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곳에 오면 인생 선배님들의 충고와 질책을 들을 수 있다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보시기에 제가 어리석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답답한 마음도 드실 줄 압니다만
읽어주시고 많은 조언과 충고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 해 23살이 되는 직장인입니다.
남친은 27살인데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그런지
싸울 만한 일이 있어도 서로가 잘 넘기는 편이고
연애한지 1년 약간 안 되는데 지금껏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남친과 저는 동거를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했던 동거가 아니었고
남친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남친도 마침 집에서 독립을 할 시기였는데 제가 혼자 살고 있으니
서로 살림을 합치게 된 경우니까
따져보면 서로가 꼭 결혼을 전제로 시작한 동거는 아닌셈입니다.
남친 성격은 이해심 많고 호탕한 성격입니다.
의외로 제가 잘 안 챙겨주면 삐치고 하는게 소심한 면도 있지만
'내 앞에서는 편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남친이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싸우다가 크게 열 받으면 저한테 욕을 한다는 거지요.
동거 시작한지 이제 3개월 넘어가는데 욕을 들은게 두 번째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크게 싸웠을 때 욕을 들었는데
그 때는 제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 비슷하게 꺼냈어서
남친이 잠깐 이성을 잃은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씨발년..." 뭐 그런 욕이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물론 욕을 들은 당시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비참한 생각에 밤 새 울기도 했지만
남친이 당시 상황을 너무 절망적이게 저랑 헤어져야 한다고 받아들여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 있어도 욕하지 말라고 굳게 약속을 했고요.
또 한 번 제가 욕을 들은건 어제입니다.
어제는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별 일이 아니었는
또 싸우다가 "이 씨발년아" 그럽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욕하는 것만 가지고 뭐라고 하지말고
그런 욕이 나오게 행동 한 걸 생각하라네요.
또 "니가 생각이 있는 년이면..." 어쩌구 그러고요.
솔직한 말로 제가 바람을 피웠습니까, 생각 없는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까?
욕이든 폭력이든 어느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욕 들을 짓 하지 않았습니다.
방금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한테 어떻게 이 년, 저 년 하고
씨발년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근데 욕을 듣는 순간 화가 나는게 아니라
'그래, 내가 니 본성을 봤으니까 됐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거면 됐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 웃음이 나더라고요.
처음 욕을 들었을때는 '어떻게 나한테 저런 욕을...'
하는 생각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면
두번째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그만 헤어져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거에요.
더 이상 상종 못 할 것 같아서 싸우다말고 다른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앉아있는데
문 밖에서 혼자 분에 못이겨 "참 내" "허 참" "무슨무슨 년"
그러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싸우고 각자 방에서 있는데 몇 시간 후에 술을 마시고 와서
저하고 얘기 좀 하자더군요.
전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데 혼자 주절주절 이야긴가를 하면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그럽니다.
남친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네 가족들 아무도 얘기 해 주지 않는 얘기를 저한테 해 준다면서
자기 어머니가 사실 자기 때문에 돌아가신 거라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사고를 쳐서 어머니가 충격 때문에 돌아거신거라고...
그래서 가족들 사이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고
울면서 그럽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어서 저한테 기대고 싶었다고 자기는 너무 힘들다나요?
솔직히, 이거 정말로 가슴 아픈 얘기 맞습니다.
아마도 평소 같았으면 몇 백번도 더 들어주고 같이 마음 아파했을 이야기지만
어제는 진짜로 남친을 죽이고 싶고 스스로도 비참한 마음에
이런 이야기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습니다.
처음 욕을하고 그런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때는 '사람이 잠깐 미치면 저럴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또 워낙에 간곡하게 사과를 하는 남친 앞에서
오히려 제 행동을 돌아보기도 했었습니다.
헌데 이런 버릇은 쉽게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봅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쳐지겠지. 고칠 수 있을거야' 하기에는
제가 받은 상처도 너무 크고말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동거였는데 이제 그만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때도 있었고
요리며 청소며 빨래 같은 일들이 이렇게 기쁘다고 여겨진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결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렇지만... 정말로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끝이 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의 결정이 잘 한 결정인지 판단이 서질 않아 인생 선배님들께 조언을 구합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하는 분들일지 모르는
아줌마분들께 이렇게 익명으로나마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고
조언을 구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