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이 있었다.
만 하루를 기약하고..
너무도 사랑하는
한 여자와의 하룻밤을 위해서..
악마는 사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
그 사랑이 끝나는 시간에
창밖의 빈 고목나무 아래에서
자네를 기다리겠네.
시간, 엄수해야 하네.
만약 약속을 어길 시엔
영혼을 영영 되돌려받을 수 없네.
그날 밤,
사내는
그토록 보고파하고 잊지 못하던 그녀와
꿈에도 그리던 뜨거운 사랑을
격렬하게 나누었고
그 가슴 벅차던
아쉬운 열정의 순간도 어느덧 지나..
드디어
이별의 시간이 저멀리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속삭였다.

내 눈을 기억해요.
내 눈을 기억하면
우리가 지금 헤어져 다신 못 만나게 된다 해도
눈을 감으면
내 눈이 그대 눈을 향해
언제까지라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을 거예요.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가지 않으면 안되나요.
조금만 조금만 더 있어줘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안 되나요.
사내는
여자를 꼬옥 안으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창밖에는 어느새
빈 고목나무 아래에서
언제 왔는지 악마가 기다리고 서있었다.
악마는 초조한 표정으로
자꾸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사내에게는
이제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여자가 애원했다.
한 시간만 더 함께 있어줘요.
안 그러면
날 사랑하지 않는 거라 여길 수 밖에 없잖아요.
날 사랑하나요.
그럼, 이 한 시간도 내게 할애할 수 없는건가요.
정말 너무해요.
이기적인 사람, 가세요.
그리고
다신 이 생에서 날 볼 생각일랑은 마세요.
아니,
당신을 영원히 보기 위해서야.
지금 좀 힘들어도
내 영혼을 꼭 되찾아와 당신을
다시 보러 반드시 오리다.

여자는
사내의 품 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다.
한없이 무너져내리며 우는 그녀...
그대...
영혼을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나와 단 한시간만이라도 같이 있어줄 수 없나요?
나..
당신에게 있어
결국 그 정도밖에 되지 못했었나요.
가세요.
당신의 영혼은
나와의 사랑보다도 더 소중하니까요.
가셔서
영혼 되찾아서
영원히 행복하고 오래오래 잘 사셔야 해요.
부디..
한없이
비처럼 주룩주룩 흐르는 여자의 눈물을 뒤로 하고
사내는
정확한 시간에 빈 고목나무 밑으로 무사히 나갔다.
예정대로
악마는 사내의 영혼을 되돌려 주었고
사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정원 밖으로 걸어나가는데...
갑자기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놀라 뒤돌아보니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가
악마에게 자신의 온영혼을 바치고 있었다.
붉디붉은 선혈을 뚝뚝 흘리며..
가느다란 손은
사내를 향해 힘없이 뻗쳐 있었다.
허둥지둥 달려간 사내..
악마의 몸을 뒤흔들며
어떻게 된 거냐 묻는다.
쓴웃음 지으며 흘러나오는 악마의 대답..

너희 둘은
동시에 내게 만 하루의 영혼을 파는 조건으로
서로의 사랑을 간절히 구했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영원한 너희들의 영혼일 뿐,
단 하루의 영혼만으로는 이 조건을
도저히 수락할 수가 없었지.
여자에게 조건을 걸었어.
남자가 너와의 연장된 한 시간을 택할 경우,
여자의 영혼을 절대 건드리지 않겠고.
남자가 너의 애원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영혼을 되찾는 일을 택한다면
여자의 영혼은
나에게서 영영 되돌려받을 수 없는 조건으로
그래도
단 하루의 사랑이라도 나누겠느냐고.
그녀..
그렇게라도 하고서라도
단 하루라도 자네를 사랑하고 싶다고.
난
자네가 시간을 연장하면 자네 영혼을...
자네가 시간을 엄수하면 여자 영혼을
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놓고
이 거래를 시작했을 뿐이네.
자네들을
철저히 속인거지.
이중장사를 했을 뿐이네.
악마들은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안하는 철칙이 있거든?
결국,
자네들의 사랑이란 게,
자네는 만 하루동안의 영혼의 값어치와..
여자는 영원한 생명.. 영혼의 값어치와..
교환한 셈이었어.
여자한테만
좀 안?映만?.
자네는
이렇게 멀쩡히 되찾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제 영영
되돌려받을 길이 없네.
미련한.. 바보같은 여자같으니..

그제서야
사내는
악마의 멱살을 잡고
면상을 내리치고 울며불며 소리소릴 질러대고
이미 영혼이 떠난
싸늘한 여자의 육신을 안고
아무리 절규하고 눈물을 흘려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섬뜩한 악마의 웃음과
피흘리며 죽어간 그녀의 차가운 살 내음 뿐...
정원 밖으로
걸어나가는 악마의 오싹한 웃음소리와
그녀의 시신을 꼭 끌어안은 한 남자의
사무친 회한의 눈물..
눈물..
난,
너를
너만큼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영혼이 허락하는 만큼,
고만큼만 널 사랑했었나봐.
너는
나를
그 귀한 영혼과 바꿀 만큼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깊이 사랑했니?
그랬었니?
이 바보야.
왜 그랬어?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너..
쓸데없는 짓 한 거, 알아?
바보야.
목숨은.. 영혼은..
그런 시시한 일에 바치라고 있는게 아니야.
왜 나같은 별볼일없는 놈을
하필 나같은 놈을
사랑했니?
바...보..
넌..
진짜..
바보구나.
ㅡ 남자가 몰랐던 것은 두가지였습니다.
'사랑' 은 시간을 미뤘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면 바로 지금,
그녀와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것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위해서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내는 아마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ㅡ
< 음악 / 사랑의 종말을 위한 협주곡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