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는 지금 광주의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고행을 하며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표? 당연히 표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고행을 단순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부동표를 구걸하고 있는 선거철의 각설이 타령으로‘만(!)’ 보는 사람은 모두 눈 뜬 장님이다. 그녀는 지금 눈먼 광주를 위해 처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녀는 고행을 시작하기 전 이렇게 한숨지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마음으로 이 곳에 왔습니다.”
그녀에게 광주는 아버지다. 그러나 지금은 눈먼 아버지다. 눈이 멀어 자신들의 자식인 민주당이 왜 역사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눈먼 아버지다. 아니 자신들의 자식이 민주당이 아닌 노무현과 열린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눈먼 아버지다. 과연 광주가 눈이 먼 것일까 아니면 남의 자식 추미애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노빠든 (반)추빠든 아니면 냉정한 관찰자이든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고통스럽게 사죄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좋은 질문이다. 그녀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를 지켜온 (광주에) 피땀을 흘린 민주 자존심에 큰 상처를 드리고 민주당을 지키지 못한 점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그러나 이 어정쩡한 대답은 그들을 절대로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 듣고 싶은 대답은 딱 한 가지, ‘탄핵을 사죄하는 거냐 아니냐’이기 때문이다. 노빠들은 이 대답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할 수 있고, 민주당의 반추빠들은 이 대답으로 민주당 노선의 이탈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광주도 이 대답을 듣고 싶은지 모른다.
대답을 뒤로 미루고 잠깐만 생각해보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의 하나가 논리만으로 정치를 재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늘 하는 방식이다. 약간의 논리적 기초와 훈련만 돼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탄핵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법적인 논리의 기초위에서 탄핵의 가불가에 대한 내 입장을 얼마든지 밝힐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는 논리, 더군다나 법적 논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헌법상의 탄핵요건을 갖추어 노무현의 탄핵이 가능하고 나아가 불가피하다고까지 판단돼도 정치적으로 탄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헌법도 ‘탄핵의 소추를 의결해야 한다’가 아니라 “의결할 수 있다”로 돼 있다. 그러므로 이 모순은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탄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태로까지 나타날 수 있다.
헌법을 연구하고 있는 나나 혹은 법조인들은 자신들의 법적 논리에 따라 탄핵문제를 재단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법조인 아닌 국민들은 법적 논리가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역시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실제 탄핵소추 의결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만 했던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들은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을 동시에 해야만 했을 것이다. 여기서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 일치했다면 별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법적으로는 탄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데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탄핵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딜레마다. 추미애의 이 딜레마는 이렇게 보도됐다.
“탄핵 소추 이후에도 입장표명을 자제한 추 위원은 16일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서울지역 확대당직자회의에 참석, “탄핵 이후 국정불안을 우려해 탄핵소추를 반대했을 뿐 탄핵 사유가 틀려서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며 “노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자로 만들 정도”라고 주장했다.”(<인터넷연합뉴스>, 2004년 3월 16일)
그녀는 노무현의 탄핵에 대해 “책자로 만들 정도”의 탄핵사유가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에 처음부터 소극적이었지만 또 결국은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한마디로 법조인 추미애의 법적 논리와 정치인 추미애의 정치적 논리 사이의 모순과 고뇌일 것이다. 좀더 확대하면 이 모순이야말로 지금 민주당이 직면하고 있는 탄핵소추권 행사의 헌법적 정당성과 탄핵반대라는 정치적 여론 사이의 딜레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서 추미애는 지금 광주시민들에게 탄핵을 사죄하는 것인가 아닌가? 선택을 강요하는 이 형식논리학적 유도심문에 추미애는 결코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적 논리로는 사죄할 이유가 없지만 탄핵을 반대한 광주시민(국민)에게 정치적 논리로는 사죄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미애는 지금 ‘사죄하면서 동시에(!) 사죄할 수 없는’ 자신과 민주당의 변증법적 딜레마를 일일이 설득시킬 길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온몸으로 이 모순을 체현하면서 고행에 나선 것이다. 하늘이 돕는다면 한걸음 한걸음의 고행을 통해 그녀의 눈먼 아버지인 광주를 눈 뜨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자신을 변명하는 수백마디의 논리적 말없이도 그녀와 광주의 영혼의 교감을 통해 광주를 다시 눈 뜨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 광주가 탄핵을 이유로 굳이 민주당을 버리려 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른바 한민공조 문제다. 그러나 이는 명분과 관련된 일종의 핑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주는 지난 일년 109번의 한열공조는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는 특별히 탄핵을 함께 한 한민공조를 문제 삼고 있다. 즉 광주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정권을 반대하고 탄핵한 민주당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진짜 이유다.
광주가 노무현 정권을 여전히 자신들의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배신에 분노하고 있는 폴리티즌의 일반적 정서와는 다른 것이다. 왜 광주는 배신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광주가 배신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광주는 다른 선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할까봐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득권을 ‘우기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신기남은 이런 호남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우리당의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우리당이 호남을 석권하고 영남지역주의 타파를 못하는 것보다는 양쪽에서 균형적인 의석을 갖는 것이 낫다.”(<프레시안>, 2004년 3월 30일)
노무현은 호남이 필요할 때는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협박하더니 정작 이제 와서는 신기남은 호남의 ‘기득권 주장’이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정떨어지게 말하고 있다. 영남이 한나라당과 열린당 모두로부터 간절한 구애를 받는 것과 비교해보기 바란다.
나는 만약 호남이 정략적인 이유에서 열린당을 원하고 있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민주당에도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호남은 배신을 일삼는 권력을 향해 자신들도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럴 때에만, 즉 호남이 선택의 여지를 갖고 있을 때에만 그들도 호남을 얻기 위하여 최대한의 대가를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기남의 소원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눈먼 아버지 광주를 향한 심청 추미애의 간절한 호소가 효력이 있을까? 호남표를 얻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는 추미애의 반영패주의적 진심과 더 이상의 호남 기득권 주장은 부담스럽다는 신기남의 영패투항주의적 오만을 광주는 구별할 수 있을까? 광주는 추미애와 민주당이 살아남아야 노무현과 열린당의 배신을 역사를 향해 증언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눈먼 그대 앞에서 광주의 딸이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 머지않아 누가 광주의 진정한 자식이고 누가 배신한 자식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구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광주여 눈을 떠라!!!
김욱은 대학에서 헌법, 법철학 등을 강의하고 있는 헌법학자이며, 논문으로 <주체사상을 통한 마르크스적 자유와 평등실현의 법리와 문제점> (박사학위논문, 1994) 외 다수가 있고, 저서로는 <영화 속의 법과 이데올로기> (인간사랑, 2002),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책세상, 2003)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