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하는 것은 무슨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열매인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나의 최고의 최대의 보상이다. 숨을 쉬고 있는 것 이상 더 사는 것도 없고 가치 있는 것도 없다. 살아 있는 것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 이외에 것을 기대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망할 것이다. 살아 있는 자라면 살아 있는 자의 조건이 충족이 될 것이며 그 살아 있음을 인하여 먹을 것을 찾을 것이다. 문제는 죽어 있음이 문제이다.
육이 살아 있는 자라면 육신의 양식을 찾을 것이고 영이 살아 있다면 영의 양식을 요구하고 영의 양식을 구할 것이다. 영이 죽은 자들에게 영의 양식을 찾으라 하면 찾겠는가? 절대로 찾지 못하고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다만 살리시고 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살려 놓으신 그 자체가 먹을 것을 구하게 만드신 것이시다. 그러므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증표인 것이다. 살지 않고는 먹을 것을 찾지 않고 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셨고 살리셨다. 생명을 주셨다. 이는 자신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며 그의 피조물 중에 그의 생기를 불어넣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는 그 속에 생명의 프로그램을 넣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생명의 프로그램을 넣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먹고 있고 숨을 쉬는 것은 그 생명의 프로그램에 의해 실행이 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사는 것은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동기는 생명을 주신 이에게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생들이 스스로 사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타락되어 마비된 상태인 것이다. 이는 자기 아버지를 모르는 것이다. 자기의 근본을 무시하는 자는 죽고 살지 못할 것이며 이미 죽은 자이다. 죽었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떠났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난 자를 성경에서는 죽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자가 아무도 없다. 사람은 살아 있음을 인하여 감사해 할 것이다. 그것 이외에 바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살아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바라는 모든 것이 다 탐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명 이외에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상 숭배이다. 우상은 생명의 형체는 가졌으나 생명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 이외에 더 숭배할 것도 없고 소중한 것도 없다. 그렇다면 참 생명이 사는 것 이외에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요구한다는 말인가? 나는 살아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 이외에 바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요구는 살아 있음으로 하는 것이며 산 자는 더욱 생명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육이 죽은 자는 육을 구하지 않을 것이며 영이 죽은 자는 영의 양식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영의 양식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구하는 것은 분명히 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