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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주미대사 임명관련 관전포인트


BY 에오윈 2004-12-17

홍석현 <중앙일보>회장이 주미대사로 임명되었다. ‘조중동’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보여 왔던 노무현 정부였기에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현상들이 어떻게 전개될 지가 필자에게는 더욱 큰 관심사다.

‘조중동’의 한 축인 <중앙일보> 사주를 참여정부의 한 축으로, 그것도 주미대사라는 녹녹치 않은 자리에 임명한 사실만으로 참여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 사주를 주미대사로 활용하기 위해 언론개혁법안이 후퇴하거나 철회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흔들릴 만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니면 ‘조중동’과의 전쟁에서 한발 물러서 화해의 손을 잡기위한 시발점이라는 해석도 제기될 수 있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해보아도 역시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번 인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적 접근’, ‘다양한 카드를 노린 고도의 전략’, ‘한미 관계의 유연성 강화’ 등의 해석들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어떤 배경이 작용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심하게 퇴색될 가능성이 아직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견은 분분할 수는 있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관심은 <중앙일보> 사주의 주미대사 임명은 단순히 대사임명의 차원을  떠나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참여정부에 대립하고 있는 세력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조선, 동아를 비롯해 대다수 보수를 표방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 언론계는 물론이고 한나라당과 재벌의 입장에서 보면 뒷통수를 묵직하게 가격당한 느낌일 것이다.

이는 노대통령이 <중앙일보> 사주를 주미대사로 임명한 것보다 <중앙일보> 사주가 주미대사 직을 받아들인 것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홍석현 주미대사 임명의 관전 포인트

홍석현 회장이 청와대에 국빈급 대접을 받으면서 대통령을 인터뷰한 것까지는 서로 약간 말이 통하는 입장이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홍회장이 주미대사직을 승낙한 것은 마음 속 깊이 참여정부를 부정해왔던 대한민국의 주류세력들 입장에서는 주류를 대표할만한 <중앙일보> 사주가 참여정부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클 것이다.

홍회장이 누군가.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의 처남이며 정통 엘리트코스를 거친 전문경영인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주류세력을 대표할만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떤 정치적 거래나 야합이 없는 상황에서 참여정부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득권 세력들 편에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총리에 지명됐다면 혹시라도 권력욕을 내세워 비난할 수도 있지만 주미대사는 권력욕으로 몰아세우기에는 애매한 직책이다. 누가 보아도 세계 초일류 재벌의 처남이며 거대 언론사의 사주가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주미대사에 욕심을 낸다고 몰아세우기가 곤란한 일이다.

그렇게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전선이 한쪽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당혹감에 주춤할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언론계와 정치권에서 일어날 것이다. <중앙일보> 사주의 주미대사 임명은 ‘조중동’이라 불리우는 거대언론사의 전열에서 <중앙>이 완전히 이탈할 가능이 높다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조중동’의 전열 이탈은 <중앙일보>가 친여 신문으로 돌아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실을 왜곡하고 다중적인 잣대로 악의적으로 정부를 비난해 국민 여론을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할 것이라는 의미임을 밝힌다.


물론 홍회장이 주미대사로 발령 난다고 해서 〈중앙일보〉가 갑자기 ‘상식’과 ‘원칙’에 충실하게 국민여론을 호도하지 않는 정론지로 일시에 탈바꿈할 것으로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

 

칼럼과 사설을 쓰는 논설위원이나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는 데스크들의 의식구조가 쉽게 달라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주에 대한 ‘눈치보기’가 여전할 수밖에 없는 언론사 구조 상 <중앙일보>가 적어도 대미 관계나 북핵 문제에 대해서 예전처럼 정부와 노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자신들의 사주를 궁지에 몰아 부칠 만큼 간을 배 밖으로 내놓는 데스크가 없기에 최소한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오히려 주미대사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미화를 해야 하는지 객관적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맬 가능성이 높다. 정말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다 보면 미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조선>, <동아>와 주미대사를 사주로 둔 <중앙>은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 통속이었던 ‘조중동’ 구조가 ‘조동’과 ‘중앙’이라는 구조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대미관계, 북핵관계에서의 논조 대립은 결국 감정이 쌓이면서 다른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치열한 논조 공방이 이루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아마 가십성 기사로 <조선>, <동아>가 주미대사를 공격하는 순간부터 불이 점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같은 웃지못할 일이 발생하게 되면 한나라당 입장에서 난감한 일이다. ‘조중동’과 힘을 합쳐서 별짓을 다하고 있지만 뜻을 이루기보다는 ‘덜컥 수’의 덫에 허우적거리기가 일쑤인 한나라당이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인데 <조선>과 거의 무게가 같은 아군이 졸지에 적군으로 돌아서거나 중립군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얼마나 환장할만한 일이겠는가.

1, 2년 뒤 설사 홍회장이 주미대사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조중동’간의 대립구조가 쉽게 해소되기도 어렵다. <중앙일보>가 1, 2년 동안 새로운 관점에서 펼쳤던 논조와 편집 방향을 하루아침에 다시 뒤바꾸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을 왜곡해 거두절미 식으로 편파보도를 하고 의도적으로 침소봉대를 하는 ‘찌라시’ 짓을 하지 않는 것은 쉽다. 그것 가지고 누가 욕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팩트를 중심으로 정론을 펼치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과거에 받던 비난보다 두 세배 정도 강도가 높은 비난을 감수할 정도의 각오를 다지지 않고서는 결행하기가 어렵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중앙일보>가 참여정부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는 친여신문이 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주의 주미대사 임명을 계기로 ‘상식’과 ‘원칙’을 앞세워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론지로 변신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노대통령과 홍회장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이다.

말은 통할 수는 있어도 과연 뜻도 통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일 터인데 홍회장이 주미대사로 활동하는 기간이나 그 이후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동지가 될지 적이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필자는 기자 시절 이헌재 부총리를 1년 여 동안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7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했던 경제기획원 역사상 3대 천재로 인정받았던 인물이 이헌재 부총리이다.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야인 생활을 했던 그이지만 금융감독원장으로 복귀에 성공한 이후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부총리 자리를 승낙한 이헌재 부총리는 노대통령에 대해 언젠가 “학습 소화능력이 대단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며 시장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는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정강정책을 보니 그에 비하면 노대통령은 시장주의자이고 불간섭주의자이며 우파”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대통령이 무능하고 분열적이며 반시장주의자라면 이헌재 부총리는 어떤 형태로든 그와 관련된 멘트를 했을 것이고 스스로 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럴만한 자존심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는 자신이 일할 만한 파트너로 노대통령을 인정하고 있다.

똑똑한 것으로 말하면 두 번째도 서러워할만한 도올 김용옥도 노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가 대선 과정에서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노대통령을 인정하고 오히려 팬이 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홍회장도 노대통령과 같이 일을 하면서 멀어지거나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기보다는 오히려 가까워지고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점이 <중앙일보>의 논조나 편집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녹아들 것이고 <조선>, <동아>와 <중앙>의 대립각은 그만큼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이 홍회장의 주미대사 임명을 계기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어떤 형태로든 후원자 역할을 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일도 관심사의 하나다. 적어도 참여정부와 삼성그룹간의 정경유착이 우려될만한 가능성은 크지 않기에 그렇다. 또한 전경련을 비롯해 재계에서도 변화된 모습이 나올 것인지 두고 보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높은 흥행이 기대되는 것은 <조선>, <동아>와 <중앙>의 대립여부와 그로 인한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대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