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자발적으로 학원에 가게 하는 방법>
아이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실패를 경험해 나가는 중에 배워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무심코 '구르기 전의 막대'가 되어 아이의 실패를 앞서서 막아 주기 때문에 아이는 배울 기회를 빼앗겨 버린다.
'구르기 전의 막대'가 부모의 애정임에는 틀림없지만, 도가 지나치면 응석받이로 키우게 된다. 비에 젖으면 감기에 걸린다고 걱정할지 몰라도, 감기는 평생 몇 번은 걸리는 것이니까, 한 번쯤 일부러 감기에 걸리게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확실하게 배운다.
부모가 아이 자신을 위해 잘 되라고 시키는 것은 대개 아이를 응석받이로 만들기 쉽다.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이 자신이 알고 있다.
부모가 잘 되라고 생각해서 하게 한 것은 정말로 좋은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원에 간다. 가지않는다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아이가 고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고 부모가 생각하여 선수를 쳐도 그것은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학원의 필요성을 느끼면 스스로 가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이게 의사표시를 할 기회를 주기 위해 가끔 제안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학원에 좀 다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라고 물으면 된다. 아이도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 "네, 그래야겠어요. 학원비 좀 대주실래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모는 어디까지나 제안만 할 것이고, 학원에 가는 것은 아이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 된다.
"아이가 학원에 다니고 싶어했는데, 나는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기보다 맘껏 뛰놀게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게 했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
일견 훌륭한 엄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경우 역시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가게 하는 엄마나 다를 바 없다. 아이의 자유 의사, 결단을 부모가 간섭하고 짓누르고 있다는 데는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이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부모는 자신이 바람이 아니라 아이의 의사를 끌어내도록 동기만 부여해 주면 되는 것이다.
출처 : 아들러 박사의 10대를 위한 자녀교육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해지는 20가지 방법 > / 혜문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