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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퍽퍽할때 감상하시소~(최민식샘)


BY 외로움 2005-02-04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사진-최민식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_2004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_2004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_2004

서울 용산역 앞에서 / 1957

부산 / 1957

부산항 부두 /1959

부산광복동 / 1962

부산 / 1962

대구역 앞에서 / 1962

부산 문현동 / 1963

부산 부민동 / 1963

부산 부민동 / 1963

부산부민동 / 1963

부산 영도 / 1963

선거 유세장에서 / 1963

부산 범일동 / 1964

경남 언양장터 / 1965

부산 남포동 / 1965

부산항 부두 / 1965

부산 서면시장 / 1965

부산 동래 거제동/ 1965

부산 영도교 부근 / 1965

경남 남해 / 1965

부산 / 1965

부산 자갈치시장 / 1965

부산 자갈치시장 / 1965

대구역 앞에서 / 1965

부산역 앞에서 / 1966

부산역 앞에서 / 1966

부산항 부두 /1966

부산자갈치 시장 / 1967

부산항 부두 / 1967

부산용두산 공원 입구 / 1968

부산 / 1968

부산 자갈치 시장 / 1969

부산 / 1970

부산 당감동 화장터 / 1970

부산 범일동 장터 / 1971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 1972

부산 자갈치 시장 / 1972

부산 / 1972

부산 / 1973

경남 양산 / 1974

부산 선창가 / 1974

부산 용두산 공원 / 1977

부산 영도 / 1981

부산양전동 / 1981

부산 자갈치 시장 / 1983

경북 왜관읍 / 1984

부산역 앞에서 / 1984

경북 선산 / 1984

부산 어린이공원 입구 / 1986

부산 / 1987


1958 부산

1958 부산

1959 부산

1959 부산

1957 부산

1965 부산

1969 서울

1965 부산

1968 부산

1973 부산

1974 부산

1977 부산

1980 부산

1988 부산

1980 부산

1984 부산

1999 부산

최민식은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출생하였고 1957년 동경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 과정을 수료하고 사진작업을 시작하였다. 1962년에 카톨릭계의 한국자선회에서 사진을 담당하면서 인간을 주제로 한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최민식은 1957년에 사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족 단위의 수난과 상처를 더듬어 볼 때 나는 자꾸 좀더 먼 과거, 한 세기 전으로 올라갈 필요를 느끼고는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보게 되는 것은 영상으로 기록된 재난들이다.


(중략)나는 이 지점에서 최민식을 만나게 된다. 유럽인이 만든 작은 사진기에 미국 이스트만 코닥사의 흑백 필름을 넣어 들고 1950년대 중반 이후의 조국을 찍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작가의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사진기라는 도구를 들어 눈에 댔을 때, 그의 망막을 아프게 찌른 것은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민족주의는 박살이 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통과 억압이 아주 넓게 퍼져 있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희생자들이 직면한 악몽과 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재난 겹쳐지는 땅의 제2세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열강의 첫 모습을 기억하는 제 1세대는 장기간 계속된 식민 치하에서도 내내 언어에만 매달려 있었다. 누구나 보기만 하면 알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서의 사진을 그들을 잘 몰랐던 것이다.