시 30분 이후로 엄마인 나로서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는 종
광이를 감당 할 수 없어서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님과 비호 생활관의 책임
자인 손 동우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여지없이 거절당하였고 119 구급차
의 도움으로 경상 병원 응급실로 올 수 있었습니다.
겨우 종광이가 안정되어 잠든 이후 저의 고통은, 고문은 시작되었습니다.
울 수조차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저에게 새벽까지 보다 못한 병원 접수선
생님께서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아야기를 들은 후에
야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 불안하여 2003년 11월 27
일 오전 6시 30분 경 경산 경찰서의 정보과장(구 자목: 011-526-9074, 사
무실: 053-811-4113)님을 찾아가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
다.
11월 26일 밤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래도 학교에 알려야겠기에
증거(아이들이 사용했던 기구)의 수색을 생활관의 손 동우씨에게 도움을 청
하여 결과를 약속하였지만 지켜지지도 , 다음날까지도 종광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학교 측의 무관심과 성의 없음에
너무 서운했다.
2003년 11월 27일 오후 4시경에 비호생활관 팀장과 손 동우, 장애인지원
센타 소장(12월 현재는 다른 사람이 부임)이 서 홍대, 신 현호를 경산병원
종광이 병실로 데리고 왔으며 그 아이들을 보자 종광이는 경련을 일으키며
공포에 떨었고 그래서 홍대와 현호를 나가라고 하였으나 복도에서 안의 말
을 엿듣고 있어서 엄마로서 화가 나서 뺨을 서너대 때렸더니 "아줌마 내 애
기도 들어보세요"하며 덤비었다. 후에 인터넷(대구대 홈페이지)에 자기 변론
하는 글을 올리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무식한 엄마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산경찰서의 구 자목 형사가 응급실로 찾아와 종광이와 대면하러 왔으며,
그때까지 기숙사를 수색했다는 학 측의 연락이 없어서 수색을 부탁하였으나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며 오후 늦게야 학교 생활관에 오니 어제 방 수색
을 했다고 한다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2003년 11월 28일
구 자목 형사를 믿을 수 없어서 오전 11시 이후 대구검찰청에 직접 찾아가
서 지검장님 앞으로 탄원서를 접수하고, 교육 인적 자원부 검사실장 앞으로
탄원서를 등기로 보냈습니다.
반 인재, 서 홍대, 신 현호 등은 아무런 제제도 없는 상황에서 평소처럼 학
교에 다니고 있고 26일 밤 이후 집에서도 종광이는 2-3 시간밖에 자지 못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안양 집에 주말인 관계로 다니러 와서도 종광이는 악몽에 시달려서
잠도 들지 못하고 식사도 거르면서 불안 해 하고 있으며 그 아이들이 종광
이에게 한 서러웠던 일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간 이유는 종광이의 사촌누나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궁금해하
여 개인메일로 보낸 것을 내용을 보고 화가 나서 자기의 까페에 올렸다고
하기에 다시 지우라고 하였으나 지우기 전에 잠깐사이로 보게 된 분이 대
구대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차피 밝힐 예정이었으니까 굳
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12월28일 이후대구대 홈페이지에는 종광이와 엄마인 저에게 수없이
많은 비방의 글들로 다시 한번 종광이와 같이 유린을 당하는 것 같아 견디
기 힘듭니다. (전혀 종광이의 말을 믿지 않는 다는 의식으로 흘러가고 있음)
특히 같은 룸메이트 친구들이 종광이의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도 아랑곳하
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종광이를 죽음을 선택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
니다.( 종광이는 어떻게 하면 정말 죽어지는 지 초차 생각하지 못할 만큼 순
수합니다.)
2003년 12월 1일 경상병원으로 다시 입원하려고 경산으로 가는 중 경산경
찰서 수사과 형사인 김 형준(017-774-9104) 씨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라
고 해서 오후 4시쯤 위 내용을 포함한 내용으로 고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오후6시경에 새로 부임한 비호 생활관의 관장, 학생처장,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 외 학교관계자 3명 등이 와서 입장의 차이라며 종광이의 이야기를 들
으려 하지 않아 며칠동안 종광이의 이야기를 적어두었던 메모지를 볼 것을
부탁하였고 생활관 관장은 종광이의 말은 믿겠다는 이야기 후 돌아갔고, 밤
에는 서 홍대, 반 인재의 엄마와 이모들이 병실로 찾아와 부모들은 몰랐으나
같은 아들을 기르는 입장으로 용서 해 달라는 소란을 피웠으며 종광이가 또
불안한 반응을 보여 억지로 병실을 나가게 하였다.
