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탄핵소추로 50일 가깝게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점차 국정의 공백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가 표류하고,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북핵 등 시급한 외교적 현안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통령 권한정지 후에도 국정이 잘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는 모르고 하는 말이다”면서 “매주 목요일 열리는 국정과제회의가 중단된지 한달이 넘는 등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가 올스톱돼 있다”고 밝혔다.
28일 기획예산처 업무보고에서 김병일 장관은 고 건 대통령권한대행에게 당초 4월말까지 확정하기로 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대통령 탄핵상황이 종료되는 6~7월경으로 늦추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향후 5년간 국가발전전략을 구체화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해온 주요 개혁과제의 하나다.
이와 관련 최기문 경찰청장은 “일상은 돌아가지만 국가 차원의 아젠다 사업은 중단되고 있어 걱정이다”면서 “부처 예산이 내부적으로 5월말이면 가닥이 잡혀야 하는데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부 국정과제의 표류보다 북한 미국 등과 대외적 문제의 공백이 더 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장 내달로 예정됐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외교가 연기됐다. 북핵과 시베리아 에너지문제 등 중요한 현안의 해결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북한 용천참사와 관련해서도 남북의 정상간에 대화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대통령이 위로전문을 보내는 게 남북관계를 푸는데 고리역할을 할 뻔했다”고 아쉬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위로전문을 보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 김정일 방중의 내용과 6자회담 등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는데 우리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외관계에서 무게가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내 대북강경파로 꼽히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방한때도 한국의 입장을 설득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 북핵과 관련한 미국의 강경기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체니 부통령에 대해 중국은 장쩌민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국가지도부가 총출동해 대만문제를 설득,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대통령 탄핵심판이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최종 결심을 30일로 미룬 헌재의 결정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대한변협 김갑배 이사는 “헌재가 검찰의 내사자료를 재요청하는 소추위원측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재판을 연기한 것은 그만큼 용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단면”이라며 “절차적 정의도 중요하지만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의 중대성을 헌재가 좌시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