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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의견(펌)


BY 놓아라 2004-03-30

박종성] 당신 없이도 나라는 다스려지더이다


 
▲ 박종성/ 서원대학교 정치학 교수   
 

눈빛 하나 꿀리지 않고 할 말 다한 대통령이 나라 뒤엎은지도 이제 보름을 훌쩍 넘겼다. 사과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까지 홍보수석이 덤으로 내놓은 게 그 다음날이었으니 청와대가 자취 감춘지도 꽤 됐다. 또박또박 발음하며 기이하게 용서를 구한 듯 보인 그 날의 설명이 무슨 효과가 있었으랴만 이 땅의 최고권력도 산처럼 고뇌하고 바다만큼 번민했던 양,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잖으면 세상 떠난 남상국 사장의 넋도 못 달랠 것 같았을 터이고 들끓는 세상 인심 조금은 달래야 하리라 후회도 하였을 것이리라.
그러나 쌓인 눈 치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 국민 한번 위로하지도 않던 대통령이었다. 때마다 차출되어 사역(使役)으로 뼈 빠질 군인들의 처지조차 어루만질 아량은 그날 따라 마음에도 없었던 듯 했다. 오늘날 세상이 입방아 찧는 대로 ‘탄핵 작전’을 수행하느라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었다 치자.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교감의 과정이 한층 절절했고 더 애틋하였기에 그리할 여건이 아니었다 변명한다 하자. 어느 한 구석 외마디 진솔한 휴머니티 섞어 대사 한 줄 끼어 넣을 여유조차 없을 만큼 그는 그날 그렇게도 절박했던 것일까.

그래서 더욱 도도한 대통령이었다. 튕기고 받아치고 내쳐 뱉어낸 말들의 충돌 속에서 스스로 비틀거렸으되, 그는 보려 하지 않았다. 삭막한 대지를 헤매며 등이 휠 것 같은 눈 더미 사이로 칼바람보다 더 차갑게 눈 흘기던 3월의 군중들을. 이 세상 어떤 파도도 막아낼 양 거침없이 대들면서 상황을 타고 넘는 자신의 명민함에 놀랐을 지는 모르나, 그는 한사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썩어 가는 정치권력의 버팀목 파열음과 자신 향해 겨눠지는 독침의 아린 금속성 소리를.

되돌아보자, 다시. 어디 남의 말 제대로 듣던 그였는가. 웃다가 비아냥대고 듣기 싫으면 외려 큰소리치는 그 모습 더욱 싫어 탄핵의 빌미도 그렇게 거짓처럼, 그렇게 도둑처럼 빚어졌을 것이다. 계산 없이 사과할 마음 있었다면 조건 없이 인간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다가가 어루만지려 표정부터 바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만 분의 일이라도 진정성을 담아 “나도 정녕 굽힐 줄 알며 피치 못할 족쇄의 ‘할큄’으로 이미 발목 살 쓰라리게 벗겨진 다음”이라고 왜 겸허히 무릎 낮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단 말인가. 그래서 뼈마디 틈새에선 견딜 수 없이 피고름 흘러 밤잠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라고 천하가 알아듣도록 빌고 또 빌며 백성의 품안으로 엎어질 계산조차 왜 한번 아니 했단 말인가. 허리 한번 미덥게 숙이고 머리 한번 살포시 내려놓기가 그다지도 힘들더란 말인가. 그 유려한 입술, 그 번개같은 두뇌를 능히 겹으로 재생산할 줄 알면서도.

하면, 달포가 넘도록 흘러간 낮과 밤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분노? 애달픔? 복수? 울기? 아니면 성찰? 감정이야 객관식 시험문제로 풀 일 아니겠으나 그에게 묻고 싶다. 그러나 또 뭐라 답할까. 언어의 유희로 심기 어지럽히지 말라며 또 특유의 빈정과 공격 섞어 물음의 동기를 농락하려나.

보름 전 까지 대통령직 수행하던 ‘그’는 그렇다 치자. 이제는 정장을 즐겨하며 대통령 대신 한층 목소리 낮춘 정동영 의장의 표정 고치기가 더욱 가증스러워 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선거는 끝났다고 곳곳에서 승리의 예약 벨 소리가 울려올 때 어쩌지 못할 미소 조각들을 이내 들켜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통령의 위패(位牌)가 내뿜는 찬란한 금빛 자락에 얼마 전부터 홀려 있었기 때문일까. 벌써 보이는가, 그 빛이.

