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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태어난 여자의 소임은?


BY 진달래 2004-09-20

어려서부터 족보니, 제사니 하는 것에 대해 유감이 많았다.

동갑인 사촌은 나보다 공부도 못하는 것이 툭하면 날더러 그랬다.

"기집애가..., 아무리 잘 나도 족보에도 못 오를 것이..., 잘 난 체 해 봐라, 제사지낼 때 너 같은 것은 절도 못하지..."

그래서 명절이나 제사가 되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심통이 났다.

먹을 갈아 지방을 쓰는 아버지 옆에 앉아 옆구리를 쿡 찔러 물었다.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한문도 잘 알고 유식했어요?"

"아니, 언문은 읽으셨지만 한문은 잘 모르셨지..."

"히..., 죽어서 귀신되면 유식해지나? 무식한 귀신은 죽어도 무식할 껄? 그렇게 지방을 한자로 쓰면 할머니 귀신이 몰라서 못 찾아 올 걸요..."

작은 아버지가 두루막을 떨쳐입고"유세차!..."하고 목청을 늘여 축문을 읽기 시작하면 작은 아버지 두루막을 잡아 땅겨 방해를 했다.

"쉬운 우리 말로 하셔야지요.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무식해서 한문 같은 것은 모르셨다는데 그렇게 유식하게 축문을 읽으면  몰라서 못 찾아 오잖아요."

엄숙해야 된다고, 조상를 잘 섬겨야 자손이 축복을 받아서 잘 산다고 하면 히쭉 웃으며 딴지를 걸었다.

"제사 같은 것 안 지내는 서양 사람이 왜 우리보다 더 잘 살지요?"

 

아들 딸 차별하는 것이 싫어서 하나밖에 없는 울 남동생을 못 살게 굴었다.

동생이 미웠던 것이 아니고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이 싫어서...

어찌나 동생을 못 살게 굴었던지 울 아버지 사춘기를 맞은 내게 울면서 사과했다.

'나는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그렇다고 주장하니 나도 모르게 그랬는 모양이다. 앞으로 그런 일 없을테니 제발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착하고 이쁘기만 한 동생인데..., 아무튼 그때는 그리 심통이 났다.

 

결혼 전에는 그래도 나았다.

결혼하고 나니 진정한 '남존여비' 를 체험할 기회가 비로소 주어진 느낌이었다.

여전히 철딱서니 없던 나는 멋도 모르고 맏며느리로 들어갔는데...

울 시어머니 아들 셋 낳고 네번째 딸 낳고 섭섭했었더란다.

그렇게 낳은 아들 넷은 그야말로 손 끝도 까딱 않는데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시누, 오빠들, 남동생, 심부름에 학교 숙제할 시간이 없어 숙제를 못해 갔단다.

울 남편, 이 남자 고등고육을 받은 남자인가 의심이 갈 만큼 완고하고 고루하였다.

멍청한 나는 결혼 전에  그런 것도 전혀 모르고 울 남편이 날 무지무지 사랑하는 줄만 알았는데...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입덫이 심했던 나, 한 달에 몸무게가 9킬로나 빠졌다.

그런 내게 남편은 방안에 누워 밥을 해오라고 하였다.

날더러 자기 동생들 학비 도와주게 맞벌이 하자고 하면서...

뭐라더라? 울 친정부모 도와주자고 하면 출가외인이라?

 

울 아들 6학년 때 담임선생이 숙제를 내주었단다.

족보에 대해 알아오라고, 본도 알아오고, 시조, 중시조도 알아오고...

뭐 뿌리교육을 한대나 어쩐대나...

내 대답 왈...

"아들아,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려라. 우리집은 상놈이라 그런 것도 없고 모른다고..."

순진한 울 아들, 그넘은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웠으니께,

"알았어. 엄마."

아들 모르게 뒷구멍에서 담임선생 욕을 했다.

뿌리교육을 시키려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해 알아 오라고 해야지 누구 조상인지도 모를 시조, 중시조를 왜 알아오래..

무식한 선생같으니라고...

우리나라 사람들 족보의 70%가 가짜라던데... 옛날에는 70%는 족보도 없는 상민이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너도 나도 양반 가문에 몇 푼씩 주고 족보에 끼어들어 양반 행세을 하게 되었다덩마는...

 

드디어 울 시부모 나이가 들어 맏며늘 내게 제사를 맡으라고 하였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여...

냉큼 그러마고 하였다.

그리고 어동육서, 조율이시,...따지는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저한테 맡겼으면 제가 알아서 하게 모두 맡겨 주세요.

제가 하는 것이 맘에 안들면 어머니 아버지가 맡아서 하시구요."

그리고 딱 한번 제사 지냈다.

내 맘대로...

그 제사 음식 대부분 사다 차렸고, 설겆이는 울 남편이랑 시동생들 시켜 먹었다.

울 동서들이랑 나랑은 앉아서  우아하게 차 마시고...

 

그리고 다음 해 우리는 이민을 왔다.

울 시댁 제사는 우리가 모시기로 하고...

제사?

난 그런 것 지낼 생각, 눈꼽 만큼도 없다.

울 남편, 조금 불만이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제삿날이 언제인지 아는 것도 아니다.

웃긴다, 자기 조상 제사가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날더러 그런 것도 안 챙긴다고 불평하다니...

그게 누구 조상인가 말이다.

하긴 울 남편, 나 같은 아내 만나 많이 개화하였다.

임자 만난거지...

울 시아버지가 우리 보고 족보도 맡아 보관하라고 하였을 때, 울 남편 대답이 이랬다.

"우리 보고 맡으라고 하면 그것 없어지는 거지, 뭐..."

 

열심히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한 귀절이 생각난다.

'...이 땅에 태어났다. 저마다 타고 난 소질을 개발하고, 자기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아, 그렇다.

난 남존여비 사상이 활개치던 대한민국에 태어났다.

맏며느리인 내 처지를  발판으로 울 시집의 제사를 없애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여 대대로 며느리들의 두통거리를 미리 예방하였다.

이 땅에 태어난 여자의 소임을 다 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