2003년 12월 2일
김 형준 형사와 수사과 형사 반장님이 피해자 진술을 받기 위해 병실로 찾
아와 5시간에 걸친 진술을 종광이에게 직접 듣고 기록해 갔다.
저녁에 또다시 홍대와 현호, 그의 엄마들이 찾아오는 등 괴롭혀서 면회사절
을 병원 측에 요구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2003년 12월 3일
대질 심문이 필요할지 모르니 집 근처에 가서 치료를 원하는 저에게 가해자
학생들의 조사 후 알려 주기로 하여 오후에 가해자가 성추행과 폭력을 인정
하여 좀 상이한 부분이 있지만 대질 심문이 필요 없다고 하여 안양 집으로
저녁 늦게 도착했다.
2003년12월5일
병원에서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약만 먹이고 있었는데 집에서 또 다시 악몽
과 불안하면 나타나는 경련과 식사도 하기 싫어하고 잠도 자려하지 않아 한
림대학교 성심병원에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고 입원실이 여의치 않아 약 처
방만 다시 받고 돌아왔습니다.
2003년 12월 8일
오전에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과로 입원하여
2003년 12월 12일 까지 입원했었습니다..
입원 중에 매일 반 인재 엄마가 전화하여 고소취하를 요구하였고 학교 측
행정대 학장이 만나고 싶다는 등의 전화가 장애인 지원 센타 소장을 통하여
연락이 왔고, 김 형준 형사에게 12월1일에 경상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5시
간에 걸친 임상심리검사 결과서를 보냈으나 검찰에는 진단서가 첨부될 예정
만 알리고 본인이 보관하고 있으며 검찰로부터 대질 심문을 하여 자세히 조
사해보라는 연락이 왔다며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는 종광이의 사정을
이야기하였으나 대질 심문을 하지 않으면 종광이가 불리하다는 등의 불쾌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김 형준 형사에게 검찰 측 담당자를 이 종찬 검사라
고 알려주었음)대질심문을 할 때까지 서류를 검찰에 넘기지 않는 다는 뜻으
로 들렸습니다,(지금 종광이에게 사용했던 기구도 증거물로 김형준 형사가
보관중임)
반 인재 등의 엄마들이 3천 만원 들여 변호사를 사서 명예훼손죄로 맞고소
준비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제 겨우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종광이를 대질 심문을 받으러 대구로
다시 가면 그 아이들을 또 만나서 받는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합니까?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우리 부부는 제대로 일
을 나갈 수도 없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나요?
처음부터 대구대와 같은 지역인 경산경찰서만을 믿기 어려워 밤을 새워 검
사장님께 탄원서를 썼으며 대구가 생전 처음인 그곳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하
고 물어물어 찾아간 것인데 아직도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는 다면 어디에
또 이 울분을 알려야 합니까?
대구대의 입장은 검찰의 징계에 따라 학생들을 처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종광이의 다시는 대구대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절규를 어떻게 해결 해 주어
야 할까요?
힘들게 들어온 대학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도, 힘들지만 즐거웠던 다른
친구들과의 생활도 다시는 꿈꾸지 못하는 아직도 죽고 싶은 마음뿐인 종광
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존경하는 검사장님!
부디 서러운 이 인생들을 구해 주세요!
다시 한번 이렇게 절망적인 생활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
라는 희망을 다시 가지며 살아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끔 이런 일 들이 종광이 뿐만 아니라 사건화 하지는 않았지만 일어나고
있다는 애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비록 종광이는 아픈 상처로 남았지만 앞으로 이런 고통을 당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기를 바라며 분명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
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고, 알릴 수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방지하여야
하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대구대의 장애학생처우 개선과 시설을 완
비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정정당당히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이 기회에
조성 될 수 있도록 했으면 또한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학교측은 사실 묵인을 원하는 듯하며 종광이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도, 대책
도 없는 것이 너무 서운합니다.
2003년 12월 15일
종광이 엄마 강 미화 올림
이 종광 : 850117-******* 대구대학교 도시과학부
학번 : 20308794 (비호5호관 111호)
강미화 : 610115-*******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 532-3 한림시티빌 801호
연락처: 011-472-3644
e-mail : mihwa36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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