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씁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중 하나는 졸업생들을 거의 만나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졸업하자마자 대부분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이동하여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지방 자치단체 의원들 가운데는 대학 나온 사람이 별로 없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자치단체 의원 가운데 대학 나온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웃지 못할 비극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대학 나온 ‘인재’들이 대부분 수도권으로 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다. 천도니 수도 이전이니 행정수도 이전이니 말들이 많지만, 분명히 법률상으로는 ‘행정수도 건설’이다. 이를 두고 일부러 다른 말로 부르는 것은 사실을 과장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주요 행정기관과 국회 정도가 옮겨가게 될 것이 전망되는데도 천도 운운 하면서 반대 여론을 부추기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행정수도 건설이 이 시점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천도냐 수도이전이냐 행정수도이전이냐 말들이 많지만, 법률상으로는 ‘행정수도건설’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반대하는 서울 사람들이먼저 충청권에 내려와 땅값, 집값을 다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의 반대 이유에는 여러 논리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인구 분산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수도권 인구가 2천만에 달하는데 겨우 50만 인구의 행정수도를 만들어 무슨 인구분산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대로 간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 통일이 이른 시일 안에 온다면 수도권 인구는 3천만을 넘어 한반도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든다는 것은 ‘대전-대구’ ‘대전-광주’ 축으로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부 원로들께서는 수도 이전 대신 대학을 몇 개 옮기고 호남고속전철을 확장하자는 주장을 하시는데, 지금 호남고속전철을 한번 타보시기 바란다.
호남 쪽은 인구가 적어 반쪽 고속전철조차도 텅텅 비어 다니고 있다. 주요 대학을 옮긴다고 인구가 옮겨갈까. 이는 주장하시는 분들이 그 비현실성을 더 잘 아실 것이다. 충청권에는 이미 대학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 정원 미달을 걱정하는 판국이다.
또 통일 이후 새 수도를 건설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행정수도 건설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통일이 오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전망이다.
또 통일이 된다고 해도 당장 새 수도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수십년은 북녘에 도로·전선·전화·주택·공장 등 인프라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바이다. 북한과 동독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통일이 된대서 바로 수도를 이전하여 건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통일이 된대도 인구의 3분의 2는 여전히 남녘땅에 살게 된다. 그렇다면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쪽에 일정 기간 행정수도를 두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앞으로의 세상은 대륙보다는 바다로 뻗어가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중국의 동해안 개발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토개발원에서 제시한 국토의 ‘L’자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중심이 되는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일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다른 의견을 가질 수는 있다. 특히 서울시 관계자나 관공서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이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렇지도 않은 양식있는 분들이 국민을 설득하는 데 앞장서지 않고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으로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또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반대하는 서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충청권에 내려와 땅값, 집값을 다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충청도 사람들은 아파트값, 전세금이 올라가서 울상을 지으면서도 그나마 없는 일자리가 조금이나마 더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목을 매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편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서울 사람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재작년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충청도 전역에 내려와 집값, 땅값을 다 올려놓은 이중성에 분노한다. 그들은 한편에서는 적절한 규모의 행정기관만 이전해서 올려놓은 충청도의 땅값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의 집값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교활한 서울 사람들이 참으로 무섭다.
박찬승/충남대 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