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생활은 찾아가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며 찾아오시는 자를 영접하는 것이다. "손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서 부지중에 하나님의 종을 영접한 자들이 있었느니라." 손님을 대접하는 자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는 자이다. 평상시에 손님을 잘 대접하는 자는 자기를 비우고 사는 자이다. 그러나 자기로 가득한 자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으며 영접할 여유가 전혀 없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자기가 없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음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닫혀 있는 문은 얼마나 답답한가? 무슨 말을 해도 침투가 되지 않고 오직 자기 옳음으로 가득하고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다. 얼마나 답답한가? 거기는 할 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침묵만 흐를 뿐이다. 자기 마음을 열지도 않고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겠는가? 사람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알아듣겠는가? 하나님은 이미 그의 종들로 천사들로 아들로 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하실 것도 없으시다. 다만 하신 말씀을 성령으로 조명해 보이시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어제 말씀하심이 곧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어제 계신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다.
옳은 길을 찾는 자들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을 정해 놓은 자들 인고로 자기 안에 있는 옳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인생들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행위인 것이며 천국을 찾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찾아가서 만나질 분이 아니라 찾아오시는 분이시며 천국은 내가 고행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임재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이시다. 성령의 임재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시다. 그러므로 오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찾고 찾던 것을 포기하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생활을 종교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찾아오신 하나님의 종을 영접한 자들이며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아멘 함으로 영접한 자들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며 날마다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아멘 함으로 영접하고 모셔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하시는 말씀을 날마다 들을 것이라.
길을 내가 찾는 한 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조 요청은 길을 잃은 자가 하는 것이다. 구조 요청을 한 자는 길을 찾아 헤매지 않고 거기 있는 것이다. 거기 있으면 구조하려는 자가 찾아올 것이다. 구조 요청은 해 놓고 자기가 또 이리 저리로 찾아다니면 구조할 자와 길이 엇갈려서 계속 헤맬 것이다. 구조 요청을 했으면 거기 가만히 앉아서 구조할 자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구원은 내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찾아오신 것이시다. 길 잃어버린 양은 목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길 잃은 자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안내자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은혜와 긍휼이란 입는 것이다. 내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입혀 주시는 자의 전적인 은혜이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자도 없거니와 내가 원해서 사는 자도 없다. 다 낳아지고 입혀져서 사는 것이다. 구원은 받는 것이다. 구원은 요청했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포기했기 때문에 거기서 건짐을 받은 것이다. 내가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한 절대로 함정에서 빼 내지 못할 것이다. 물에 빠진 자가 자기가 살겠다고 발버둥을 칠 때 건지려다가 함께 익사하고 말 것이다. 그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힘이 다 빠진 후에 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구원하실 때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자기가 포기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 기간이 광야 사십 년이었다. 거기서 죽을 자들이 다 죽고 가나안 땅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다 끝날 때까지 방황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종교적인 열심을 다 끝낼 때까지 광야의 종교 생활에 머물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좋사오니 집을 짓고 삽시다. 하는 자들로서 거기 좋아서 거기 머무르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듣지 않고 거기서 죽어도 좋다는 자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오직 기적과 이적만 따를 뿐이다. 기적과 이적의 실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스도 자신이 기적과 이적의 실체이시다.
구원은 말씀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에게로 가려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키지 못할 말씀을 주신다. 부자 청년이 말씀을 다 지켰다 하니 주님은 그에게 지키지 못할 말씀을 주신다. 이는 너로서는 말씀을 지키지도 못할 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지켰다고 장담하지만 너는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경고이시다. 자기가 말씀을 지켰다 하는 자들은 자기를 속이는 자들이며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킨 자도 없고 하나님이 흡족해 하실 만큼 온전히 말씀을 지킬 자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율법은 자기가 지켜서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율법은 지키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지키지 못함을 알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시다. 성경은 율법의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지키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씀한다. 이는 사람으로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죄책에 빠진 자들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지 못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자기가 지킬 수 없음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올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는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심한 자책에 빠져 있으며 삶의 의욕도 상실되어 있으며 큰 낙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육으로 계산해보면 참으로 뻔뻔한 것이다. 이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긍휼과 자비를 입기 위해 그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신다.
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이 아니다.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 함이며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라 함이지 하나님이 또 어떤 지켜야 할 법을 주시는 것이 아니시다. 법은 그 자체가 지키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이 없다면 어찌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피가 지켜진다는 말인가? 형상은 그 속에 있는 내용이 지켜지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 속에 내용이 없다면 그 형상은 가치가 전혀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하려 함이 곧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법을 자기가 지킬 수 없음을 아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긍휼이며 은혜이다. 믿음은 지킬 법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법이다. 믿음의 법은 하나님의 법을 완성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 신앙고백이지 나는 이렇지만 저렇게 고백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뻥이다. 죄를 짓고서 죄인이라 하는 자를 하나님이 씻으시고 그 씻으심을 근거로 깨끗하다 하는 것이지 죄인으로서 의인처럼 행세한다고 그가 의인이 아닌 것이다. 죄 씻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씻어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으로서 의를 행하려 함이 자기의 죄인 됨을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다. 자기가 의롭게 되려 함이 불의이며 죄인으로서 의로움을 말하고 있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 이는 죄인으로 자신을 들통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가 죄인인 줄로 아는 자들은 자기가 의를 정하지도 않을 것이며 의롭게 살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오직 긍휼을 입기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참 믿음이며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의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의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