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다고 생각되는데도 여전히 안되는 것이 있다.
다른 것들이야 나만 알고 넘어가거나 해서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인관계는 상대에게 나를 송두리째 드러내 보이는 것이기에 자존심이 상할 때도 많다.
그 대인관계라는 것이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고개 끄덕여 주는 선에서
균형을 잡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 실상은 그리되지 않는다.
꼭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고 만다.
지난 4월까지 학원강사를 했다.
원장, 자기가 불리한 것은 모두 나를 시켰다.
예를 들어 학원 앞, 길 건너에서 오픈 행사를 한다.
커다란 음악, 도우미의 현란한 몸짓이 종일 계속되면 나를 시켜 경찰에 신고 하란다.
나,< 00학원인데요. 길건너에서 너무 시끄럽게 해서 수업을 할 수 없네요.>
듣고 있던 원장, <왜 학원이름은 말하냐>고 엄청 찝찝해 한다.
학원이름을 밝힌 나도 참 문제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녹음기 틀듯 반복하는 원장의
질책에 <그럼 자기가 하지, 왜 날 시켜서> 속으로만 반발했다.
정말 질리게 만들었다.
학부모 상담에서도 괜찮은 아이 부모에게 전화할 때는 자신이 한다.
좋은 말만 할 수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 그러니까 안좋은 이야기를 해야하는
상황은 나를 시켰다. 나 역시 실장이란 직책이 있었으니 그리했다.
남들 앞에서 나를 엄청 대우 해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나 보다 어린 원장.
그리고 5월이 되면서 그룹지도를 하게 됐다. 학원은 그만두고.
나름대로 금방 자리가 잡혀 안정을 찾고 있는데,
그 학원 원장 일주일이면 2~3차례 전화를 한다.
자기가 아쉬운 것들
(그녀는 지방대 미대를 나왔다. 스스로 머리가 꽝이라는 컴플렉스를 갖고 있어서 상담할 때도 내 학력과 경력을 팔았었다. 그래서 학원에 필요한 전공쪽은 지금도 나에게 묻는다.)
을 묻고 나면
<실장님, 참 대단해요.>
<왜요?>
<어쩌면 그렇게 전화 한 번, 놀러 한 번을 안 와요?>
사실 나 그 원장 목소리도 듣기 싫다. 그런데 전화하고 싶은가. 놀러가고 싶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발신자 뜨는 전화를 놨다. 그녀 전화를 피하기 위해.
그렇게 한 2주 전화를 피하고 셔틀기사를 만났다. 기사도 여자다.
학원 가맹점을 바꾸려 한단다. 그 가맹점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원장은 무진장 궁금해 한다고 했다.
전화를 안 받으니 어제도 오늘도 전화가 계속온다.
받아서 적당히 말해주고 끝내면 될 것을 그걸 못해서
오장육부에 든 것까지 모두 끄집어내 말해 준다. 바보다.
온갖 감정 다 섞어서 올인을 한다.
상대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어도, 지극히 사무적인 선에서 대우했을 뿐이라는 걸
알면서 나는 그렇게 하질 못한다.
지나치게 성의를 다 해 말을 하다보니(말이 좋아 성의지 실상은 주책없는 짓)
때론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섭섭한 마음이
들도록 하기도 하는 나임을 알기에 언제부턴가 그런 자리라고 생각되면
피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대강 좋게좋게 하고 말아버릴 자신이 없어서 아예 전화받는 걸 포기한다.
전화벨이 울리면 학원, 또는 원장 휴대전화인가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참으로 한심한 밴댕이 소갈딱지 사십대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