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어느 숭악한 시골 마을에 가난한 집의 1남 5녀중 셋째딸로 태어나 그 존재도 미미했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선팔도에 둘도 없는 괴팍한 할머니와 그 어머니를 빼닮은 아버지, 그리고 625사변 전쟁고아였던 유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일찌감치 인생이란 고통이란 것을 피부로 절감하며 살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맏며느리가 되어 줄줄이 딸만 다섯을 낳은 어머니는 괴팍한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날마다 학대를 당하고 그 와중에 딸들은 죄도 없이 "문둥이 가시내들"로 불리며 사랑을 마음껏 받아도 부족한 어린 시절에 구박뎅이로 자라났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씨받이까지 집으로 들이기도 하고 딴 살림도 차리기도 하며 어머니께 고통을 주다가 두 분 연세 40이 넘어서야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셋째 딸은 총명함을 타고 났는지 일곱살에 뒷집언니 입학식에 줄줄 따라가 어찌 어찌 같이 입학을 하게 되고 공부도 지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등상이며 글짓기상이며 웅변상이며 줄줄이 휩쓸고 성품도 온순해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엄마는 그녀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여자가 집안일은 잘 할 줄 모르고 책만 보고 공부만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만큼 무식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그녀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외투 하나 제대로 입어보지 못했고 중학교에 가서 짜장면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고 극장구경도 처음 해보았고 책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아무리 졸라도 엄마가 책 한권을 사주지 않아 이웃집 화장실에 있는 뒷처리용 신문지까지 샅샅이 훑어 읽고 옆집 오빠가 읽던 "선데이 서울"잡지까지 열심히 읽었습니다. 귀하게 얻은 책 한권을 군침 흘려가며 열심히 얼굴을 박고 보던 그녀의 모습도 엄마에 게는 밉상이었나 봅니다. 엄마는 언제나 그녀에게 냉정했습니다.
밤이 되면 술에 절어 주막집에 널부러져 있는 아버지를 울며 불며 집에 까지 끌고 오면 엄마 아버지의 때로 칼부림까지 동원된 일차대전이 일어나고 간신히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더불어 6남매가 잠이 들만 하면 새벽 2시쯤 담뱃대를 털며 잠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매캐한 담배연기를 방안 가득히 뿜어대며 있는 소리를 다 질러대며 울고 탄식하고 엄마욕을 하면 엄마가 쫓아들어와 싸우는 이차대전이 일어납니다. 오죽하면 이웃집 할머니가 하루라도 너희집이 조용하면 기분이 이상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소원은 오직 하나 싸움없이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럭저럭 중학생,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녀는 사랑이라곤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수도 없는 그런 집에서 탈출하고 또 엄마같이는 절대 살기 싫어서 공부에 처절한 승부를 걸었습니다.
유복한 아이들처럼 부모가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책을 마음껏 사주는 것도 아니고 오직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을 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객지에서의 대학생활은 낭만보다는 더욱 외롭고 고단한 삶을 그녀에게 안겼습니다.
차를 2시간씩 타고 다니며 과외도 하고 앞치마 두르고 갈비집에서 일하기도 하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설문지조사도 하고 글자 그대로 몸 파는 것만 빼고는 모든 일을 다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녀가 가장 서러웠던 기억은 입주과외를 할 때 한밤중에 그 집 아저씨가 이상한 눈빛으로 다가오기에 맨발로 뛰쳐나가 한 참을 달리다 어느 빌라 꼭대기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갔답니다. 꼭대기층 어느집 앞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새면서 그 집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 다정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럭저럭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곳에 취직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외롭고 상처받은 어린애 하나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휴가중에 집에 내려갔는데 엄마가 43살에 낳은 막내 남동생이 아주 착하고 의젓하게 자라 중3학년이 되어 있었는데
밤에 나란히 누워 자기 꿈은 공부 열심히 해서 연대 의대에 들어가 꼭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그날 저녁 새벽 3시까지 정석 문제집을 풀고 그 다음 날 학원에서 누나에게 전화 한통화를 했습니다. "누나 왔으니까 독서실에 가지 않고 빨리 갈게." 이게 마지막 들은 동생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날 동생은 귀가길에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달려 내려오는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 2부는 조금 있다 다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