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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도 괜찮은 교수님이 계시군요. 조기숙교수의 시론 '탄핵의원을 표로 탄핵하자'


BY 바람의 市 2004-04-02

[시론]‘탄핵의원’을 票로 탄핵하자

보수신문이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감성이 아니라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으란다. 탄핵에 대한 분노로 한 쪽에 표를 몰아주지 말고 균형을 맞추라는 말이다. 지난 1년간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망각하는 국민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도 빼놓지 않고 있다.

언제는 탄핵이 대의민주주의 틀 안에서 의원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한의 행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정당보다 인물이나 정책이 더 중요하단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정치다. 정당에 대한 심판 없이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그렇게 한가한 타령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가 무너졌다. 국회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위반한 것이다.

3분의 2가 넘는 국민들이 분노와 슬픔에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정작 민의를 저버린 국회의원은 국민에 대한 사과와 탄핵철회를 약속하지 않고 있다.

-민주공화국 헌정질서 와해-

우리는 1987년 6월 겨우 직선제 대통령선거 하나 쟁취하고는 민주주의를 다 얻은 것으로 착각했다. 곧 지역주의에 매몰돼 군부독재 세력과 지역의 맹주가 공천해주는 후보에게 표를 찍으며 이들이 어떻게 국민의 고혈을 수탈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나마 낡은 정치를 청산하라고 개혁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우리가 이룬 개혁의 전부였다.

그 개혁대통령이 수구 기득권세력의 조직적인 반발에 의해 직무를 정지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재확인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선거에서 다양한 인물과 정책이 개진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건강한 사회다. 그런데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유연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본 헌정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필수적이다.

과거 친일과 독재를 통해 권력과 부를 쌓아온 기득권 세력이 수시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질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얻은 소득이 있다면 누가 민주시민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70%가 넘는 국민이 탄핵에 반대하는데 보수신문들은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공화국의 헌정을 수호하려는 민주세력이 90% 정도는 의석을 확보해야 국론분열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국론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거의 핵심은 탄핵에 대한 심판이 되어야 한다. 쟁점이 탄핵이 된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이나 민노당이 이로운 것은 아니다. ‘한민자’ 3당 후보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민 앞에 사과하고 탄핵철회를 약속한다면 민주시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거대여당을 견제하겠다고 3당 연합을 키워 놓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탄핵에 반대하면 공천을 취소하겠다는 지도부의 으름장에 허물어진 의원들이 어떻게 소신을 갖고 여당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지도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돌격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통령 발목잡기뿐이다. 민주헌정 질서를 거부하는 야당을 키워 놓는다면 우리 앞에는 국론분열과 국정파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 대통령의 독주는 누가 견제하는가. 탄핵에 반대하는 민주시민이 모두 노대통령 지지자는 아니다. 노대통령이 옳은 길로 가지 않는다면 나부터 나서서 맹렬히 비판할 것이다. 적어도 탄핵에 관해 당론과 다른 소신을 가질 만한 의원이라면 대통령에 대해서도 필요할 때 분명히 반기를 들 것이다.

-후보에 탄핵입장 물어야-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지역구의 후보 개개인에게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물어야 한다. 정당에 상관없이 탄핵에 반대하는 후보가 3분의 2 이상 당선되어야 17대 국회에서 탄핵을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는 국론분열과 비정상적인 국정의 지속으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인물이나 정책보다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탄핵 철회 의사다. 민주헌정질서를 수호할 의사가 없는 후보를 민주공화국의 국회에 들여보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조기숙/이화여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