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4일 오후 1시.

경기도 연천·포천 선거구에 출마한 각 당의 후보자와 운동원들은 연천군 전곡읍 전곡2리 택시정류장 앞에서 마지막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이철우 열린우리당 후보가 유세차량에 올라가 연설을 시작했다. 약 5분이 소요된 이날 유세 내용에는 16대 국회 대통령 탄핵에 대한 비판, 연천지역 발전방안 제시, 유권자와 청년층의 투표참여 호소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철우 후보가 선거운동 마지막 날 선거구 곳곳에서 연설할 때마다 동원했던 레퍼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연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의원들이 임기가 4년이나 남은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옳지 않다. 이제 유권자가 그런 행위를 저지른 낡은 정치인들을 심판해야 한다. 연천은 군사지역으로 50년 동안 발이 묶여 있으면서 개발에서 소외됐고 낙후됐다. 이제 한탄강과 임진강이 흐르고 있고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의 길목인 이 지역은 관광지역으로 개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원선이 연결돼야 하고 군사규제가 완화돼야 한다. 지금까지 연천지역은 개발에서 소외된 변경이었지만 통일시대의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그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내일 투표에 꼭 참여해주기 바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청년들이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조중동이 황금연휴를 강조하며 20∼30대 젊은이들에게 투표하지 말고 놀러가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한다."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 14일 오후 1시. 과연 이철우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가 막바지 선거
운동에서 한 발언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진 왼쪽부터 한나라당 고조흥 후보와 이철우
열린우리당 후보.

그러나 1주일 후 고조흥 한나라당 후보측의 박영철 연천군연락사무소장이 이철우 당선자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1월 14일 전곡읍 연설에서 이 당선자가 "한나라당 고조흥 후보가 20∼30대는 투표하지 말고 놀러가도 된다"는 내용으로 발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는 허위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고발인측의 주장이었다.

연천경찰서가 이 선거법 고발 사건의 초동 조사를 맡았다. 피의자 신분이 된 이철우 당선자와 고발인 박영철 소장을 비롯해 고발인측 참고인(강동순, 라윤한), 연천군 선관위 지도계장(송준호), 선관위 산하기구인 선거부정감시단의 단장(권영하), 지역2반 오전반 반장(전홍진)과 반원(이명순, 이봉민) 등 9명이 연천경찰서에 출두해 조사에 응했다. 출두 요청을 받은 선거부정감시단 본부반 반원(백승광)은 "선거부정감시단 단원으로 활동하기 전 판사 앞에서 (활동 내용에 대한) 비밀을 엄수하기로 선서했다"는 이유를 대며 경찰에 나오지 않았다. 초동 조사를 모두 끝낸 연천경찰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의정부지청에 올렸다.

"열린우리당 이철우 후보가 한나라당 고조흥 후보를 비방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고 인정할만한 증거자료가 불충분하여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을 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의정부지청은 초동 조사를 담당한 현지 경찰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소를 강행했다(한편 검찰조사 과정에서부터 그동안 나서지 않았던 고조흥 후보도 직접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조사를 담당한 옥선기 검사는 1심 재판에서 "이철우 후보는 고조흥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전곡읍 유세에서 '한나라당 고 후보가 20∼30대는 투표하지 말고 놀러가라고 했다'고 연설했다"면서 5백만원 벌금형을 구형했다.

그렇다면 옥선기 검사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그가 의정부지법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주장한 내용을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직위 생략).

△박영철, 강동순, 라윤한, 전홍진이 경찰, 검찰, 법원에서 비방 발언을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강동순과 라윤한은 비방 발언을 듣고 선거감시단원인 전홍진에게 항의했다.

△강동순과 라윤한은 라윤한의 휴대폰으로 이런 사실을 고조흥에게 보고했다(휴대폰 조회 결과 첨부).

△고조흥은 라윤한 등으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고 오후 4시경 포천 송우리 유세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며 항의했다.

△당사자인 고조흥과 그의 선거운동원인 박영철, 강동순, 라윤한 등의 진술이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받는다 하더라도 전홍진은 선거부정감시단원으로서 객관적인 제3자이다.

물론 검찰의 기소로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신분이 바뀐 이철우 의원은 검찰 조사와 1심 재판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이 의원은 연설 중에 "조중동이 20∼30대는 투표하지 말고 놀러가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나라당 고조흥 후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연설한 적은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철우 의원의 유죄를 인정하며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2백5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확인 결과 1심 판결문 내용은 옥선기 검사가 제출한 의견서에 실린 공소 요지와 한 자 한 획도 틀리지 않았다. 이 의원측은 며칠 후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10형사부에 항소 이유서를 제출했는데, 항소의 요지는 이렇다(직위 생략).

△조중동이 황금연휴라고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조흥을 비방하는 연설은 한 적이 없다.

△비방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박영철, 강동순, 라윤한, 전홍진, 이명순 등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다.

△박영철, 강동순, 라윤한은 물론이고 전홍진도 한나라당 당원들이거나 이철우를 반대하는 자임을 고려할 때 그들의 일방적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다.

△또한 이들이 연설 내용을 오해해서 잘못 들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데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다.

아울러 2심 재판에서는 이철우 후보의 연설을 직접 들었다는 목격자들(김병린 노사모 회원, 박진훈 열린우리당 연천군연락소장 등)과 검찰과 1심 재판부가 가장 결정적 증인으로 지목한 전홍진 씨가 활동했던 선거부정감시단의 단장이자 총책임자(권영하) 등을 새로운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재판부는 박진훈 소장과 권영하 단장에 대한 증인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28일 2심 재판부 역시 1심 재판부와 똑같은 취지로 유죄를 인정하며 2백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번에도 "박영철, 전홍진 등의 일관된 진술" 등이 근거가 됐음은 물론이다. 반면 "비방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철우 의원의 진술, "비방 발언을 듣지 못했다"는 김병린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시민의신문·ngotimes는 이 기사에 이어

"검사와 1·2심 재판부는 상식을 배반했다"
[집중취재] 이철우 의원 선거법 재판의 진실(3) 주요쟁점(전)

물증 있는 한나라당 선거법 위반은 불기소
[집중취재] 이철우 의원 선거법 재판의 진실(4) 주요쟁점(후)

를 연속 보도할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특별취재팀=정지환·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