흘렸다면 주워야 하고, 보았다면 마음 깊이 삭혀둘 일이다. 누설 못할 천기가 어찌 당신의 것일 수 있단 말인가. 보여도 보인다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본능보다 뜨겁고 욕망보다 솔직한 기운 뭉쳐 당신의 걸음 요즘 더욱 놀랍게 느리고, 울부짖으며 광분하던 그날의 몸짓도 이제 사과 한마디면 용서될 것이리라 후안(厚顔)의 강도를 높인다 한들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연기(演技)겠는가. 지금이 또 어디 대통령 탄핵될 경우까지 내다볼 정치적 슬기마저 시험해볼 때이겠는가.

그리도 안쓰런 봉황(鳳凰)의 날개가 선거 당일까지 주위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더라도 둘이서 하나같이 눈 여겨야 할 현상은 따로 있다. 광화문을 후려치던 함성과 시청을 파묻어 버린 촛불의 부피였다. 그것은 관제(官製)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동원한 기적도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지애로 똘똘 뭉친 그대들은 오해하지 말라. 속단도 말라. 번쩍이면 다 금인 줄 아는가. ‘흑마(黑馬)’나 ‘검은 말’이 무엇이 다를 것이며 ‘초록(草綠)’은 동색이라 우기고도 싶었을 것이리라. 그것은 결코 같지 않았다. 철자가 다르고 의미가 같지 않음을 꼭 말로 해야만 알 일이겠는가.

모두가 한결같이 당신들 두 사람에 목이 메어 복받쳐 있는 줄 알았는가. 그래서 아이 업고 부인 손잡으며 그리로 향한 줄 알고 있었는가. 노란 색이 겨워겨워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남녀 학생 여럿이 이순신을 바라보고 청와대 쳐다보며 ‘탄핵반대’를 외쳐댄 줄 알았는가. 동강난 나라의 반쪽이나마 되살릴 최후의 구원투수가 ‘노사모’와 당신 따르는 열혈동지 밖 어디에도 없기에 점점이 타들어 가던 봄밤의 그 촛불 모두 눈물겹도록 갸륵한 그들이 일렁이게 해 논 것이었다고 당신들 ‘둘’은 정말 믿고 싶은 것인가.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치솟고 ‘탄핵’이란 두 글자의 빛이 벌써 바래 가도 대통령, 당신은 이미 죽었다. 청심환 한 알 쓰지 않고 헌법재판소가 절묘한 회생의 주문(呪文)을 건들, 귀하는 보름 전 그 몸으로 환생하지 못한다.

기적을 떡 먹듯 ‘죽다 살다’ 반복하고 냉·온탕을 찰나로 드나들었어도 갑신의 삼월사(三月史)는 분명 다시 써야 한다. 탄핵은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 발의, 의결하였으나 빌미의 주역은 당신이었다. 여기서 당신은 이제 한 치, 두 뼘도 도망 못 간다. 아직도 자기교만에서 깨나지 않고 가진 자들 향한 기막힌 원한 풀지 않은 채 ‘귀거래사’ 연습하며 핏빛 복수를 다짐하는 한, 이 땅의 피곤은 가시지 않는다. 절반으로 절반을 상쇄해 버리려는 그 무한 보복의 굴레 안에서.

당신 없던 보름의 세월도 생각보다는 튼튼히 흘러주었다. 그 자리 비우면 일날 줄 알았던 사람들이 순진했던 셈이다. 이 같은 나날을 뉘라 예견할 영특함이 있었겠으며 무엇으로 대비할 일이었겠는가. 그래도 단 하나 당신이 일깨운 보름의 교훈은 당신 없이도 나라는 다스려지더란 얘기였다.

이 치욕 같은 계몽의 역설이 우리의 밤잠 설치게 하고 낮잠 마저 방해하는 나날, 당신이 이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사항은 스스로 그리고 조용히 물러나는 ‘일’이다. 재판소의 결정이 아득히 기다려지고 그에 따라 요동칠 세월의 파도를 가슴 설레며 상상치 말고 스스로 짐 싸 광화문을 떠날 일이다.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혁명만큼 어렵고, 개혁보다 훨씬 힘든 ‘물러남’. 그리고 죽기보다 싫을 겸허한 ‘내려감’. 이제 당신 앞에는 그 일만이 남아있다.

쫓겨나거나 암살 당한 자는 있었으되, 스스로 호기 있게 자리 물리친 이 없던 이 땅의 현대사에서 이제 ‘영광의 하야’를 유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하야의 영광’ 조차 누리지 못할 것이다. 명분? 핑계? 아직도 그런 것을 찾고 있는가. 촛불이 돌멩이로 바뀌어 분노의 칼끝이 당신을 노린다면 그 때 당신은 다시 또 말할 것인가. 이제 막 하자는 거냐고. 그렇다면 그 전에 답해야 한다. 기어이. 당신은 막 해도 좋고 나머지 사람들이 막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대관절 무엇인지.

(박종성/ 서원대학교 정치학 교수)


입력 : 2004.03.29 14:19 38' / 수정 : 2004.03.29 14:27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